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정한 마음을 알 리 없으리(김현,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오늘 서울에는 첫눈이 내리었어요
쌍판댁에서
훈이 형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언니, 영삼이 언니 코 세웠대
미친년 자존심을 세우라고 해
미끄러졌습니다
그놈의 년 소리 좀 그만해
미친년 날아가는 방귀에 시비야
시절이 그런 시절이 아니야
눈은 쌓여 우리
죽상이 되어
이모 이게 구찌 홀스빗 로퍼야
구차한 인생을 자랑스레 여겼죠
두 손 두 발을 들었습니다
형, 크루아상님 알지?
이년은 술만 취하면 형이래 알지 개말라잖아
죽었대
뭐래
뛰어내렸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더니 갔네
걸렸대 공원 화장실에서 하다가 잡혔대
시대가 어느 시댄데 시대착오적인 년
두 손 모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형 나는 가끔 이성애자들이 핍박받는 세상이 오길 바라
거리에서 손도 못 잡고 뽀뽀도 못하고 회사에선 전전긍긍하길
시대를 앞서가자, 우리
형 영삼이 언니랑 크루아상님이랑 레테님이랑 와수리 갔었잖아 직업군인님 만나러
그 오빠 천연끼가 대단했다 혀를 내둘렀다 눈이 쏟아졌다 차가 빠져서 발이 묶여서 처갓집에서 닭을 네 마리나 먹었다 버스는 떠났다 오고 떠났다 그 오빠가 데리고 온 상병이 식이 됐다 일병보단 상병 상병보단 병장 하사는 나가리 중사보단 대위 대위보단 해병대 장례식장에 갔다 온 사람은 있다니
태어나 그런 눈을 본 적이 없어 앞으로도 못 볼 거야 그런 눈은 형 와수리가 왜 와수린 줄 알아
몰라 누울 와 물 수 마을 리
형, 그게 벌써 십 년 전이다, 자?
형, 우리도 다됐다 혀가 꼬부라지기 전에 고개부터 고꾸라진다
인생 뭐 있니
살다
간다
구두에 검은 봉지를 씌우고 나와
훈이 형은 타락 벙개에 가고
고객님이 타고 계신 차량은 안전하고 친절한 택시입니다
상훈이 형
오늘 서울에는 큰 눈이 내리었어요
형이 와수리에서
폭설에 파묻혀서 들려주던 남자들에 관해 자주 생각해요
꽃부리 영 수컷 웅 호걸 호 뛰어날 걸
형도 참 겉은 바삭 속은 축축 바텀 인생
그때 형이랑
그 형들이랑 살림을 차렸더라면
형은 꽃 같은 인생, 살아 있었겠죠?
형 저는 이제 홍차장이 되었고
여의도에 살고 있습니다
대출 끼고 도보 출근 가능 삼억팔천
테마파크에서 가짜 자연을 즐기고
대물훈탑의 자위쇼를 봅니다
부모형제는 지긋지긋하고
견미리팩트와 요술세럼을 샀습니다
저는 어째서 이토록 역사적인 인간일까요
현대의 누구도 더는 저를 영웅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똥꼬충들이 설쳐대며 에이즈를 옮기려고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더러운 에이즈 캐리어
동성애는 정신병이다 정신 바짝 들도록 북한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라
시절이 그런 시절이 아니었더라면
상훈이 형
저는 가끔 본색을 드러내고 싶어요
부부 동반 홈파티
세상에 지들밖에 없는 것들
지 새끼들밖에 모르는 것들
거리낄 것 없는 단란한 식탁 위에
똥 무더기를 쌓아올린 접시를 내가고 싶어요
구리면 구린 의미가 있죠
그러기 위해 저는 하느님을 믿고
양이사, 조부장과 산을 타고
관혼상제를 중히 여기고
연말정산은 제때
자주 흰죽을 먹습니다
맛도 없고 향도 없고
거짓도 없는 부드러운
영혼의 봉변을 기대합니다
말로에는 누구나 비참하여라
주님 메시지
오늘 타락 물 안 좋네
형,
우리는 왜 타락하지 않았을까요?
먼 길 가는데 그 돈밖에 못 보내 미안해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