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얌마 도완득의 계보를 잇는, 그냥 박로사님과 인터뷰 박예림: 로사님, 오랜만입니다. <글목일기> 구독자분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박로사: 안녕하세요. 박로사입니다. 멋진 수식어로 저를 소개하고 싶은데, 수식어 하나만 붙이기엔 아쉽고 마음에 쏙 드는 하나의 단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냥 박로사입니다. 제 이름 자체가 담고 싶은 모든 수식어를 포함했으면 좋겠어요. 말하고 보니 완득이 같네요. 얌마 도완득의 계보를 잇는 그냥 박로사입니다.
박예림: 전 인터뷰이였던 서현님의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할게요. 취미인 뮤지컬 관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질문이에요. ‘뮤지컬 관람이나 독서 등 예술 작품 감상은 답답한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즐기는 방법인데 다음 인터뷰이는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 본인이 꿈꾸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박로사: 유토피아는 이야기할수록 불가능은 뚜렷해지고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유토피아에 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현실적이기보단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사람이거든요. 유토피아는 이런 모습일 거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이 말한 모습과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찾아 비슷한 방향을 찾고, 그 방향이 향한 곳에 마지막 한 사람까지 도달하고, 앞으로 나타날 사람마저 만족할 장소가 유토피아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자신의 유토피아를 소리 내서 말하는 것이 각자의 현실이 유토피아에 가까워지는 첫걸음인 거죠. 최근 염두에 두고 사는 단어는 '온전'인데요, 제가 요즘 꿈꾸는 유토피아는 모든 존재가 온전하게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이 유토피아라고 생각해요.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자연도요. 각자를 온전하게 유지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아닐까 싶어요.
박예림: 로사님은 상상을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소설책을 좋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박로사: 맞아요. 인생의 절반은 공상입니다. 글목일을 하며 글로 쓰기도 했어요. 힘들 때 하는 즐거운 상상!
박예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상을 주로 하나요?
박로사: 상상을 제 의지로 시작해본 적이 있었나 싶어요. 생각이 빠르게 연결되는 편이에요. 새벽에 길에서 주무시는 노숙인을 보고 ‘그분은 과연 무사히 일어났을까?’라는 생각이 이어지면서 그분을 주인공으로 상상이 계속 이어져요. 이런 상상은 가끔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삶이 피곤할 때가 있어요. 그분이 누워계시던 곳에 다시 가봤거든요. 저는 피곤하지 않은 상상을 자주 합니다. 글에 적은 것처럼 힘든 상황에서 현실 도피용 상상을 자주 해요. 그래서 제 상상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박예림: 힘들 때 하는 유쾌한 상상을 주제로 쓴 로사님의 글 첫 문장은 ‘도망친다’였는데, 마지막 문장은 '시작은 도피일지라도 끝은 성취일 것이다.'로 마무리 되었죠. 좋아하는 글이나 문장이 있나요?
박로사: 무심하게 던지는 안부나 배려가 담긴 문장을 좋아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게리 슈미트의 수요일의 전쟁입니다. 상황에 따라 좋아지는 문장이 달라지지만, 지금은 [달콤한 두 눈, 밀림에서 나옴, 괜찮음. 딸기를 먹으러 집으로 감. 사랑. T.]라는 문장이 생각나요. 전쟁터에서 실종된 군인이 구출되고 나서 아내에게 보낸 전보인데, 간단하지만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에요.
박예림: 글을 읽는 것을 넘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박로사: 계기는 없어요. 아마 한글을 배운 순간부터? 제가 한글을 늦게 배운 편이라서요. (웃음) 8살에 한글을 깨치자마자 숙제로 일기를 썼습니다. 계기도 딱히 없고, 이유도 찾지 못했어요. 갑자기 문득 씁니다. 어린이날, 굉장히 오랜만에 일기 한 편을 썼어요. 자기 전에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의 흐름에 따라 마음대로 썼습니다. 쓰면서도 갑자기 왜 쓰고 싶었는지 고민했어요. 쓰는 이유가 정확하면 글을 쓸 때 더 쉽고 문장이 또렷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저 순간을 기록하는 수집가처럼 글을 씁니다. 쓰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데 그래도 글을 계속 쓰고 싶긴 해요. 가능하다면 글을 이용해서 먹고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예림: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있나요? 계기가 없다고 하셨지만 흥미로운 내용의 프로그램을 봤다든지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요.
박로사: 지나칠 수 없는 감정이나 순간이 있을 때 쓰고 싶어져요. 인증샷을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잖아요. 사진처럼 글로 찰나를 묶어두고 싶을 때요. 다만 사진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글로도 온전한 감정과 순간을 녹여내는게 어려워요. 가끔은 표현력과 문장력의 한계가 저를 화나게 해요. (웃음)
박예림: 앞으로 쓰고 싶은 글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박로사: 글목일 활동을 하며 쓴 2주차 글에서 '가볍게 읽혀 쉬이 마음에 닿아오는 글'을 쓰고 싶다고 썼더라고요. 이 질문 덕분에 글목일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봤는데, 2주차에 제가 쓴 글도 가볍게 읽히는 글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속 좁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모든 사람의 글이 부럽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아요. 저는 잘 쓰려고 욕심부리다가 글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글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글은 아마 평생 쓸 것 같아요. 의사표현을 하고 싶은 주제가 생길 때마다 글을 쓴다면 죽기 직전에도 이것저것 참견하면서 글을 쓰고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무작정 글을 쓰지만, 앞으로는 조예와 덕망을 쌓아서 소설이든 수필이든 아니면 제 관심 분야에 대한 논문 같은 학술지이든 쓸 수 있을 만큼 다작을 해서 나보다 오래 살아갈 글을 하나쯤은 써보고 싶습니다.
박예림: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시간의 인터뷰라고 했지만 짧은 시간에 로사님의 가치관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다음 인터뷰이에게 묻고 싶은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박로사: 최근에 느꼈던 가장 강렬한 순간이나 감정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글목일기는 여기까지 구독자님, 이번주 글목일기는 어떠셨나요? 목요일의 소소한 기쁨이길 바랍니다. 글 쓰는 목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