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행진


수습위원 정호익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다. 전쟁 가능성을 점친 사람들은 많았지만, 러시아가 ‘그날’ 우크라이나 국경선을 넘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전쟁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거라고는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국제질서의 격변 속에서, 뚜렷이 볼 수 있었던 건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아픔이었다. 그래서 나는 예단할 수 없는 국제정치에 대한 논평 이전에 그곳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따스한 봄날집회

 5월 1일 일요일 낮 12시, 덕수궁 돌담길. 푸른 나뭇잎이 따스한 햇살을 반사하며 바람에 실랑였다. 그늘진 길을 따라가자 우크라이나 노래가 울려 펴졌다. 노래를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고, 그렇게 집회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다.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지 허락을 구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많은 분이 흔쾌히 사진 촬영에 협조해주셨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발언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집회에 동화될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우크라이나의 국가(國家)를 부르고 러시아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자유발언을 들으며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문제의식을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러시아군의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규탄, 전쟁을 둘러싼 어느 우크라이나 집안의 연대기, 핵 위기에 대한 우려... 아주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가 한층 더 가깝고 무겁게 다가왔다. 그들의 아픔은 우리에게서 먼 동구권 유럽의 분쟁이 아니라, 대한민국도 경험한 바 있는 전쟁과 인권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자유발언을 들은 후 세종대로 거리를 행진했다. 매번 길가에서만 바라보던 차도 위를 직접 걷다니! 신선한 경험이었다. 날씨 좋은 봄날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진중한 집회를 이렇게 즐기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반사적 성찰. 굳이 해명해보자면 집회가 그저 슬프고 분노에 차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행진은 ‘우크라이나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시민의 희망들로 가득했다.

 

 함께한 시민들의 이야기

 류다 씨는 15년 전 대학원 석사 과정 유학을 오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그녀는 러시아가 전쟁을 개시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얘기했다. 본인은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Q.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친지분의 사정은 어떤가요?

: 가족 친척 모두 키이우 국제공항 근처에 사는데 별문제는 없다. 다른 지역보다는 안전해서 다행이다. 부차에 사는 친구도 있는데 그 친구는 재산상 손해만 입고 폴란드로 나갔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래도 우리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전쟁이 고통스러운지는 겪어봐야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Q: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 우크라이나 제재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현실도 있기에 부분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이해한다. 또 한국 사람들 중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사람들을 다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정보들을 확인하고 함께 수정하면 좋을 것 같다.


Q: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

: 우크라이나는 한국과 비슷한 나라다. 우리는 평화롭고 자유를 사랑한다. 지금 우크라이나에는 문제밖에 없다. 이것도 해결해야 하고 저것도 해결해야 할 게 천지다. 그런데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는 하나로 뭉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독립 직후에 이랬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렇게 연대하는 마음이 우크라이나 재건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


 류다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주변 시민들과의 인터뷰를 모색했다. 쉽지 않았다. 한국어나 영어가 서툰 우크라이나 시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우크라이나 친선회(한우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등학생이었다. 이렇게 평화 집회에는 우크라이나 시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심 많은 한국인들도 함께했다.

 

Q: 어떤 동기로 한우회 활동을 하게 되셨나요?

: 평소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라는 행성에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어떻게 하면 우크라이나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을까요?

: 전쟁에 관한 소식을 알고 싶은 분들은 인스타그램 ‘우크라이나 뉴스 ’ 채널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또 주변 지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일요일 집회 관련 소식을 공유하고, 우크라이나 대사관 후원계좌로 만 원이라도 후원해 주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 같다.


 다음 인터뷰에 응해준 니콜라이 씨는 거리 행진을 할 때 우렁차게 구호를 선창하던 시민이었다. 그는 앞서 인터뷰한 류다 씨처럼 대학원 유학을 왔다가 한국에 정착했다.

 

Q. 혹시 집회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 집회는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모여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집회에 리더 같은 직위 체계는 없다. 모두가 같은 포지션에서 협력하며 평화롭게 집회를 하고 있다.


Q. 혹시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 분 사정은 어떤가요?

: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키이우에 있다. 키이우가 위험했을 때 폴란드로 갔다가 현재는 키이우로 돌아왔다. 러시아군이 키이우에서 철수했지만 언제 다시 반격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러시아군이 다시 키이우를 점령하지 않게끔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Q.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우리나라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민주주의 국가들이 한편이 되어 우크라이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대 러시아 경제제재가 필요하다. 현재 러시아는 자국민에 대한 생각 없이 모든 비용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사람들을 죽이는데 쓰고 있다. 이를 막아야 한다.


Q. 현재 우크라이나 시민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전에도 크림반도 등 러시아와 갈등이나 정치적 문제 있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내부에는 러시아 편이 거의 안 남았다. 어떻게 보면 이 전쟁이야말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통합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
 집회에서 들은 전쟁의 참상은 끔찍했다. 러시아군은 진퇴 과정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약탈 행위를 일삼고 아동 납치 및 성폭력을 행했다. 또 러시아군이 몇 주 동안 점령한 부차 등 북부 지역에서 물러나면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들의 사체가 드러나고 있다. 현재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는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에서는 폭격이 감행되는 가운데 최소 민간인 1만 명이 희생된 걸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및 서방(유럽연합, 미국)은 이를 ‘제노사이드(조직적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집회는 전쟁이 핵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체르노빌 사태가 발생했기에 핵 문제에 민감하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에 따라 핵무기를 폐기하는 대신 타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약속을 체결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현재 러시아군은 자포리자 등 원전 인근 지역에 폭격을 감행하며,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규정짓는 집회의 관점도 인상적이었다. 많은 언론이 이번 전쟁을 ‘푸틴의 전쟁’으로 규정지으며 ‘지도자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고는 했다. 그런데 집회 참여자들은 ‘202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푸틴의 전쟁’이 아닌 ‘러시아의 전쟁’으로 규정 지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푸틴이 전쟁을 결단한 최고 책임자라 하여도 우크라이나에서 잘못된 행위를 일삼는 군인들은 러시아 일반 시민들이며 개전 이후 많은 러시아 시민들이 푸틴과 전쟁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이번 전쟁의 참상에 관해 러시아 시민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 착한 전쟁은 없다


 전쟁은 그 자체로 잔혹하다. 상대가 적이기에 죽여야 하는 살육전 속에서 인간성의 공간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타협 없는 전쟁 속에서 ‘승전’은 적진을 최대한 많이 죽이거나 죽이는 경우의 수를 획책함으로써 달성되기 때문이다.

 

 마리우폴 학살이 그렇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점령하는 키이우 함락전에서 후퇴한 대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점령하고 마리우폴을 비롯한 남부 해안을 봉쇄하는 전략을 밀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마리우폴에 주둔하고 있는 반러시아 성향의 아조프 대대를 ‘나치’로 규정하여 이들을 청산하는 것을 전쟁 명분 중 하나로 삼았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는 침공 전략상 마리우폴을 반드시 점령해야만 하고, 여기서 민간인을 가려 싸울 방법을 고민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형태의 비극은 인류 역사상 거의 모든 전쟁에서 반복되어왔다. 전쟁은 언제나 인간성의 바닥을 자극하며, 국가권력의 옹호 하에 평범한 사람들이 어디까지 타락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맥락은 있지만, 서로를 죽고 죽이며 인간성의 끝을 달린다는 점에서는 모든 전쟁이 같은 본질을 갖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정치는 언제나 갈등하기에 전쟁의 동력은 필연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 스스로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항상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찰의 전선만큼은 결코 뒤로 물려선 안 된다.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과거 전쟁들보다 더 진지한 태도로 비판받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가 합의해온 국제규범과 인권 의식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따뜻한 국제연대를 바라며,


 ‘대한민국 감사합니다’. 구호의 끝마다 붙었던 인사말이다.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고마운 구호였지만 한편으로는 쑥스러웠다. 우리가 뭘 했다고...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룬 역사는 충분한 의미를 주는 것 같다.

 

 대한민국도 우크라이나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식민 통치, 분단, 전쟁, 독재 등 아픈 역사적 생채기를 거쳐왔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났다. 이런 이유로 홍콩, 미얀마, 벨라루스 등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국제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동경하며 ‘우리나라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입지를 무겁게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대가 왔다. 우리도 한때 처절한 아픔과 원조를 받았던 나라였기에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냉혈한 국제질서 속에서도 세계시민들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슬픔과 고통을 나누는 길을 모색하면 좋겠다. 그렇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더 평화롭고 따뜻한 지구촌이 가능해지길 희망한다.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길 바란다. 우크라이나에 평화와 자유가 정착하길 기원한다.

 

(*해당 글은 2022년 5월 초에 작성되었습니다.)

#A.S. 덧붙이는 글 _ 격변하는 국제질서, 길어진 전쟁


  7월이다.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전쟁의 충격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전세계를 흔들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극심한 원자재 공급난은 현재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현상을 부추기는 근본적 요인이다.

 

 전 세계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공급량이 급감하자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식량난에 봉착했다. 일례로 우크라이나 밀의 대표적 수입국인 이집트의 물가 상승률은 전쟁 이후 5%에서 14%로 뛰어올랐으며,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직면해 반정부 시위가 온 나라를 들썩이고 있다. 이러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이제는 우리 밥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이번 전쟁 전개에 있어 작용한 가장 큰 변수는 ‘에너지’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유럽 사회의 의존도는 매우 높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가스를 수입해왔다. 러시아는 이러한 가스관을 통해 소련 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 경제를 재건했고 이를 지렛대 삼아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다.

한국 물가 상승률 (출처: 한국은행)  
유럽-러시아 천연가스관 (출처: The Economist)  

 지난 5월부터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및 천연가스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러시아의 자금줄을 차단하면 전쟁을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 러시아 제재가 생각보다 통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러시아의 전체 수입은 줄기는커녕 도리어 늘어났다. 러시아는 국제시장 가격보다 30달러 더 싸게 원유를 팔기 시작했고 중국, 인도와 브라질 등 국가들이 이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재는 부메랑이 되어 서구를 강타했다. 유럽연합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 화력을 감축해왔는데 천연가스 비중이 줄어들고 연료값이 폭등하자 다시 석탄 화력 발전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전쟁 전 갤런 당 1달러대였던 휘발윳값이 5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전쟁이 멈추지 않는 한 에너지 공급난을 둘러싼 불안은 지속될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은 건 아니다. 러시아는 지난 6월 27일 100여 년 만에 외화표시 국체에 대한 이재를 지급하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에 대해 ‘강요된 디폴트’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충분한 상환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쟁 직후 루블화 가치는 땅바닥을 기는 듯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원상회복하여 고공행진하고 있다. 추세적으로 러시아 경제의 체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으나, 아직은 러시아가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러시아의 전략은 세계가 전쟁으로 인한 자국민 부담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시간을 끌어 보자는 데 있는 듯싶다.

이코노미스트지 2020년 1월 4일 커버 <갈라서다>

이코노미스트지 2022년 6월 18일 커버 <세계화 재발명하기>

 이렇게 전쟁이 지속되는 배경에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오늘날 국제질서가 존재한다. 현재 국제질서에는 두 가지 힘이 상충하고 있다. 하나는 ‘밀어내는 힘’이다,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등 탈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화 국제질서에 균열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전쟁을 단행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으로부터 SWIFT 결제망 차단 등 각종 제재를 당했지만, 서방과 거리가 먼 중국을 비롯한 국가들의 시장과는 결합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측면은 그럼에도 세계화 무역 구조는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 사슬(Global Value Chain, 이하 GVC)’이라는 개념을 얘기하는데, 이는 세계 여러 국가가 산업 및 무역 네트워크에서 분업 체계를 갖추고 상호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래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그저 러시아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영향이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에까지 도래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밀고 당기는 힘이 병존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오늘날 국제질서를 인식해야 한다.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고 러시아가 서방에 충격을 가한 국면에서 탈세계화의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얽히고 섥힌 GVC를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고 우리나라가 참여하게 된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 워크)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IPEF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동맹국을 중심으로 무역 및 산업 분야에서 GVC를 재조정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하는 흐름을 ‘프렌드 쇼어링’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세계가 맞이하고 있는 변화는 구 냉전 및 탈냉전 시기를 포함한 전후 77년간의 세계질서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미국은 여전히 제1 국가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이에 중국, 러시아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국제질서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이름 하에 양극화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그 내부의 우호 관계들이 영속적인 동맹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단결되고 또 서로 완전히 단절되는 양상은 아니라는 점도 특징이다.


 특히 ‘지정학’ 이슈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지리적 위치 관계가 국제질서에 영향 미치는 정도가 더욱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에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 더 많은 우호국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중동 및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관계도 수가 복잡해졌다. 터키, 인도, 남아공 등 국가들이 자기가 속한 대륙에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팬데믹이 캠퍼스를 잠재웠던 지난 2년간, 국제질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터닝 포인트를 넘어섰다. 이 시대가 후에 어떻게 규정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새로운 국면의 초입에 들어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중대한 기로 위에 서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충돌하는 가운데,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적 의존도도 큰 나라이다. 무엇보다 이런 구도 속에서 북핵 위기와 한반도 평화라는 오랜 과제가 새로운 구도 하에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와 함께 ‘두 개의 전선’이라 불리는 대만 해협도 우리나라의 국가안보와 직결된 인근 동아시아 지역의 이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국제질서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해 나가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질서의 구조적 양상과 별개로,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고통은 전쟁이 일어난 지역 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두를 힘들게 만드는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란다. 그리고 종전이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맺어지길 기원한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건국대학교 교지편집발행부 건대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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