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시.사 레터 1회 (2021.04.21) 안녕하세요, 시 쓰는 오은입니다. 틈내서 시를 써야 하는데 틈날 때만 기다리니 조금 부끄럽기도 한 요즘입니다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 마음은 더욱 동하는 게 아니겠어요? 문학동네의 야심에 찬 기획, <우리는 시를 사랑해>를 통해 여러분 안의 시심을 한껏 끌어올리셨으면 좋겠습니다. 😀 💗 오은 시인의 첫번째 추천 시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에 관한 단상 (오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1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를 보고 이 이름을 너에게 말하려는 찰나, 이 영민한 생명은 우리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2 I only wanted 2 see U bathing in the purple rain* 3 바람이 세지면 우리는 오락실에 가서 2인용 테트리스를 하곤 했지 너는 화면의 중앙부에서 갖은 기교로 춤을 추던, 중절모 쓴 그 남자를 사랑했지 때때로 너는 그 남자가 테트리스 블록에 눌려 압사하는 꿈을 꾼다고 했지, 그러곤 보랏빛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름 없는 마약을 구하러 떠났지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한 마리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 4 너를 찾으러 나는 클럽이란 클럽은 죄다 돌아다녔지, 배수아의 붉은 손 클럽에도 코넌 도일의 붉은 머리 클럽에도 윤대녕의 코카콜라 클럽에도 이상운의 픽션 클럽에도 너는 없었어 오프라 윈프리의 북 클럽에도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뒤마 클럽에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에도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에도 빔 벤더스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도 월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클럽에도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도 너의 흔적은 없었지 나는 형광등을 꺼놓고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었지 5 That long black cloud is coming down Feels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나는 밥 딜런보다 훨씬 더 많이 천국의 문을 두드렸지, 이제 내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서 나는 사나운 바람에도 끄떡없어 vs. 천국의 문은 아직까지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여전히 튼튼하고 높고 절망적인 두께지 6 참, 그리고 웨인 왕의 조이 럭 클럽에도 너는 없었어 난 그 쌍둥이 언니가 너인 줄 알았는데 7 네가 그리워 우리가 즐겨 가던 오락실에 갔다 주인은 이제 시시한 테트리스 게임 같은 건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고 했지, 대신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 총질을 해대고 왔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8 Since the last goodbye It’s all the wrong way round***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는 유난히 습지를 좋아한대,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다니다 빗물에 목욕을 하던 너는 이름 없는 마약을 구하러 떠났지만, 그리고 너를 찾으러 나는 미국, 영국, 스페인, 저 멀리 서인도제도의 쿠바까지 다녀왔지만, 바람은 더이상 불지 않았지 나는 줄곧 이 일대를 헤매고 있어, 우리가 밤새 두른 테두리 9 오늘, 아주 새까만 중절모와 지팡이를 헐값에 사서 가슴팍에 쑤셔넣었다 기도가 탁 막히는 느낌 10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 Prince의 <Purple Rain> 중에서 ** Bob Dylan의 <Knockin’ on Heaven’s Door> 중에서 *** Alan Parsons Project의 <Since the Last Goodbye> 중에서 👍 추천의 글 노래를 듣다가 노랫말이 귀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귀에 들어온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팝송인 경우, 들리는 것과 해석되는 것 사이에서 시차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에 인용된 세 곡의 팝송은 이십대 초반에 종종 찾아 듣던 노래다. 자연스레 노랫말을 찾아보게 되었고 직역과 의역을 거치면서 노래에 다시금 젖어들 수 있었다. 프린스의 <Purple Rain>에서 “나는 그저 네가 보라색 비에 물든 걸 보고 싶었을 뿐이야”를,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에서 “기다란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어.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야”를,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Since the Last Goodbye>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우리는 반대로 와버렸구나”를 적어두었다. 이 문장들이 시에 들어갈 것이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곤충도감에서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를 발견하는 순간, 그것의 색과 무늬에 사로잡혔다. 손가락 끝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나비가 곧 날갯짓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만나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떠나버린 사람의 이미지가 스쳐지나갔다. 나비처럼 날아간 사람은 어느새 테트리스 게임에 등장하는 중절모 쓴 남자가 되어 있었다. ‘이 조각들이 시가 될 수 있을까?’란 걱정은 상상 속에서 미국, 영국, 스페인, 쿠바를 가로질렀다. 사람들이 더이상 하지 않는 게임,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클럽, 도무지 잡히지 않는 나비…… 불가능한 것들이 앞다투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가 되는 것도, 시를 아는 것도 늘 기약 없는 일이다. 첫 만남은 다시 오지 않는다. 💌 막간 시인선 소식 💜 오은 시인의 두번째 추천 시 교양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오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아침입니다. 오늘은 어떤 머리를 쓰면 좋을지 잠시 머리를 씁니다. 중요한 강의와 회의가 여러 건 있으니 저 머리를 써야겠군요. 잠자리용 머리를 벗어두고 그 머리를 착용합니다. 하루가 시작된 게 몸소 느껴지는군요. 평소보다 늙어 보인다구요? 저는 평소란 게 없습니다. 인상이 전체적으로 어두워 보인다구요? 이 머리를 쓰면 웃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나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웃으며 인사합니다. 나는 웃지 않고 고개만 까딱 숙입니다. 나는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람이지요. 이 머리가 날 그렇게 만듭니다. 생각하는 동물들은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머리를 쓴 친구는 참 마음에 들어요. 날 존경하는 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쟤는 시험 보는 날만 꼭 거창한 머리를 쓰고 옵니다. 답안지는 더 거창하지요. 퇴근 후, 머리를 벗어 선반에 고이 모셔둡니다. 목에 잠복해 있던 스프링이 불쑥 피어납니다. 하녀가 후다닥 뛰어와서 실내용 머리를 씌워줍니다. 주름살과 콧수염은 빚보다 더 빨리 늘어나는군요. 도무지 청산이 불가능해요. 식염수에 눈알을 세척하고 스프레이로 콧구멍을 살균합니다. 오늘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실내용 머리를 벗어야겠습니다. 선반에 진열된 머리들 중 하나를 골라 쓰고 손님을 맞이합니다. IQ가 15 떨어지는 대신, EQ가 30 상승합니다. 당신은 우아하군요. 오늘따라 유독 재킷이 잘 어울리는군요. 아이들은 어찌나 이렇게도 사랑스러울까요. 이 머리만 쓰면 자동적으로 거짓말들이 줄줄 쏟아져나옵니다. 교양이 터졌다고 할까요. 하녀가 쿠키와 차를 내오고 우리는 대화에 몰두합니다. 가든파티에는 가실 건가요? 주식은 오늘 또 바닥을 쳤더군요. 다음달 품위는 또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걱정이에요. 말을 마치고 우리는 웃습니다. 사이좋게 고양되고 교양됩니다. 이상하게 이 머리만 쓰면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차 맛이 쓰군요. 쿠키가 목구멍에 걸린 것 같아요. 재채기를 하며 어색하게 또 한번 웃습니다. 실내용 머리는 어느새 조금 늙었습니다. 창밖으로 낯익은 머리가 지나갑니다. 언젠가 봤던 머린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우리 어디선가 만났던가요? 아, 저 머리에는 텔레파시가 가닿지 않는 모양이네요. 손님들에게 말합니다. 아쉽지만 오늘 대화는 이걸로 끝이에요. 교양이 다 터져서 외출을 해야겠습니다. 당장 당신을 만나야겠어요. 그런데 어떤 머리를 써야 당신이 나를 알아볼까요. 일렬로 늘어선 머리들이 자기를 골라달라고 사정없이 달그락거리는군요. 머리 하나를 쓰고 거리를 거닐다 누군가와 부딪치고 맙니다. 성난 머리가 말합니다. 거, 머리 좀 조심하쇼. 여기 어디에 거머리가 있다고요?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성난 머리에선 이미 연기가 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머리 하나가 지나갔을 텐데, 혹시 못 보셨나요? 제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수많은 머리들이 휩쓸고 간 수많은 자취들을 따라가자니,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고장난 나침반처럼 빙빙 회전하는 머리를,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 추천의 글 😀 이제 첫발을 내디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여러분의 피드백이 중요해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일링 <우.시.사>가 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김연수 소설가 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추천인은 바로 김연수 소설가입니다. 그럼 모두,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