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무척 더웠던 지난 7월, 코트워치는 7팀의 미술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날이 무척 더웠던 지난 7월, 코트워치는 7팀의 미술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투쟁 현장에서 오랫동안 연대하며 작업해 온 작가들입니다. 전시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해줄 말들》의 인터뷰 책자를 만드는 일에 함께했습니다.


전시에 관한 기획을 처음 들은 건 지난 3월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김화용 작가로부터 현장에 '함께 존재하는' 미술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코트워치는 (미술관이 아닌) 전시가 열리는 도서관 공간에 왔다가 작품을 보게 되는 시민들이 작품과 현장의 맥락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참여 작가들을 인터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한 사건의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취재해 온 코트워치가 이번 전시와 어떤 접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몇몇 작가들이 연대하고 있는 현장을 찾았습니다.


7월 13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치명타 작가와 만났습니다. 치명타 작가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 연대하고자 농성장 앞에서 매주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긴 시간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쉽게 잊히지 않도록 그들의 일상이 된 투쟁의 장면들을 그림으로 기록해 왔습니다. 그 그림들이 도서관 공간에 전시됩니다.


"노동자, 철거민, 참사 유가족, 난민 등 생존을 위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이들의 현장이 늘 긴장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용역이 투입되거나 망루에 오르거나 단식이 시작되는 스펙터클한 장면이지만, 그런 순간은 어쩌면 잠깐일지 모른다. 대부분의 날은 그 하루를 위해 지난한 일상을 버티는 시간이다. 여기 모인 작품들은 그들의 이런 매일이 무너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일 수 있도록 조용히 안부를 묻고 옆에 머물던 시간들이다." (전시 서문 중에서)


작가들의 오랜 연대와 그 과정이 담긴 작업은 멀리서 보면 이례적이고, 대단한 무언가로 보였습니다.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지는 공간을 함께 지키고,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긴 투쟁의 과정을 기록하고, 봉쇄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항해를 시작하는 것. 작가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며 '이들은 왜 현장에 가게 갔을까' 질문하게 됐습니다.


첫 시작과 연대의 이유에 대해 묻자 작가들은 그냥, 우연한 계기로, 어떤 뚜렷한 목적 없이 '구체적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일단 가기 시작하면 어느 시점부터는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요.


이후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정리하면서, 어쩌면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이나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곁'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 * *


한 달 동안 현장에서, 작업실에서, 카페와 노동자 복지관에서 작가들과 나눈 대화는 책자 형태로 전시 공간에 놓였습니다. 연대해 온 현장의 의미,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어떻게 작업에 담겼는지 등을 작가의 말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신 독자분들께서도 도서관에 들러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7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 글은 아래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 공간 한쪽 유리창에 치명타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밀려나는 노동자의 삶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은 경영 악화를 명목으로 공장을 폐쇄했습니다. 당시 해고된 노동자들은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고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국내 최장기 투쟁으로 기록된 '콜트콜텍 복직 투쟁'입니다. 치명타 작가는 2012년 처음 농성장을 방문한 이후부터 투쟁이 끝난 2019년까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은 200여 점의 드로잉으로 남았습니다. 농성장의 장면이 담긴 기록은 투쟁의 공간이 늘 비장하고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성화고등학교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도 있습니다. 현장실습이나 취업을 통해 일찍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의 경험, 보이지 않는 위계와 차별을 살핍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홍지연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한 회사에서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여겨졌던 기억, 쉽게 해고되고 차별을 겪었던 경험 등이 바탕이 됐습니다. 작가는 이후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활동을 계기로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가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는 2023년 파주 성매매 집결지 용주골 폐쇄 현장을 다룬 〈용주골〉입니다. 현장의 동료로부터 '투쟁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긴 시간 현장에 머무르며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쫓겨나지 않은 오늘


서울 성북구 정릉골은 서울 도심 재개발 등으로 밀려난 철거민들이 정착하면서 생겨난 마을입니다. 2024년 재개발에 따른 이주가 본격화하며 오랫동안 마을에 살아온 세입자들이 쫓겨나기 시작했고, 남은 세입자들은 이주 대책과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습니다. 노예주 작가는 정릉골에 머무르며 연대인들과 함께 강제집행을 막아냈습니다. 이후 협상을 통해 세입자 대책이 마련되면서, 남은 주민들은 '강제집행이 아닌 형태'로 마을을 떠나게 됐습니다.


작가는 정릉골 이전부터 서울 장위동, 명동, 파주 용주골 등 개발과 효율의 논리 속에서 사라지는 누군가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활동해 왔습니다. 정릉골의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들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차피 사라진다해도, 정릉골에서의 남은 하루가 아름답길 바란다. 내일 쫓겨나더라도, 쫓겨나지 않은 오늘이 있고, 그마저 빼앗길 수는 없다."



애도의 시공간을 되찾기 위해


2022년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는 일주일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분향소를 설치했습니다. 희생자의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였습니다. 박정원 작가는 빼앗긴 애도의 시공간을 다시 마련하기 위한 싸움에 함께해 왔습니다. 이태원에서 추모의 축제를 여는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활동가로 활동하며,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희생자 등 우리가 잃어버린 존재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에게 애도는 잃어버린 이들을 간직하는 일에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이별을 반복하지 않을 미래를 함께 약속하는 투쟁이 됩니다.



바다 너머의 세계에 닿는 법


지난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는 항해가 전 국민적인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활동명 '해초'로 알려진 김아현 작가는 이스라엘에 의해 전면 봉쇄된 가자지구에 닿기 위해 구호선단에 두 차례 몸을 실었습니다. 2008년 국제 구호선이 가자지구의 해안에 도달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인해 어떤 구호선도 닿지 못했습니다.


작가에게 이례적인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작가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려는 투쟁 가까이에서 자랐고,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확장 공사 등 바다에서 벌어지는 군사화를 막기 위해 카약을 타고 나갔습니다. 요트를 타고 군사기지가 있는 동아시아 섬들을 찾아갔습니다.


서울익스프레스는 '노래'를 매개로 한국 바깥에서 벌어지는 시민들의 저항에 주목합니다. '아랍 아이돌' 오디션 우승자가 부른 노래가 어떻게 틱톡에서 팔레스타인인 정체성과 자긍심의 표현이 되었는지, 2022년 이란의 '히잡 반대 운동'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노래가 어떻게 시위의 상징이 되었는지 등 전 세계의 저항음악을 한국에서도 살펴보고 들어볼 수 있게 했습니다.

(ⓒ 109)

마지막으로, 109라는 이름을 쓰는 작가는 본인의 활동을 '연대'보다 한 차원 낮은 '연루'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노들장애인야학 수업, 군산 평화·생태운동, 비상계엄 이후 퇴진집회 등 여러 현장에 몸담으며 (의식하지 않았지만) 늘 '누군가'와 연결된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의미였습니다.


전시의 서문은 이렇게 작가들이 '누군가에게' 건넨 말들이 관객에게도 닿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작가들이 누군가에게 건넸던 안부가 이곳에서 당신에게도 전해지기를, 그래서 잠시 멈춰 서서 알지 못했던 곳을 떠올리고, 서로의 곁이 되는 작은 연습을 시작해 보기를 청합니다."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해줄 말들》

김근태기념도서관 전관

(휴관일: 매주 월요일 및 법정 공휴일)

2026년 8월 18일~10월 18일


기획·글: 김화용

참여 작가: 109, 김아현, 노예주, 박정원, 서울익스프레스, 치명타, 홍지연


📌 문화적 연대의 방법으로 독립적인 출판물 '진(zine)'을 만드는 6팀도 참여합니다. 출판물 섹션에서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는 9월부터는 모더레이터와 함께하는 연계 행사들이 열립니다. 연계 행사 소식은 전시 인스타그램 계정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레터는 코트워치 후원회원 워처 89분의 지원을 받아 김주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courtwatch@c-watch.org
(코트레터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여기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