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서장원 #내가만진책 #조얀들
당신의 가장 가까운 문학 친구, 차차
48호  |  2026년 2월 25일 수요일

안녕하세요. 친구님의 가장 가까운 문학 친구 차차입니다.


친구님은 마지막으로 소원을 빈 게 언제인가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기 전에, 혹은 산속에서 작은 돌탑을 쌓으며 우리는 저마다의 바람을 빌곤 하지요. 이번 주 [작은 이야기]에서는 서장원 작가의 단편 「기도」를 소개합니다. 누군가의 행복을 비는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빌어 온 바람들 속에 어떤 얼굴이 깃들어 있는지 돌아보게 될 거예요.


이어지는 [내가 만진 책]에서는 계절 속 숨겨진 이야기를 그리는 조얀들 작가가 작은 도감집 『계절 안부』를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을 들려줍니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기쁨이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자라나 책이 되기까지, 씨앗을 닮은 이야기를 차차에서 만나 보세요.



작은이야기 서장원 「기도

내가만진책 조얀들 어쩌면 씨앗을 만드는 일


기도

 거실에는 모든 인원이 넉넉히 앉을 수 있는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엔 높이가 낮은 나무 탁자가 있는데, 오래된 물건 같았다. 어쩌면 정원이 어릴 적부터 사용한 물건일지도 몰랐다. 정원의 어머니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스웨터 몇 벌과 거의 새것 같은 등산용 백팩, 카메라, 선글라스, 털장갑 등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 정원이 평소 사용하던 물건 중에서 친구들에게 줄 것들을 추린 듯했다.


 “너희 필요한 거 있으면 좀 가져갔으면 해서.”

 정원의 어머니가 상자 속에서 물건들을 꺼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상자에서 나온 것은 손목시계였다. 베란다에서 거실로 쏟아지는 햇볕을 받아 메탈 손목시계가 반짝거렸다. 그건 내가 정원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원래는 남성용으로 출시된 제품인데, 정원은 여성용은 시계판이 너무 작아 답답하다며 그것을 골랐다. 그러고는 옷차림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 시계를 차고 다녔다. 겨울에 정원의 왼손을 잡으면 선득해질 만큼 차가운 금속이 한 번씩 살갗에 닿곤 했다. 나는 어째선지 그 감촉이 무척 비밀스럽게 느껴져서 정원의 손목을 잡고 시계를 만져 보곤 했다.


 “부담스러우면 가져가지 않아도 돼요.”

 그녀가 상자를 보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나를 두고 말했다. 나는 혹시 내 표정이 좋지 않았나 싶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갖고 싶어요. 안 그래도 정원이 기억할 만한 게 있었으면 했어요.”

나는 말했다. 그건 사실이어서, 내게는 정원을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정원이 내게 선물해 준 물건들을 제외하면 우리 집으로 놀러 올 때 입곤 했던 파자마와 티셔츠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는 시계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기환 씨가 먼저 시계를 집어 들었다. 정원의 손목에 맞게 밴드의 체인을 여러 줄 제거한, 다이얼은 크고 밴드는 짧은 그 이상한 시계를 바라보면서, 기환 씨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곁에 앉은 영진 씨가 다정한 말투로 일렀다.

 “그건 너 가져.”

정원의 어머니가 시계의 손목밴드를 늘릴 수 있는 체인을 가져다주겠다면서 자리를 비운 사이, 영진 씨와 규석 씨가 그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는데, 나는 그때에야 다른 친구들이 기환 씨를 조금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기환 씨가 정원을 좋아했던 것을 다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기환 씨는 정원을 좋아했다. 정원은 그 사실을 알았고, 나 역시 정원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정원은 그의 연정을 모른 척했다. 밤늦게 보내오는 문자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고, 단둘이 만나자는 제안은 내가 알기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정원은 기환을 불편해했다. 다만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지나치게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기환 씨에 대해 얘기했을 때, 정원은 이제 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겠다고 내게 말했었다. 잠시 뒤 정원의 어머니는 시곗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제가 시계를 갖고, 기환 씨가 가방을 가지면 어때요?”

기환 씨는 조금 난처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그러자며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왔다. 기환 씨가 내 곁에 앉자 소파 쿠션이 아래로 훅 꺼졌다. 기환 씨는 커다란 손을 펴서 반짝이는 시계를 보여 주었다.

 “이거 누나가 선물하신 거죠?”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묻고는 시계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시계를 받아 들었고, 순간 묵직한 무게감을 느꼈다. 나는 시계를 왼쪽 손목에 감았다. 찰칵 소리와 함께 시곗줄이 잠겼다. 시계는 내 손목에 꼭 맞았다.

기환 씨는 살짝 취한 듯 보였다. 덩치와 다르게 술이 약한 듯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정원의 어머니는 와인을 한 병을 꺼내 왔고,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기환 씨와 영진 씨는 정원의 어머니와 함께 와인을 두어 잔씩 마신 터였다.

 “정원이가 그랬어요? 내가 줬다고?” 기환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청 좋아했어요. 맨날 차고 다녔잖아요.”


 그는 정원에 대해 더 말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고, 나는 그 점이 반가웠다. 정원의 집에 머무는 동안 정원의 친구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 냈지만 정작 정원에 대해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대화는 계속해서 정원의 주변을 에두르다가 다른 주제로 넘어가거나, 의미 없는 좋은 말로만 마무리됐다. 정원이 정말 좋은 친구였다는 것. 정원이 가족들에 대해 많은 애정을 드러냈다는 것. 그 정도가 내가 그 자리에서 정원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 이야기들은 온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나는 정원에 대해 조금이라도 말하거나 듣고 싶어서 마음이 초조했다. 정원의 죽음 이후 정원에 대해 말할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이 자리를 오래 바라고 기다렸다. 나는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정원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정원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도 궁금했다. 정원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가까운 친구로 소개하곤 했다. 머지않아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정원의 시간이 멈춰 버리며 이 모든 것은 가정의 형태로만 남게 되었지만.


 정원 어머니 댁을 나와 어둡고 조용한 신도시 도로 위에 있을 때엔 정원에 대해서 이런저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사이 소나기가 쏟아져 도로는 젖어 있었다. 도로의 물기 위에서 신호등이 어룽거렸다. 나는 그걸 지켜보다가 옆자리의 기환 씨에게 문득 물었다.

 “정원인 산에 왜 갔을까요?”

 정원은 혼자 등산을 갔다가 실족했다. 정원은 한 번씩 혼자서 산을 올랐는데, 정원에게 듣기론 등산보다 산행에 가까운 일인 듯했다. 운동화를 신고 아스팔트가 깔리거나 야자수 매트가 놓인 길을 조금 걷다 오는 정도의. 그날 정원은 북한산에 혼자 올랐다. 어떤 이유에서 험한 길을 택해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정원이가 산에 가끔 갔던 것도 잘 몰랐거든요.” 기환 씨가 말했다.  “그냥, 그즈음에 뭘 기도하러 간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무슨 기도인지는 저희한테 말을 안 해줬고요.”

 “기도요?”

 “네, 그날도 산에 간다고 안 하고 기도하러 간다 그랬어요. 절에 간다고 했던 거 같아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정원은 내게 무언가를 기도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정원은 뭘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삶에서 주어지는 것들을 약간은 체념하고 수용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즈음 정원은 변화를 겪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무언가를 기도한 쪽은 나였다. 정원의 말에 따르면 나는 온갖 것에 대고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곤 했다. 달과 별과 바다와 어쩌다 마주친 작은 돌탑 같은 것들에 대고서 나는 이런저런 소망을 빌었다. 정원과 만나던 시기에는 정원과의 행복을 주로 빌었다. 다 옛날이야기다. 정원이 죽은 뒤로는 기도를 안 했으니까.


 기환 씨를 내려 준 뒤 나는 차를 갓길에 세워 두고 잠깐 밖으로 나왔다. 이미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는 거의 없었다. 달은 보이지 않았고, 짙은 구름이 어둡고 둥근 천체를 감싸고 있었다. 곧 다시 비가 내릴 듯했다. 나는 왼쪽 손목에 걸린 무겁고 둥근 시계 알을 만져 보았다. 차 안의 더운 공기 덕분에 시계는 차갑지 않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왼손 손목을 잡고 아주 오랜만에 잠깐 기도했다.

 

 
차차 이 글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장원 저는 소설의 화자가 과거 그랬던 것처럼 온갖 것에 대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습관에 대해 소설로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생각한 것보다는 슬픈 이야기가 된 것 같네요.

차차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정원 『1938 타이완 여행기』를 읽고 있습니다. 기행문 형식의 소설인데요, 여러 가지 타이완 음식들이 등장합니다. 절대 공복에 읽을 수 없는 책이에요.


차차 다른 작가가 꼭 써줬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나요?
정원 21세기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논리적이고 치밀한 퀴어 치정 미스터리 소설을 동료 작가님이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글쓴이 서장원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씨앗을 만드는 일

 

 한 해의 농사는 봄이 아닌 지난겨울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수확을 마친 밭에 마지막으로 풀을 정리하고 낙엽 등으로 덮어 마무리를 잘 해두어야 다음 해의 농사가 순탄할 수 있다. 사람의 일도 다르지 않다고 여겨 매해 12월에는 한 해를 갈무리하고 1월에는 방 정리를 하며 새해를 잘 시작하려고 했는데, 올해 1월이 거의 다 지나가도록 방은 여전히 지저분하다. 정리되지 못한 일이 두서없이 쌓여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시기에 내가 뭘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내가 작년 1월에 야심 차게 읽기 시작했던 『세계 끝의 버섯』은 다 읽히지 못한 채 오뉴월쯤 제작하던 『계절 안부 - 6월의 편지』 미니북을 눌러두는 용도로 쓰이다 그마저도 임무를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수납장 위에 올려져 있다던지 하는. (만들다 만 책은 수개월째 압착 중이다.)


그래서 작년에 내가 만든 책은 어디에다 뒀더라? 복잡한 방 안 유일하게 정리되어 있는 도구 수납장 첫 번째 칸에서 ‘1/100’이라 적힌 『계절 안부 - 6월의 편지』 첫 번째 에디션을 찾았다. 이상하게 1번이라고 적힌 건 잘 팔지 못하고 아껴 두는 편이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는 나의 책. 손바닥보다 작은 페이지에 6월의 계절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다.


 ‘아참, 6월은 이런 계절이었지!’ 풀과 열매와 꽃을 그린 그림을 보니 지금은 밖에 눈이 내리지만, 유월의 싱그러움이 되살아났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잠시 독자의 입장이 된다. 그만큼 책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생긴 모양이다. 한창 책을 만들고 있을 때는 책을 보고 또 보느라 질려 버리거나 이상한 점은 없는지 찾기 바쁘기 때문에, 제작자로서 자각이 들기 전 스스로 못난 구석을 지적하지 않는 이 순간이 나는 좋다. 내 책이지만 마치 처음 책을 보는 듯 신선한 느낌이다. 책은 독자를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여기는데, 과거에 만든 책이 미래의 나에게 닿아 잠시 완성의 순간에 머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담 독자가 된 김에 작가와의 대화를 해본다. “작가님은 어떤 계기로 이 책을 만드셨나요? (= 나 이 책 왜 만들었더라?)” 아직 지난해를 마무리하지 못한 나는, 작은 책을 손에 쥐고 작년을 회고해 본다. 흠. 여러모로 환골탈태라 할 만큼 변화가 많은 해였다. 재작년에는 번아웃 때문에 지하 수천수만 미터 아래에 있다가 차근차근 회복해서 ‘조얀들’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묵혀 둔 것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절기를 담은 그림 ‘철든 그림’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작은 미니북 『계절 안부 - 6월의 편지』를 만들었다.

 절기에 관심을 가진 건 코로나 팬데믹 시절, 온라인 독서 모임을 하던 때였다. 어떤 책에서 ‘철들다’라는 말에서 ‘철’이란 때와 절기를 의미하고, 철이 든다는 건 ‘때와 절기를 알고, 그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라 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 온 말처럼, 내가 찾던 삶의 지혜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아 ‘언젠가는 절기를 주제로 그림을 꼭 그려 봐야지’ 다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작년에 절기에 관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거다. 때에 맞춰 다섯 권 정도 돌아가며 같은 절기 파트를 읽었다. 그 시간이 나만의 절기 의식처럼 여겨지면서도, 동시에 시간의 경계 사이에서 온전한 쉼이 되어 주기도 했다. 절기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창밖 세상을 관조하게 된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받아들이며, 그 순간만큼은 눈가가 부처님처럼 느긋해지는 것이다.


 철마다 바뀌는 계절의 얼굴을 구분하려면 풀과 꽃과 새와 친해져야 하고, 아는 만큼 삶의 풍류가 깊어진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 성미산 훈장님께서 성미산 어느 바위에 붙인 이름을 알려 주시며, 이름이 있으면 소중해지고 그러면 사람들이 산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냐고 하셨는데, 이름을 알면 알아차리는 즐거움도 있지만, 지키고 싶은 애틋함도 생긴다. 더불어 어느 책에서,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이 있는데 사람은 너무 인류라는 종만 알고 있다는 말에 내 좁은 시야를 부끄럽게 여기던 터라, 절기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이름을 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도 이어졌다. 이해하고 싶고, 함께 즐기고 싶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 쌓여서 작은 도감집인 『계절 안부』가 만들어진 거라 볼 수 있다. 작지만 소중한 내 정리 노트인 셈이다.

 돌아보면, 내가 만든 독립 출판물들은 처음엔 단지 정리하고 싶다는 단순한 의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리저리 조각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좀 더 다듬고 정돈하는 과정을 거쳐 누군가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길 때 책으로 펼쳐 낸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만드는 일은 어쩌면 씨앗을 만드는 일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스쳐 간 일들을 하나로 응집한 다음 다시 세상으로 흩뿌리는 일. 그 씨앗이 누군가에게 닿아 각자의 환경에서 여러 모양으로 싹이 트고, 혹여나 열매까지 맺는다면 매우 기쁠 듯하다.


조금 늦었더라도, 이 글을 마치면 방 정리를 시작해 보려 한다. 켜켜이 쌓인 종이 더미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하다 보면, 다음 씨앗의 재료를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글쓴이 조얀들

계절 속 숨겨진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작은 힌트와
마음을 풀어주는 다정한 위트가 숨어 있다고 믿습니다.

8월 🍊 며칠간의 연휴를 마치고 일터에 복귀한 오늘, 짙은 고단함이 밀려오는 오후에 차차가 보내준 편지를 열어보고 저 역시 이 문장 앞에 오래 머무르고 말았어요. "비록 내 마음이 부서지긴 했지만, 마음은 원래 부서지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이 저의 길고 지난했던 많은 순간들을 가만히 안아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삶에서 반드시 애도가 필요한 때, 저 역시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더 차려야 해'라는 말을 바깥으로 안으로 외쳐가며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멍이 든 부분들을 발견하곤, 이렇게 잘 깨지고 마는 스스로를 탓하고 부끄러워 하기도 했는데요. 나이를 먹어도 결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나의 도려내고 싶은 속성으로만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문장을 오래도록 새기면서 또다시 예고없이 마음이 산산조각나더라도 그런 나를 조금 더 수용해주고, 가만히 바라봐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좋은 문장과 이야기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차
 ➡ 8월 님, 편지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그 문장이 그렇게 오래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차차도 마음이 조용해졌어요. 마음이 부서지기도 하는 우리를 조금 덜 탓해도 된다는 생각, 차차도 공감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봅니다. 바쁜 하루 가운데서도 이렇게 마음을 나눠줘서 고맙고, 며칠 남지 않은 2월은 조금은 덜 고단하길 바라요.

친구

오늘 차차의 편지는 어땠나요?

간단한 감상이나 차차에게 하고싶은 말을 전해주세요!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차차 또 만나요. 안녕!

💞 차차의 편지가 마음에 든다면 친구에게 소개해 주세요.

대표자
김지현 (metaph2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