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으신가요? 저는 이른바 ‘제목픽’을 하는 편입니다. 좋아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거나, 읽는 순간 삘이 짜르르 오는 제목의 책을 보면 주저하지 않고 픽하는 거죠.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도 제목픽으로 고른 작품 중 하나인데요. ‘위저드’와 ‘베이커리’의 조합이라….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그리고 “맛있는 것을 만드는 것은 생각만 해도 재밌잖아요😄🩷” 라고 생각하는 빵 & 디저트러버스클럽 회원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었습니다. ‘베이커리’하면 떠오르는 많은 작품 (ex> 꿈빛 파티시엘, 따끈따끈 베이커리, 꼬마마법사 레미 포르테) 들을 생각하며 책을 펼쳐 들었죠.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는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어요. 살짝 어둡고, ‘해리 포터’보다는 ‘팀 버튼 작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먹으면 행복해지는 신비의 과자나 마법의 파이가 아닌,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골탕 먹일 수 있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나 ‘부두인형 마지 팬 쿠키’같은 어둠의 힘(?)이 강해 보이는 것들을 팔고 있었는데요. 각 물품의 마지막 줄에는 이런 경고문들이 적혀있어요.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든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마법의 이용 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구병모월드'로 단숨에 빨려 들어가게 하는 요인은 뭘까요? 기발한 상상력도, 탄탄한 설정 값도 한 몫 하겠지만, 현실 세계로 튕겨 나오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헤엄치게 만드는 힘은 문장력에 있는 것 같아요. 밀도 높게 짜여진 문장을 읽고 있으면, 기초가 탄탄한 건축물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는 듯해요. 과연 저 끝엔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는 동안 발 밑이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받쳐주는 느낌이죠.

"몸 밖으로 나온 것 가운데

죄 아닌 것들이 없다.
죄의 자리에 거짓이나 오류나

실패를 넣어도 성립한다."
- <있을 법한 모든 것> 중

구병모 작가의 글은 그저 스치듯 지나가버리는 문장이 없다는 게 매력이에요. 글자의 모양과 질감과 형태를 만지듯 손가락 끝으로 텍스트를 탐독하게 돼요. 가벼이 쓰지 않았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문장들이라 더 묵직하게 와닿기 때문이죠. 한 마디로, 응축된 힘이 있어요. 모든 글에는 힘이 있지만, 구병모 작가는 특히 일상적인 말 속에 그 힘을 압축해 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 툭 던져요. 받은 사람은 별안간 손 끝에서 펑 하고 터지는 깨달음에 넋을 놓을 뿐이죠.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 없는 물이기도 하고."
- <아가미> 중, 한강 다리에서 투신했다 살아남은 자의 말

작가의 여러 책을 읽다 보면, 각 인물의 성격이나 환경 등에 따라 (당연하겠지만) 말투와 어휘도 휙휙 달라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인데요. 캐릭터성이 지문처럼 묻어나는 문장이 내 목을 휘어감아 인물 앞으로 훅 잡아당기니, 빠져들지 않을 수 없죠.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 <파과> 중

깊이 있는 문장과 상상력이 휘몰아치는 세계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짜임새 있게 끌고 가는 서사의 힘. 구병모 작가의 추천 작품을 아래에 정리해두었어요. 이번 설 연휴에 읽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