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를 읽고
Morning Read 16. ☕️
"세상을 바꾸는 건 관점"
-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 조경숙


친구가 테크 업계의 이면을 다루는 책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를 낸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 동안 <코드와 살아가기>, <실리콘 밸리의 목소리> 같은 해외 이야기만 읽다가 드디어 한국의, 가장 가까운 곳의 이야기를 여성의 관점으로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으로 빠르게 사서 읽었다.


책에는 테크 업계에 진입하기 위한 과정부터 진입한 후의 경험까지 여러모로 우리가 보통 접하는 관점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담겼다. 예를 들면 압박을 견뎌내는 게 역량이며('당연한 거 아냐!?'), 성장을 위해 끝없이 자기계발을 하느라 일상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스타트업/테크 업계가 가지고 있는 낙관주의의 이면 같은 것들. 개발자의 독성 말투나 과대 대표 현상은 평면적으로 다루지 않고 전반적인 노동 환경과 시스템에 대해서도 짚고 있다. 참, 내가 취업을 준비했던 6-7년 전과 달리 부트캠프 경향이 회사 이름을 걸고 더 입시 경쟁화 된 것은 새롭게 알게 됐다. 책에 나오는 관점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다른 관점이 더 많이 덧붙여지면 좋겠다. 


책에서 다루는 몇 가지 주제만 빠르게 소개해본다.


(1) 개발자의 독성 말투, 단지 개인의 탓일까?

    불친절하고 날선 말투에 개인의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현상이 특정 직군에게서 자주 발견된다면 한 번쯤 그 너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 기술력부터 정신력까지 모든 걸 혼자 감내해야 하는 노동환경에서 소통에 힘쓸 여력이 부족해서일 수 있기 때문이다.


(2) 테크 업계 낙관주의의 이면

    실제로 많은 테크 기업이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서비스’를 빠르게 출시하고 이를 토대로 또 다른 가설을 세워 기능을 구현하는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이런 방식은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를 반영한다. 그러나 동시에 방향성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단 하나라도 시장성에 들어맞는 길을 찾아보는 데 주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하나의 문을 열기 위해 백 개, 천 개의 열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가운데 단 하나라도 구멍에 들어맞아 잭팟이 터지기를 기대하면서. 테크 업계가 가진 낙관주의의 이면에는 ‘뭐든 하나만 대박 나면 된다’는 한탕주의가 숨어 있다. 서비스가 작동하는 산업이나 생태계가 어떤지, 이 문을 열었을 때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가운데에서 어디로 방향을 잡을지 깊이 있게 토론하는 것은 구식의 것으로 여겨진다.


(3) 압박 견디기라는 역량

    얼마 전 구인구직 SNS인 링크드인에서 한 기업의 개발자 구인공고를 봤다. 자격요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압박을 견디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We are looking for people who have the ability to work under pressure.” 그 회사는 부당한 강요를 개인의 능력으로 치환하는 묘기를 부린 것이다. 실제로 ‘정신력’, ‘스트레스 관리’, ‘회복탄력성’ 따위의 용어를 동원해 압박적인 노동환경을 개인이 돌파해야 할 몫으로 전가하는 경우를 수시로 목격한다.


(4)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는 유지보수 노동

    유지보수 노동은 강도도 양도 상당하다. … 그러나 유지보수 노동은 결코 빛나는 성취를 안겨주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때가 아닌 이상에야 눈에 잘 띄지도 않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유지보수 노동은 제대로 값이 매겨지지 않고 대체로 평가절하된다.

그러나 아무도 컵을 씻지 않는다면 어떨까. 누구도 거리를 청소하지 않는다면.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사람도,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을 고치는 사람도 없어진다면.


테크 업계에서 일하면서 테크 업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다. 꼭 테크 업계가 아니더라도 직장이라는 커뮤니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관점을 이야기 하기란 당연히 불안한 일이다. 안그래도 살아남기 어려운 업계,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스스로 불안을 더하기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 어떤 발언이나 이런 책을 내지 않더라도, 내부자의 당사자성과 외부자적 관점을 동시에 견지하며 지내는 것 자체가 심리적 부하를 가중시킨다. 그래서 분열적인 상황에 계속 머무는 것은 한 사람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이런 부하는 젠더 관점이나 비전공자, 혹은 유지보수 노동자 등 다양한 방향에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하를 느끼다 어느 순간부터 어떤 것들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도 했고, 그 외 이런저런 이유들도 있었다. 신뢰가 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업계의 낙관주의를 좀 더 믿어보자, 같은 방식으로. 워낙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이 강한 나에게 낙관주의를 접하는 게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는 방향에서. 또 한편에는 시간(경력)을 더 쌓아서 어떤 자리를 가지게 됐을 때로, 즉 나중으로 나의 관점을 유예해보자 같은 생각도 있었다. 이게 지금 나 자신을 돕는 관점일까? 좀 더 실력을 쌓는 데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는 게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같은 의문과 함께 이런 식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를 달래는 시간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갱의 고백이 크게 와닿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다가도 나는 멈칫하며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Visual Studio Code(개발 도구)를 수도 없이 켰다가 껐다. 지금 글을 쓰고 있어도 되는 걸까? 이 시간에 개발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단행본 한 권 분량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준 갱에게서 큰 용기와 끈기를 느꼈다. 또 업계와 일에 대한 애정도 느꼈다. 특히 에필로그를 읽으며,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이만큼의 이야기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건 단지 다른 관점을 가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누구보다 자기 일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
  Date: 2008.01.11

  Author: 김OO 대리

  Desc: 결재DB와 연동

*/


때로는 익숙한, 대체로는 낯선 이름이 거기 들어 있었다. 코드가 작성된 날짜는 천차만별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고등학생이던 해에 작성된 코드도 있었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개발자가 오가며 코드를 덧댄 흔적을 마주하면 어쩐지 마음이 울렁거렸다. 오래된 시스템은 여러 사람이 아무렇게나 덧댄 누더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모든 발자국이 분별없이 좋았다. 지금은 떠나간 사람들을 시스템만은 기억하는 것 같아서.


코드에 내 이름을 처음 기입하던 순간의 두근거림도 잊을 수 없다. … 드디어 세계에 발을 내딛은 듯한 설렘과 막연한 불안감이 함께 찾아왔다.


… 내가 시스템을 사랑하는 방식은 하나였다. 오래 들여다보고 많이 눌러보는 것.


보통 어떤 주제나 분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거나, 뭔가 뛰어들어 하다보면 의문이 생기거나 모든 게 속 빈 강정 혹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아서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순간을 자주 만난다. 내가 가진 관점에 대해서도 자주 그랬다. '이 정도 논리로는 아무도 설득하지 못할 것 같아.', 혹은 '이도저도 아닌 의견이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군.'.


끈기와 용기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충분히 그 분야, 그 주제, 아무튼 ‘그것’을 충분히 사랑했는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Morning Read는 제가 한 주, 혹은 두 주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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