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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연남동에 놀러 갔다가 심심풀이로 본 타로 사장님은 내가 뽑은 마지막 두 장의 카드를 보자마자 무릎을 쳤다. “자, 너무 노력하지 말기. 올해는 아무 생각 없이 빛을 따라가봐요. 이 그림처럼 꽃을 보고 햇빛을 즐기라고요! 아직 젊잖아. 오케이?”


올해는 어쩌면 하는 일마다 타율이 10%도 안 될까? 열심히 한 정성을 봐서라도 좀 잘되면 좋으련만. 낙담하던 중 불현듯 햇살과 꽃의 정령이 가득한 타로 카드 그림이 생각났다. 그래, 너무 열심히 해서일지도 몰라. 가자. 빛과 낭만이 충만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로. 체코 프라하의 뜨거운 블타바 강으로. 마침 6~7월엔 코로나19로 유예됐던 유럽 출장이 두 번이나 예정돼 있었다.


유럽은 학생시절 배낭여행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거의 모든 여행의 조건이 바뀌었다. 미리 환전할 필요가 없는, 즉석으로 충전되는 환전 체크카드와 실물 지도를 대신한 구글 맵, 호텔을 대신하는 에어비앤비. 바뀌지 않은 것이라면 여전히 아름다운 유럽 풍경과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건물, 아날로그 열쇠뿐. 촘촘한 정보로 가득한 <론리 플래닛> 가이드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 여행을 어떻게 기획하고, 어떤 콘텐츠로 채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됐다.


그렇게 40대 중반, 어쩌면 세월의 뱃살만큼이나 물컹해진 내 인생에서 ‘쨍’한 복근을 만들어줄 유럽 여행이 시작됐다. 내 콘텐츠는 약 150년 전 프랑스 대자연에서 빛을 따라 인생을 불살랐던 선배들, 즉 인상주의 화가들의 족적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취를 좇았고, 프로방스에서는 생 빅투아르 산을 따라 세잔의 길을 걸었다. 보나르, 앙리 마티스, 르 코르뷔지에의 흔적을 감상했다. 체코와 오스트리아에서는 빈 분리파와 표현주의의 대가 에곤 실레와 클림트의 세계를 찾아 떠났다. 체코의 작은 도시 체스키크룸로프와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에서 사제 관계였던 에곤과 클림트의 짧고 강렬한 인생을 만났다. 빛을 따라 나선다지만 가족이 딸린 몸은 20대만큼 가볍지 않다. 학회 발표, 수업, 논문을 바리바리 싸들고, 세 아이들 학원 일정까지 몰려오는 사태에도 하루살이 심정으로 정해진 항로에 몸을 실었다. 20대와 다르게 좋은 점도 있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무슨 일이 닥쳐도 개의치 않을 ‘중년의 여유’가 내 코어에 장착돼 있었다.


프랑스 여행 중 손에 잡힌 책은 정여울 작가가 2019년에 펴낸 <빈센트 나의 빈센트>였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울림을 줬다. 그는 좋아하던 심리학과 문학, 여행과 미술이 만나는 모든 접점에 반 고흐가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파랑, 노랑, 빨강의 삼원색이 만나 새하얀 빛을 내듯 그의 인생에서 고흐는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으로 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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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 서른이 넘으면 신선한 글쓰기의 영감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두려움, 현실의 안정을 위해 가장 원하는 것을 버려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해도 좋다. 내가 걸었던 길에 후회가 없다면.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좋다. 내가 걷는 길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내가 디디는 인생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이 그림의 붓질 자국처럼 분명히 흔적을 남긴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던 정여울 작가는 작가의 길을 포기하려고 떠났던 여행에서 결국 반 고흐처럼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이후 성공한 작가로 우뚝 섰다. 그는 자신을 버티게 해준 빈센트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모든 곳에 갔다. 빈센트가 태어난 네덜란드의 쥔더르트, 반 고흐 미술관이 있는 암스테르담, 빈센트가 수많은 밤하늘을 담은 프랑스의 아를, 벨기에 보리나주의 고흐 작업실, 빈센트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와 묻힌 곳까지. 두더지 게임의 방망이를 맞듯 나를 쉴 새 없이 두드려대는 실패의 공포에 하얗게 질릴 무렵, 나 역시 작가가 느낀 위로에 마음이 몽글해졌다.


프랑스가 자연의 빛으로 빛났다면,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인간 내면의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에곤 실레는 28세의 짧은 인생에서 100점의 자화상을 그릴 만큼 인체를 해체해 내면의 성에 대한 욕망, 죽음에 대한 불안을 탐구했다. 그는 종종 “나는 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그린다”고 말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비롯해 표현주의 예술은 제1·2차 세계대전 등 역사와 맥을 같이해서 볼 때 더 잘 다가온다. 작곡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으로 유명한 체코의 블타바 강은 민족 정서와 흥을 채워주는 곳이었다. 오랫동안 다른 국가의 지배를 받았으면서도 인구 90%가 체코어를 쓰고, 2004년 EU 정회원이 됐지만 아직도 자국 화폐 ‘코루나 (Koruna)’를 사용하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맥주 소비량이 많은 나라. 맥주를 하도 좋아해 양조장까지 운영했던 극작가 하벨이 이끌었던 벨벳 혁명은 소련의 독재로부터 체코인을 해방시켰다.


빛을 맘껏 쐰 덕분일까.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버틸 코어가 바싹 단단해졌을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면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탁월하고도 민감한 예술가 선배들의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위로와 격려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은 나처럼 말이다.


Writer 이원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10년간 기자로 일했다. 〈니체〉를 번역하고,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를 썼으며, 현재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 철학이 세상을 해독하는 가장 좋은 코드라 믿는 워킹 맘.

- <엘르> 2023년, 8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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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브랜드, 서비스, 책, 전시, 공간까지 엘르보이스가 눈여겨보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부암동, 박찬우(레이지버거클럽 운영 중)

Q.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종로구 부암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살아왔으니 5대가 이어진 곳. 
Q. 부암동의 매력
A. 과하지 않음. 여유로움이 있고, 서울 안에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동네! 
Q. 동네를 사랑하는 방법
A. 지역 커뮤니티에 각자의 방식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해 핼러윈데이에는 부암동 와플 대표님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기획해 동네 사람들이 분장하고 사탕을 나눠줬다.
Q. 동네에서 내가 꿈꾸는 것
A. 잘 사는 것과 타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 
Q. 동네 단골집 
A. 일본에서 온 부암동 주민이 운영하는 맘스키친과 한 식탁에서 다른 손님과 도란도란 식사할 수 있는 명란식당, 자하손만두 등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곳들.
Q.변치 않길 바라는 점
A. 백사실계곡과 거리의 아기자기한 건물과 풍경들. 나에게 부암동이란 내 뿌리, 정체성, 자부심. 내가 보며 자라 온 것들을 다음 세대에도 전해주고 싶다.
영등포동, Mogwaa(신스 펑크와 모던 펑크 장르의 음악을 하는 DJ)

Q.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1988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Q. 동네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A. 영등포 지하상가에 있던 음반점 ‘예술의 전당’ 사장님이 가끔 생각난다
Q.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A. 동네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겨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그렇게 동네를 사랑하고 아껴줄 것이다.
Q. 동네 단골집
A. 영등포동에 있는 인도 커리 전문점 에베레스트네팔 정식을 먹으면 영혼이 충전되는 느낌이랄까.
Q. 변치 않길 바라는 
A. 모든 점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지금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재개발로 밀리고 있는 영등포시장 인근 주택가다.

 수유동, 박의령(글을 쓰고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는 에디터)


Q.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태어나서 대학생 때까지.

Q. 자주 가던 장소
A. 동네 맨 꼭대기에 빈티지스러운 한 동짜리 호텔과 ‘구름의 집’이라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는 그곳이 웨스 앤더슨의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다시 대형 베이커리 카페로 문을 열었는데, 예전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Q. 이곳에서 내가 꿈꿨던 것
A. 사진가가 되고 싶었다. 동네를 찍은 사진에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북에 붙여 일본 후지필름에서 주최하는 사진 콘테스트에 국제우편을 보냈다.
Q. 동네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것
A. 4·19혁명 순국열사들. 집 앞의 4·19국립민주묘지를 수백 번 이상 갔다.
Q. 수유동의 매력
A. 수유역은 먹자골목과 유흥으로 유명하다. 거기서 조금만 들어가면 온갖 호화 주택과 묘지, 연수원 등이 얽혀 있는 동네가 나타난다. 소나무 천지인 공원과 산,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다니는 맛집과 교외 스타일의 대형 카페, 5성급 스파 호텔 등 없는 게 없어 뭐든지 할 수 있다.
Q. 변치 않길 바라는 점
A. 맑은 공기. ‘장미원’ ‘가오리’ 같은 귀여운 지명. 내게 수유동은 사랑스러운 변두리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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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1778, 김*민 2199, 양*옥 0128, 이*진 9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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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여러분의 목소리 중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모든 분의 소중한 피드백 하나하나 귀 기울이고 있으니 오늘의 <엘르보이스>가 어땠는지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라는 타이틀이 너무 좋아요. 이 타이틀 하나로 마음이 따뜻해지며 몽글한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은 어린 시절의 동네 모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는 새벽마다 두부 아저씨가 오고, 작은 구멍가게가 있고, 겨울마다 썰매 타던 산이 있던 그 동네랍니다. 생각하니 많이 그립네요. ^^

-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들을 담아서 내는 컨텐츠들이 너무 좋아요. 도서전에서 엘르보이스 담당자분들을 뵈었었는데 정말 파이팅하시는 분들이라 지나가던 저도 같이 힘을 받았습니다!!

- 엘르보이스를 읽으면서 가슴까지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생각이 많은 워킹맘, 여성, 어린 시절부터 40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별별 경험들도 있었고 일상의 소중함도 있었고 고통받았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남는 건 일상의 소중함이 남더라고요, 일상이 모이고 모여 그저 평범한 일들과 하루가 내면의 단단함을 유지해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어요. 엘르보이스에 나오는 글들은 그런 글들 같아요.

-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에세이 작가분 저와 비슷한 점이 많네요. 저도 경기도에 살다 서울로 이사를 하였고 강서구에서 살면서 목동으로 종종 학원에 다녔거든요. 그래서인지 더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목동으로 힘껏 다니는 학원은 그 동네 애들의 암묵적인 루트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서울에 와서 신기했던 사실은 서울 애들은 시장이 아니라 이마트에 간다는 사실이었어요. 제가 살던 동네는 이것저것 바뀐 게 많아 아쉽지만, 아직 작가님의 동네는 활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 괜히 좋네요. 엘르보이스 뉴스레터 잘 읽고 있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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