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부분은 소비자들이 단순히 더 저렴한 유통채널을 방문하거나, 더 저렴한 대체 상품을 구매하는 형태로만 트레이딩 다운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현명한 소비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들은 생산 공장, 제품 성분표까지 비교해가면서 최대한 유명 브랜드와 유사하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가성비’ 제품을 찾는 데 혈안이 돼있습니다. 예컨대 매일우유 공장에서 만든, 성분마저 동일하지만, 매일우유보다는 훨씬 저렴한 이마트 노브랜드 PB(Private Brand) 우유 상품을 대체 선택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김 대표는 소매업체들이 트레이딩 다운에 능해진 현명한 소비자에게 대응하기 위해선 결국 똑똑해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동일한 가격에 제품 가격 양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요. 차라리 대용량이나 소용량 상품을 내놓고 그에 맞춘 차등 가격을 설정하여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트레이딩 다운을 하는 고객들에게 가장 안 좋은 접근이 뭐냐면 슈링크플레이션입니다. 같은 가격에 판매하면서 살짝 제품의 양을 줄이거나 하는 건데요. 과거에는 이러한 전략이 통했다면, 요즘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이런 건 먹히지 않습니다. 사실 리테일러도 원가가 올랐으니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했을 텐데요. 무슨 일이 일어났나면 고객이 사라졌습니다. 고객들은 똑같은 상품이 코스트코 가면 있는 것을 알고, 이마트 PB에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놀란 브랜드는 다시 할인을 했지만, 고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대표
스플러지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하나 원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소매업체들이 마냥 가격을 낮추면서 경쟁하긴 쉽지 않습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여기서 트레이딩 다운과 함께 찾아오는 스플러지, 즉 ‘과시적 소비’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팬데믹 이후 국내 미디어에서 ‘보복 소비’라는 단어를 한창 사용했던 것을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전 세계에는 ‘둠 스펜딩(Doom Spending)’ 열풍이 불었습니다. 불확실하거나 어려워 보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평소에 구매하지 않을 물건을 구매하는 현상을 뜻하는데요. 특히 MZ세대가 이런 소비 현상을 주도했고, 최근까지도 이 내용을 다룬 글로벌 분석기관의 보고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딜로이트의 <Consumer Signals Link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한국 소비자들의 과시적 소비 성향은 조사 대상 20개 국가 중 4위로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의 월평균 과시적 소비 지출액은 59달러로 조사 대상 20개국 평균인 40달러를 크게 상회했는데요. 바꿔 말한다면 이들의 과시적 소비를 끌어당길 수 있는 유통업체, 브랜드라면 트레이딩 다운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비교적 높은 가격’을 합리화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과시적 소비는 값비싼 ‘럭셔리 브랜드’, ‘최상위 부유층’을 중심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2000원짜리 과자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브랜드에서 2000만원짜리 과자를 만들어서 판다고 해서 최상위 부유층이 사줄까 생각한다면, 이건 다른 이야기라는 거죠. (물론 2000만원짜리 과자를 판매할 수만 있다면, 이건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과시적 소비는 고객의 세대와 계층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는 과시적 소비에도 ‘트레이딩 다운’이 동반된다는 겁니다. 예컨대 평소 성수동 유명 베이커리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먹는 직장인 고객에게 ‘투썸플레이스’는 트레이딩 다운으로 이동할 판매채널이 될 수 있지만요. 용돈을 받아 크리스마스 파티를 기획하고 있는 10대 여자 아이들에게는 투썸플레이스 케이크는 과시적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평소 럭셔리 브랜드 외투를 입고, 매스티지 브랜드 티셔츠를 입는 사업가가 경기 불황이 계속되자 럭셔리 브랜드 외투는 포기하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 ‘유니클로’나 ‘무신사 스탠다드’ 티셔츠나 양말을 트레이딩 다운 대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평소 네이버에서 최저가 검색을 하여 동대문 보세 티셔츠를 사던 어떤 고객에게는 ‘유니클로’나 ‘무신사 스탠다드’가 스플러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트레이딩 다운과 스플러지는 소매업체와 브랜드의 상황과 전략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 브랜드의 현 위치와 고객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조언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우리가 어떤 경쟁사의 ‘트레이딩 다운’ 대상인지 아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고객에게 ‘스플러지’가 되는지 알고, 그 지점을 잘 공략해야 합니다. 단순히 비싸기만 한 브랜드, 상품은 현명한 소비자들에게 이탈 대상이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동시에 어딘가에서 트레이딩 다운돼서 내려오는 고객을 신규 인입시킬 수 있는 특별한 소구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대표
오늘 정리한 이야기는 커넥터스를 운영하는 저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줬습니다. 월 4900원 구독료로 운영하는 유료 콘텐츠 멤버십인 커넥터스는 언제든지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는 경쟁 미디어들에게 트레이딩 다운 당할 수 있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공짜로 유통물류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는 전문지, 종합지를 막론하고 굉장히 많으니까요. 심지어 퀄리티도 괜찮은 녀석들이 가끔씩 튀어나오는데, 이런 걸 보면 저희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이 깊어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보다 비싼 한 학기 등록금 1000만원짜리 MBA와 비교하자면 커넥터스는 굉장히 합리적인 트레이딩 다운의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MBA가 제공하는 가치가 교육과 학위, 비즈니스 네트워킹의 콜라보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커넥터스가 이 같은 가치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이미 학위가 없다 뿐이지, 교육과 비즈니스 네트워킹 프로그램은 여러 개 만들어 운영해본 경험도 있고요. 단적인 예로 오늘 열리는 오므론과 함께하는 ‘물류 로봇 견학 밋업’ 또한 독자 여러분의 비즈니스 연결점을 만들기 위한 월간 정례 행사 중 하나니까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역시나 학위라는 결과로 증명되는 ‘브랜드’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를 만들기 위해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노력을 하고 있고요. 콘텐츠만 제공하는 미디어가 아니라, 콘텐츠를 넘어선 ‘연결의 가치’를 제공하는 미디어로 커넥터스는 여러분의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괜히 사설이 길어졌는데요. 오늘 이야기가 브랜드의 가치와 프라이싱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힌트가 됐으면 합니다. 겸사 저희 커넥터스 멤버십을 구독해주셔도 너무 좋을 것 같은데, 11월까지 네이버가 제공하는 쿠폰으로 인해 50% 할인된 2250원에 멤버십 가입이 가능하거든요. 홍보는 타이밍이라고 했으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