미 행정부는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의 재무장관을 부릅니다. 여기서 달러 강세 문제를 해결하길 요구하죠. 달러에 대한 다른 나라 화폐 가치의 절상이죠.
미국에 대해 많은 무역 흑자를 가졌던 일본과 독일은 사실 수입물량 조절이나 관세인상 같은 직접적인 조치로 타격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환율 조정이 편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의 정책(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등)으로 방어를 할 수 있으니 문제 해결 여력이 커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이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플라자 합의의 내용은
① 미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② 대외 불균형 축소를 위해 재정 및 통화정책을 공조해 나갈 것
등이었습니다.
사실 플라자 합의에서는 미 달러화 가치를 얼마나 조정할 것인지는 합의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합의 일주일 전에 런던 회담에서 비밀리에 구체적으로 실행 계획을 논의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 합의 내용은 “단기간에 달러화 가치를 10%~12% 하락시키고 이를 위해 6주간 180억 달러의 협조개입을 실시하며, 개입 재원은 미국과 일본이 각 30%, 독일이 25%, 프랑스가 10%, 영국이 5%를 분담함”이었죠.
물론 환율과는 달리 거시경제 정책에서는 미국·프랑스·영국이 재정적자 축소 및 물가안정을, 일본·독일은 내수확대를 최우선 목표로 합니다.
어쨌든 플라자 합의 이후 당시 달러당 250엔을 오르내리던 엔화는 이후 17개월 만에 57%나 평가절상(엔화 가치 절상)됩니다.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수출에 애로를 겪습니다. 물건 하나를 팔아서 1달러를 벌면 엔저일 때는 250엔을 벌었지만, 엔고가 되면서 200엔밖에 못 벌게 된 것이죠.
대신 일본에서는 내수 경기 확대를 위해 저금리 통화정책을 펼칩니다.
시장에 돈이 풀리자 버블이 생깁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죠. 엔화 가치가 상승하자 상대적으로 미국 땅값이 싸 보입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미국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미국 문화의 상징이라던 컬럼비아영화사를 소니가 1989년 34억 달러에 인수했고, 뒤이어 미쓰비시가 록펠러센터를 14억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내수시장 확대를 위해 기업 대출도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물론 미국 부동산뿐만 아니죠. 일본 내부 부동산 가격도 급등합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5년간 일본의 주택가격이 3배 이상 폭등합니다. 여기에 겹쳐 공급과잉까지 이뤄지죠.
정리하자면,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수출 감소 -> 떨어진 수출 흑자를 만회하기 위해 내수 경기 부양 -> 금리 인하 -> 유동자금 증가 -> 부동산 시장 과열 (버블)
이 됩니다.
그런데 버블이 어디서 터졌을까요?
다음 시간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