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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T BAKERY l NEWS LETTER 2022. FEB. WINTER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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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Lee Soyoung
식물세밀화가이자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 대학에서 원예학을 공부하고 국립수목원에서 식물세밀화를 그렸다. 현재 국내외 식물연구기관, 식물학자들과 협업해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식물, 주변에 있으나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저서로 <식물의 책> <식물과 나> <식물산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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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하는 당신이 되기를
- 마리안 노스(Marianne North), 탐험하는 식물 기록자의 그림
산책을 좋아하시나요? 추운 겨울에는 볼 식물 풍경이 마땅치 않아 산책하기를 마다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겨울에 식물을 보러 간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밖에 볼 식물이 있냐 묻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겨울에도 식물은 생생히 살아 있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식물 풍경은 무척 많습니다.
까맣게 익어가는 산수유와 오미자 열매 그리고 가지에 하나 남은 노란 히어리 잎, 매끄러운 배롱나무 수피와 산부추 열매의 깍쟁이, 그리고 솔송나무의 건조한 구과. 모두 지난 일월 마지막 주에 만난 식물입니다.
식물을 볼 때마다 저는 이들이 참 성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비가 내리면 그 양만큼의 수분을 머금어 잎을 생장시키고, 기름진 토양만큼 뿌리는 단단해집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빛과 수분과 영양분만큼 잎은 생장하고, 꽃은 개화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가끔은 태풍이 불거나 인간에 의해 훼손되어 그간의 수고가 한 번에 꺾이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재해 역시 그들에게 주어진 현상이기에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당장 내일 사라질 위험해처하더라도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 이것이 식물이 제게 알려준 삶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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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한국의 향나무>, 2010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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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세밀화를 그리는 일도 마찬가지더군요. 식물을 본 시간만큼, 식물과 나의 거리만큼 종이에 그려낼 수 있어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딱 그만큼 종이에 빈 공간이 생기고, 요령을 부리면 또 그만큼 틀린 결과로 도출됩니다. 제가 식물에게 다가간 횟수만큼 저의 그림은 정확해질 수 있고, 그렇게 저는 식물세밀화가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틈만 나면 식물을 찾으러 밖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식물은 저를 자꾸만 움직이게 하고, 더 멀리 탐험하도록 만듭니다.
물론 식물이 나를 자꾸만 밖으로 밀어낸다고 바로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행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더군요. 제게 탐험할 용기를 가져다준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마리안 노스(Marianne North)입니다.
마리안 노스(영국, 1830-1890)는 19세기에 활동한 식물세밀화가이자 작가이자 식물 연구자입니다. 그는 동시에 탐험가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영국 큐가든(Kew Gardens), 그의 이름을 딴 ‘마리안 노스 갤러리(Marianne North Gallery)’에서 였어요. 사방을 가득 매운 수백 장의 종이에는 그가 평생 세계를 탐험하며 두 눈으로 본 식물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유화로 그린 식물은 생생히 살아 있는 듯했고, 전 세계의 식물상 전반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식물 형태는 다양했습니다.
이 전시에서 특히 감동했던 것은 그가 이 그림들을 그리게 된 배경이에요.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 여성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만 했습니다. 여성이 혼자서 여행을 하거나 자신의 직업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았죠.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에 반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나갔습니다. 미국, 브라질, 칠레, 호주, 뉴질랜드, 일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는 동반자 없이 당시 유럽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위주로 17개국을 탐험했으며, 긴 드레스를 입고 산에 올랐습니다. 탐험지에서 본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여 결혼할 새 없이 800여 작품을 완성했고, 자신의 기록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직접 신문에 작품을 소장, 전시할 기관을 찾는 공고를 냈습니다.
그는 제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 자주적이며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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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속에서. 식물이 있는 현장으로 가는 것은 식물세밀화가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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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그릴 식물을 찾기 위해 자주 산에 오릅니다. 등산화에 등산복을 입고 산길을 해치기도 하고요. 저는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식물을 직접 찾아 나서는 시간을 즐깁니다. 물론 이 과정이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산에서 뱀이나 고라니 같은 동물을 만날 때도 있고, 곤충에 심하게 물려 한동안 병원을 다닌 적도 있습니다. 가끔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요. 그러나 수 시간을 산속에서 헤매다가도 내가 보고 싶은 풀 단 한 포기를 만나는 순간 그간의 고됨은 잊힙니다. 그렇게 전나무를 그릴 때에는 지리산을 올랐고, 구상나무를 그릴 때에는 제주도로 갔습니다.
마리안 노스는 “식물을 발견하고, 그림으로 그릴 때 가장 행복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왜 그가 평생 동안 세계를 떠돌아 탐험했는지,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르네오 원산의 네펜데스(Nepenthes northiana Hook.f.), 아마릴리스의 친척 중 한 종(Crinum northianum Baker), 세이셸에서 발견된 Northia속의 유일한 종(Northia seychellana Hook.f.)은 마리안 노스가 가장 처음으로 발견해 그림으로 기록한 식물입니다. 이들은 그로 인해 세상에 존재가 알려졌고, 이름이 붙었습니다.
마리안 노스의 그림 속 나무들은 수형조차 모두 다릅니다. 곧게 뻗은 가지, 낮게 누운 가지, 수백 개로 뻗은 공기뿌리 그리고 잎이 무성해 가지와 줄기가 보이지 않는 관목. 그의 그림은 지구의 식물 다양성 그 자체입니다.
마리안 노스가 인생에서 자주적인 태도와 용기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만난 이 다양한 식물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오랜 진화를 거친 식물의 형태를 보며 같은 생물로서 삶의 영감을 얻습니다. 식물은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형태로 드러내고, 그런 형태를 들여다보는 일은 인생의 드높은 선배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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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nne North(1830-1890)가 세계를 탐험하며 그린 그림에는 당시 존재했던 다양한 기후대의 나무가 기록되었습니다.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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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같은 종일지라도 개체마다 살아가는 형태가 다르기도 합니다. 집 앞의 조경수로 심어진 향나무는 전정이 되어 수형이 둥글게 자라지만 앞산 중턱에만 올라도 그곳의 향나무는 옆에 있는 나무를 피해 휘어져 자라고 있더군요. 언젠가 경상북도 봉화에서 본 향나무는 키가 무척 낮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추측건대 높은 지대에서 산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낮춰 작은 키로 자랐을 겁니다. 내가 움직이는 만큼 더 다양한 향나무의 삶을 볼 수 있으며, 내 눈앞의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제 경험을 장황히 설명하더라도 당신이 직접 산에 가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향나무의 다양성을 상상하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모험을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집 앞 화단의 흔한 향나무 한 그루를 보아도 좋고 가까운 뒷산에 올라 녹색 잎을 매단 나무를 따라 산을 올라도 좋습니다. 당신이 움직인 만큼, 걸어나간 만큼 더 다양한 생물의 삶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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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your wonderful winter.
계절의 경계에서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겨울의 이름을 담은 편지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는 소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나눈 온기로 올 한 해를 안녕히 지내길 바라봅니다.
모든 예술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봅니다. 그림을 통해 사람과 삶, 나를 만난 9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월부터 3월까지, 겨울과 봄 그 사이에, 매주 금요일마다 당신의 편지함으로 찾아갑니다. 답장을 써보내주셔도 좋아요. 우리 함께 예술의 찬란함을 느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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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의 표지를 가진 사람, 타투이스트 미래의 미술 취향
미래는 타투를 통해 자신만의 삶과 가치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몸에 기록을 남기고, 누군가를 상징하는 표식을 새기며 고유의 표지를 만들어갑니다. 타투도 패션의 한 조각으로 개성을 보여주는 옷이라고 말하는 타투이스트, 미래는 과연 어떤 미술 취향을 가지고 있을까요?
- 찬란한 기록의 힘, 아날로그키퍼 대표 문경연의 미술 취향
문경연은 아날로그키퍼를 통해 생각과 감정, 온기가 오래도록 머무르는 문구를 선보입니다. 손으로 정성껏 써 내려가는 아날로그의 세계는 따스함이 가득합니다. 문구 덕후들을 사로잡은 문경연은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고 있을까요? 문구인들의 마음을 흔드는 문구 브랜드, 아날로그키퍼(Analogue Keeper) 문경연 대표의 미술 취향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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