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라고는 화분밖에 모르던 내가 한 달 사이에 가구만 6개를 바꿨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립한 이후로부터는 집을 꾸미는 데 일말의 관심조차 없던 자취생이었는데, 지금은 무드의 통일성을 해치는 무언가가 있다면 과감히 버리기도 하고 미세하게 삐뚤어진 액자의 각도를 바로 잡기도 한다. 이 행동의 이유는, 역시 내가 ‘모던 스타일 인테리어’에 꽂힌 덕분이렸다. 

큰맘 먹고 비싼 돈 주고 인테리어했는데 금방 질려버리면 그것만큼 아까운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던 스타일 인테리어’는 내 사랑을 듬뿍 받을만하다. 심플해서 질리지 않는다. 오직 깔끔함과 실용성만을 강조하면서 필요 없는 장식은 과감히 배제하고 세련된 느낌만 남긴다. 

핵심은 무채색과 날렵한 직선을 주로 사용하되, 인공적인 곡선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 가령 내가 제일 최근에 집에 들인 이 발 매트는 블랙과 화이트 조합으로 깔끔하면서, 사각형 창 프레임에 둥근 로고 디자인을 자랑한다. 단조로운 색 조합이지만 체커보드 패턴으로 모던 스타일에 악센트를 더하는 느낌. 이런 치트키 아이템 하나는 색상의 대비를 선명하게 줘서 뚜렷한 인상을 주는 장점이 있다. 아침에 샤워하고 한번 지르밟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언제는 한번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 방문한 적이 있다. 말린 사과 모형과 바나나가 올려진 트레이를 보며, 때때로 부엌에 먹을 것이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아 아침을 거른 채로 집 밖을 나서던 나를 떠올렸다. 냉장고 옆에 과일이 쌓여 있어도, 아침을 먹고 출근해도 늦지 않는 시간임에도 전혀 챙겨 먹지 않던 나날이었다.

건강을 위해 아침에 과일을 먹는 사람은 있어도, 트레이 위에 올려둔 오렌지의 빛깔이 예뻐서 아침을 먹게 되는 사람은 그만큼이나 없을 것 같다. 트레이의 모던한 다크 그레이 색과 보색 관계인 오렌지가 유난히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착각. 오렌지 두어 개 가지런히 올려놓으면 당장이라도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상큼한 과즙을 음미하고 싶다. 누군가 바쁜 시간에 어떻게 과일은 꼬박꼬박 잘 챙겨 먹냐고 물어본다면 조금은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입을 뗄지 모르겠다. 트레이가 저를 꼬셔서요.

앞서 말했듯 처음 자취를 시작했던 시절엔 인테리어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저녁 늦게 술 한잔하러 방문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최소한으로 들였던 것이, 바로 ‘조명’이다. 공간을 어둡게 하고 조명 빛을 밝히면 장점이 있다. 분위기도 나름 아늑해질뿐더러 한쪽 끄트머리에 쌓여있는 빨랫 더미를 그림자 속에 숨길 수 있으니까. 그러나 친구들이 집을 떠나면 조명을 쓸 일이 딱히 없었고, 알게 모르게 조명등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발상이 전환된 건 최근이다. 모던 인테리어에 빠지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인스타그램에서 볼만한 흔하디흔한 감성 조명을 버렸다. 대신 차가운 스틸 소재의 스탠드 조명을 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잘한 선택이다. 소파 바로 옆에 배치하니 애매하게 비어있던 구석 공간을 쉽게 활용할 수 있을뿐더러 보다 감각적인 일상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 가령 나는 퇴근을 하면 대부분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눈부심이 덜한 부드러운 빛감 덕분에 길게 누워서 책을 읽을 때도 좋고 티비로 넷플릭스를 시청할 때도 좋다.

한번 쓰면 지울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볼펜을 사용한다. 볼펜으로 공부도, 일도 하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연필을 꿈꾼다. 물론 내가 매일 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서. 

볼펜으로 그린 그림은 귀엽고, 샤프로 그린 그림은 거칠고 날카로운 미가 있는데, 연필은 또 묘하게 다르다. 힘을 주었다 빼면서 강직도를 조절할 수 있을뿐더러 선의 방향에 따라 질감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그 세심함을 좋아하는 나는 번거롭더라도 구석에 연필깎이를 둔다. 하루 빠짐없이 사용하진 않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연필을 꺼내어 뾰족하게 깎는 시간을 가진다. 고깔모자처럼 뾰족하게 깎인 연필을 보면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도 덜어지는 기분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