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선을 나눕니다.

기어코 발걸음을 옮기며

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며 짬짬이 독서를 하는 편이에요. 그럴 때는 어떤 가방에도 쏙 들어가는 가벼운 시집을 손에 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최근 읽은 시 중에 안미옥 시인의 생일 편지 구절이 제 곁을 며칠 동안 따라다녔습니다.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두려움이 내 어깨를 붙잡는 순간에도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상처받을까 염려하는 마음보다 막 피어난 사랑이 더 클 때도 있고요. 불안한 순간에도 지켜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 책임을 등에 업고 기어코 나아가게 되죠. 《AROUND》에서 부쳐온 뉴스레터도 이처럼 숱한 고민과 손길을 거쳐 어느덧 100호를 맞이했습니다. 언제나 쓰는 쪽을 자처해 읽을 이의 시선을 헤아리며 때로는 설레는 기분으로, 때로는 망설임을 안고 편지를 띄우곤 했습니다. 느리지만 오래 꺼내볼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작은 약속 덕분에 한 발 한 발 기꺼이 전진할 수 있었을 테지요. 오늘 레터에서는 소복이 쌓인 발자취를 돌아보며, 10주년을 맞이했던 《AROUND》의 기록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AROUND》 창간 10주년을 맞아 김이경 편집장과 이주연 에디터가 나눈 특별한 대화입니다. 매 호 기획과 편집을 거듭하며, 자신들의 ‘주변’을 관찰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해 온 여정을 담았어요. 

10주년 기념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 대화에서는 정면이 아닌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고 발견하는 《AROUND》만의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두 사람은 자신의 취향과 주변 경험을 따라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평범한 사물과 순간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법을 전합니다. 이렇게 살짝 옆으로 기울어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AROUND》가 걸어온 10년이 넘는 시간과 그 안에 쌓인 이야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연 올해가 《AROUND》 창간 10주년이어서일까요, 2022년은 우리를 정의하는 데 집중한 해라는 생각이 들어요. 머리로 그릴 순 있지만 문장으로 말하지 않다 보니 정의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 우리의 정체성(웃음).

이경 10년을 이어온 나조차도 정의를 내리기 힘들었어. 그러다 올해 브랜드 캔버스를 조금 세세하게 그리면서 알게 됐어.

주연 그럼 이참에 정의해 볼까요?

이경 ‘일상의 발견.’

주연 오…!

이경 우리는 사람들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매체야. 처음엔 회사 가치가 일상의 발견이라는 건 너무 소소하다고 생각했어. 근데 잘못된 생각이더라고. 이번 팬데믹 시기를 생각해 봐. 일상을 잃어버리면서 사람들이 일상의 중요함을 깨달았잖아. 근데 《AROUND》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일상을 이야기해 왔어.

주연 좀 간지러운 느낌도 들지만(웃음) 사실 《AROUND》는 일상 그 자체죠. 여행이라고 하면 흔히 일상의 탈출구라고 생각하잖아요.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경험을 꿈꾸고요. 그런데 《AROUND》에서 다루는 여행은 그런 게 아니에요. 타지에서, 이국에서 다시 일상을 이어가는 형태죠.

이경 생각해 보면 주변에서 특별하고 비범한 걸 다루는 일은 많더라고. 박물관 같은 곳을 생각해 봐. 오래된 유물, 굉장한 물건을 전시하잖아. 근데 평범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 사소하고 소소한 물건은 만날 수가 없어. 그걸 우리가 책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핵심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고.

주연 10년 동안 변하지 않고 간직해온 가치이기도 하죠. 그 안에서 이것저것 바뀌기도 했고요.

이경 어떤 게 바뀌었다고 생각해?

주연 일차원적으로는 디자인. 리뉴얼하면서 시각적으로 바뀌는 부분이 있었죠. 콘텐츠적으로는 초기에 비해 인터뷰가 확실히 많아지기도 했고요.

이경 초반엔 문학적인 베이스를 가져가고 싶어서 인터뷰보다는 에세이가 많았지. 근데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어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어도 수년을 쓰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떨어지기 마련이잖아. 그런 상황이 오는 걸 우려했어. 그럼 분명히 에디터가 힘들어질 테니까. 그래서 바깥 사람들 이야기를 담는 인터뷰 형식을 늘리게 된 거야.

주연 사실 《AROUND》에 들어오면서 부담이 좀 있었어요. 《AROUND》에서는 유독 에디터가 도드라진다는 인상이 있었거든요. 제가 너무 도드라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내가 그만큼 눈에 띄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부담도 컸어요.

이경 그땐 인터뷰가 아닌 에세이 위주였기 때문에 에디터가 누구냐가 중요했고, 독자들도 에디터를 더 궁금해했던 거야. 반대로 지금은 인터뷰이가 에디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

주연 저는 인터뷰를 기획할 때 보통 세 가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첫째,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인가. 둘째, 이번 호 주제와 잘 맞는가. 셋째, 《AROUND》랑 잘 어울리는가. 제가 관심이 없다면 인터뷰가 성사되어도 정성껏 질문을 준비하기 어려울 테고, 이번 호 주제와 맞지 않는 인물은 애초에 기획이 완성되지 않을 것이고, 《AROUND》랑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결과물이 좋지 않겠지요.

이경 나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기 취향과 AROUND》의 지향점을 이해하고 중간 점을 찾는 . 주연이 말한 첫째 항목과 셋째 항목의 타협을 이뤄내는 거지.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나도 에디터 취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잖아. 그게 점점 ʻ어라운드스럽게맞춰지더라고. 균형이 잡히는 거지. 주도적으로 책을 기획해 가는 에디터니까, 에디터들 취향이 책에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같아.

이경 나는 우리가 세상에 없는 걸 다루길 바라지 않아. 다른 잡지에서 다뤘다고 피하고 싶지도 않고. 모두가 다룬 도구, 모두가 이야기한 사람에 관해 다뤄도 괜찮으니 정면이 아닌 쪽을 보고 싶어. 측면에서 바라보면 분명히 다른 지점이 생기거든. 그래서 시선이 중요한 거지.

주연 그 시선이라는 것 또한 일상에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경 우리는 뭘 만들든 그 기준이 ‘나’야. 같은 바리스타를 다루더라도 기술자로서의 바리스타가 아닌 ‘내가 보는 바리스타’를 다루지.

주연 맞아요. 86호 주제가 ‘드라마’로 좁혀졌을 땐 솔직히 좀 아득했어요. 제가 드라마를 안 보니까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만화영화, 뮤직비디오… 이렇게 뻗어나가게 된 거죠.

이경 그렇지. 주연의 일상에서 이번 호를 바라본 거지. ‘AROUND’는 주변이란 의미지만 그 기준은 나야. 모든 이야기의 중심엔 내가 있어.

주연 그러니까 그냥 ‘주변’이 아니라 ‘나의 주변’.

이경 응. 우리는 우리의 주변을 이야기하고, 읽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다시 보게 되는 거지.

주연 그래서 에디터의 상황도 중요한 것 같아요. 딱 그 시점에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에 솔깃하는지에 따라 콘텐츠가 달라진다고 보거든요.

이경 내 주변을 드러내는 역할이다 보니까 취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아. 아무 취향 없이 기계처럼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거잖아. 그래서 우리 직원들은 자신의 취향, 관심사에 관한 고민을 유독 많이 하는 것 같아.

주연 《AROUND》를 제 책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걸 만들 때 내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특별한 에피소드 말고, 정말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요. 내 이야기에서 모든 콘텐츠가 출발하거든요. 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어때?”라고 묻는 식이니까요.

이경 내가 인터뷰 문장에 별을 그리는 것도 나한테 질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야. 누군가의 답변을 보면서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고 동의하거나 ‘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고 또 다른 답변을 하게 되거든.

주연 사소한 사물 하나를 이야기하더라도 형태보다 이야기에 집중하니까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일을 계속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물건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때로는 더 좋은 태도를 배우기도 해요. 이번에 인터뷰이가 저한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말을 해주었거든요. 이래저래 한창 힘들 때라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이경 그럴 때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아?

주연 물론이죠. 그 말 덕분에 세상이나 사람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이경 나도 이 일을 할수록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돼.

주연 만들 때도 그래요. 꾸려 나가면서 일상에서 새로운 발견하게 된달까요. 77 기록생활자My Record 만들 때가 특히 그랬어요. 인터뷰이의 일기장 수십 권을 보면서우와.” 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서랍장에도 수십 권의 일기장이 있더라고요. 그럴 일상이 달리 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져요. 그러고 보면 인터뷰이도 일상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들인 같아요.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 일상적인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사람. 없는 있는 것처럼 포장하거나 내가 가진 보여주기 위해 과하게 행동하지 않죠.

꾸준하게 좋은 태도로 작가가 된 김동식 소설가의 영상


앞선 대화에서 두 사람이 《AROUND》의 가치와 일상의 시선을 나누며,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유유히 우리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작은 관찰과 꾸준한 기록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김동식 소설가의 인터뷰 영상을 함께 소개하고 싶어요. 소설 《회색 인간》의 저자로 잘 알려진 그는, 자신이 작가가 된 것이 특별한 재능이나 단번의 성취보다 꾸준히 쓰고, 사람들과 성실하게 소통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한 줄의 글에도 반복된 노력과 태도가 스며 있다는 그의 말이, 작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온 《AROUND》의 시간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을 거듭하며, 안에서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가는 힘을 느낄 있을 거예요.

자주 듣는 곡이지만, 가사를 또렷이 들여다본 적은 없던 노래가 있다면 오늘은 잠시 멈춰 서서 그 문장을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요. 멜로디에 기대 흘려보냈던 말들이 실은 님의 어떤 추억과 친밀하게 맞닿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AROUND》 동료들의 취향을 소개하려 해요. 각자의 ‘좋아함’이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지 함께 보아요. 그럼 다다음 주 목요일에 만나요!

어라운드가 건네는 하나의 질문, Question


호가 차분히 마무리될 즈음이면, 우리는 ‘Question’ 통해 독자분들께 하나의 질문을 건넵니다. 이번에는 스탠딩 에그의 에그 2호에게 집이란 어떤 공간인지 물었습니다. 음악으로 마음의 결을 어루만져 그의 답을 영상을 통해 전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얼굴로 남아 있는지도 자연스레 떠오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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