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추석’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선선한 바람이 부네요. 기분이 좋습니다. 이 가을이 후딱 가는 게 아쉬워서, 요즘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좋은 풍경들을 최대한 많이 누리고, 기록하고 있죠. 님이 생각하시는 ‘많이’보다 훨씬 더 많이 찍고 있습니다. 제가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냐면요, ‘삼보일컷’이란 별명이 있습니다. 세 발짝 걷고 사진 한 번 찍고, 또 세 발짝 걷고 사진을 찍는다는 의미입니다. 잠시 제주도에 살 때 만난 친구들이 지어준 건데, 주변 사람들이 저와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말이래요. 요즘은 빛이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자주 찍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이나, 아침 수영을 하러 가는 길에 구름 틈을 비집고 나오는 햇빛 같은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동기인 김영화 기자와 점심을 먹고 약현성당 주변을 종종 산책하는데요. 같이 걷다가 제가 갑자기 “어머~!” 하고 멈춘 채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옆에 있던 김영화 기자는 이번엔 또 제가 어떤 것에 감탄했는지 수수께끼를 풀듯 알아맞힙니다(자주 틀렸지만, 요즘은 한 번에 잘 맞히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동기인 나경희 기자는 저를 ‘발프로(발견의 프로)’라 부르며, 시시콜콜 농담을 던집니다. 어감은 조금 이상하지만, 꽤 마음에 드는 별명이에요.

빛이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수집하는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일상뿐만 아니라 <시사IN>에서 일을 하면서도 이런 순간들을 종종 만나고 있습니다. 위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폭우가 내리던 날 삼보일배를 마친 후 서로 등을 어루만지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손, 장애인고용공단을 기습 점거하며 ‘동료지원가’라는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 무책임한 부모와 국가 폭력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겠다고 말하던 순간의 눈빛···.

절망 속에서도 긍지를 잃지 않고 삶을 살아내신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어쩌면 이 분들이 전해주신 이야기와 그 모습은 아름다움의 또 다른 형태이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최근 취재차 만난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 조복동씨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냐’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때 저는 조복동씨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외되고 잘 보이지 않는 목소리들을 꾸준히 듣고, 들여다보시는 분들이 분명 있다고요.

수없이 부서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살아내고,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강직하고 따뜻한 마음들과, 고통스러워서 숨겨왔던 이야기지만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용기를 내어 말하는 빛나는 순간들을 후원해주십시오. 저는 ‘발프로’로서 부지런히 ‘삼보일컷’하며,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계속해서 님께 전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이 가을도 평온하고 온전히 누리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