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님의 편지: 저희에게 사랑의 시를 추천해주세요.

고명재 시인께,

 

시인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후에는 제 소개를 해야 하는데, 저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팬'이 아닌 그럴싸한 말을 하고 싶지만… 명재 시인님과 <우시사>의 독자라고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대뜸 사랑의 시를 부탁드리는 사연은요,

제가 다음달에 결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연애의 시작에 시가 있었어요.

팔 년 전 아주 추운 겨울날 카페의 카운터 너머 쭈그리고 앉아 시집을 읽던 지금의 애인을 발견하고, '아! 저 사람이다!' 생각했습니다. 문학이 전공이었던 제게, 제가 커피를 마시러 갈 때마다 다른 시집을 읽고 있던 그가 얼마나 반짝이던지요. (이제는 너무 행복해서 시를 읽을 수 없다고 하지만요.) 쑥스러운 마음에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다가 결국은 제가 먼저 밥을 먹자고 했습니다.

 

그사이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그는 일하던 곳에서 나와 그의 가게를 열었다가 역병으로 문을 닫고 또 새 가게를 열었어요. 좌절도 있었고 슬픔도 겪었지만 서로의 곁에서 많이 컸습니다.

 

작년엔 이사를 했어요. 마주앉아 함께 책을 읽는 시간에 감사한 요즘입니다. 명재 시인님의 시집은 제가 그에게 선물했고, 저희의 새집에는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가 두 권이 있어요. 제 애인도 명재 시인님의 글이 투명하고 아름답대요.

 

결혼식에서 사랑의 시를 읽고 싶은데, 아직도 고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저희입니다. 새로운 시작에, 사랑의 다짐에 어울리는 시가 떠오르신다면 저희 좀 도와주세요!

 

무턱대고 적은 사연은 여기까지고요! 출근해 명재 시인님의 글을 <우시사>에서 만나는 것이 제 짜릿한 일탈이었습니다. 기쁘고 감사했어요. 졸업할 즈음에 재미없는 직장인이 될까 몹시 두려웠는데, <우시사> 레터가 제 마음을 자주 말랑하게 만들어 정말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감사드리며, 늘 모두의 안녕을 응원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소희님. 그리고 <우시사> 구독자 여러분! 드디어 끝인사를 올리게 되었네요. 시작할 때만 해도 창밖에 눈이 왔는데, 어느덧 봄나물이 슬슬 시장에 나오고 있어요. 오늘은 저와 이렇게 인사 나누고, 저녁에 냉이로 끓인 된장찌개 어떠신가요.

매해 새봄, 냉이를 먹을 때마다 콧구멍을 활짝 열고 감탄합니다. 어떻게 이런 작고 여린 봄나물 몇 조각이 된장마저 뚫는, 짙푸른 향기를 뿜을까! 아마 처음이니까, 어린이니까 그런 거겠지요. 가장 용감한 사람을 우리는 어린이라고 부르니까요. 어쩌면 시도 어린이의 함성인지 몰라요. 읽을 때마다 눈이 번쩍 크게 떠지고. 겁없이 웃고 겁없이 울게 해주니까요.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귀한 편지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출력했어요. 특별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다루고 싶어서 한지 위에 출력해서 접어뒀어요. 이제 서랍 안에 예쁘게 보관해두고 어린이처럼 말갛게 읽을 거예요.

오늘은 소희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음달에 결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기서 목이 쭉 길어졌는데요. “저희의 연애의 시작에 시가 있었어요.” 아니, 이 문장을 보는데 어떻게 안 쓰겠어요.

제가 또 한 호들갑(?) 하거든요. 제 연애는 지지리도 못하지만, 타인의 연애는 너무너무 좋아하거든요. 읽는 순간 제 마음이 울렁거리고 볼과 귀가 토마토처럼 빨개졌어요. 게다가 이런 ‘문학적인 사건’이 또 있나요. 시 때문에 두 분이 만나게 되셨다니. 시와 문학, 정말로 무용(無用)한 거 맞나요? 시와 문학 쓸모없는 일 아닌 거 맞지요?

문학이 도대체 무얼 하거나 바꿀 수 있냐고. 냉소 짓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저는 이제 소희님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사랑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면, 시, 이거 도토리보다 거대한 가능성 아닌가요.

“새로운 시작에, 사랑의 다짐에 어울리는 시”를 말씀하셔서, 다음의 시를 용감하게 골라보았어요. 마침, 시집의 제목까지 딱 들어맞네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시집! 김복희 시인의 『희망은 사랑을 한다』에 수록된 시예요.

예전에 이 시를 읽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어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봤어요. “이 시는 사랑 시가 맞을까? 너무 예쁘고 어딘가 알콩달콩한데, 한편으로 알쏭달쏭한 거 같아!” 정말 그렇죠. ‘알’이 한가득 모인 시 같지요. 곧 의미의 병아리들이 깨어날 것 같지요. 그러자 그 사람이 단칼에 제게 말했어요. “귤 까주는 건 사랑이야. 내가 과일 많이 먹어봐서 알아.”

내용과 의미를 알기도 전에, 귤을 까기도 전에, 알 수 있는 게 세상엔 있더군요.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관념이에요. 소희님이 “아! 저 사람이다!” 알아챘듯이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시도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관념의 각주인지도 몰라요. 시는 알기도 전에 우선 도착하고 보거든요. 저는 이 시가 ‘우선 불쑥 오는 시’ 같아요.

이 시는 사랑을 휘황찬란하게 말하지 않지요. 시 속에는 “혼잣말”도, ‘힘겨움’도 있지요. 그런데도 이 시는 사랑을 놓지 않아요. ”사람은 혼자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니까요. 어려운 고민(“생각하고”)이 우리의 머릿속을 점령해도, 힘겨운 삶(“존재하고”)이 나에게 계속 부과되어도. 우리는 “감금된 귤 알맹이를” 꺼내고 쪼갤 수 있어요. 서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버리는 시지요.

가만히 보면, 이 시는 ‘사랑(귤)’이라는, 거대한 관념을 꺼내고 쪼개는 데서 시작하는 시예요. ‘사랑의 최소-행위화’라고 불러볼까요. “힘내야지, 힘낼게,” 무심히 말하고 “내 입으로 귤을 넣어주는” 작은 행위요.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요. 왜 이 사람은 “손가락을 살짝 물었다가/ 놓아”줄까요. 얼마 전 쇼츠를 보다가 이런 걸 봤어요. 우리가 너무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를 보면 무언가를 쥐어뜯고 살짝 물기도 하잖아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군요. 이건 우리의 뇌가 과도하게 행복해져서, 균형을 찾기 위해 반대로 약간의 폭력성을 비치는 거라고 해요. 그러니 “살짝 물었다”는 것은 엄청나게 사랑한다는 말. 이 시 정말 사랑 시가 맞군요.

이제 새로운 형태로 사랑을 시작하실 두 분께, 감히 이 말씀을 드려보아요. 두 분.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을 하시기보다는요. 그저 겨울에 귤을 듬뿍 까서 주셔요. 밤도 까고 초콜릿도 까고 다양한 버전으로 서로의 입에 “알맹이”를 쏙쏙 넣어주세요. 그러면서 내면도 슬쩍 드러나겠지요. 당신을 정말, 진실로 사랑한다는, “귤 까기”로 간신히 드러나는 기적.

노랗게 물든 손끝을 상상하며

마음을 담아, 고명재 올림

문학동네시인선 144 김복희 시집 『희망은 사랑을 한다』

정성 가득한 편지로 메일함을 가득 채워주었던 고명재 시인의 <우시사>가 오늘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고명재 시인이 나누어준 다정한 문장들 덕분에 한 해의 시작이 더욱 애틋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아껴 읽은 미래'를 기다리며 고명재 시인의 추천 시집을 한번 더 살펴볼까요?
🙋 Guess who?
<우시사>는 계속됩니다. 새로운 필진은 다음 레터에서 공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새로운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이 주째예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책임감과 실망감에 짓눌려 있단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편지를 읽고 눈물이 났어요. <우시사> 레터를 읽다가 운 적은 많지만 오늘 눈물은 조금 특별한 느낌이에요. 조금이지만 저를 되찾은 기분이에요. 역시 시는 저를 살아 있게 하네요. 시인님들과 <우시사>팀에 감사합니다.
  • 시와 사랑의 공통점이에요. 두 발만 살짝 담그려 했는데 늘 영혼이 머리끝까지 잠기잖아요. 나는 나를 익사시키는 것들을 좋아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좋아요.
  • 언제나 그렇듯 진은영 시인은 우리가 모두 느끼지만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적확하게 대신 말해줍니다. 너무 감사해요.
오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소중한 피드백은 우시사를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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