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일흔 번째 흄세레터

유월이 되었습니다. 장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요. 곧 2024년의 절반이 지나간다는 사실, 믿기시나요? 저의 걸음이 느려지는 건 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벌써 유월이라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올 초 계획했던 것들을 다시 살펴보고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지 생각하며 지내고 있답니다. 다가올 가을, 겨울 제가 수확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펼쳐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값비싼 독》의 주인공들은 농부입니다. 엄청난 수확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죠. 그들이 땅과 삶에서 무엇을 수확하고, 그로부터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지켜보며 응원하는 재미가 있는 책이에요. 또한, 시즌 7의 다른 책들과 달리 모든 계절이 두루 등장합니다. 작가가 계절을 감각하는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으니 이것도 놓치지 마셔요. '여름'을 묘사하는 문장을 하나 소개할게요. 


"여름 더위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길고 여윈 팔, 그 빨간 입술, 갈색 얼굴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녹색 눈을......." 


오늘은 《값비싼 독》을 먼저 읽은 이미상 소설가의 리뷰를 보내드립니다💌


줄거리

웨일스와 국경을 접한 19세기 초 슈롭셔주의 시골을 배경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입술이 갈라져 있는 ‘입술갈림증(언청이)’을 가진 여성 ‘프루던스 사른’의 진술로 소설은 진행된다. 프루던스는 마을 사람들과 오빠인 ‘기디언’으로부터 마녀라고 불리며 멸시당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용감하고 자유분방하게 삶을 이어나간다. 반면 기디언은 프루던스에게 언청이 때문에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고 악담하면서 자신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져 ‘잰시스’와 결혼하고자 한다. 하지만 기디언은 잰시스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고, 프루던스는 ‘케스터’와 사랑을 시작하는데…….

“여기 내 사랑이자 내 주인이 왔는데, 이런, 난 언청이가 아닌가.”



많은 독자가 소설에서 시대를 앞서나가는 사유를 발견하기를 바라고 나 역시 그러하지만 때로는 다음과 같은 소설을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시대착오적인 전제에 사지가 묶인 채 그 덫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혁신과 의외의 샛길을 모색하느라 분투하는 소설. 그런 소설들의 분투가 어찌나 빛나는지 나는 때로 작가가 자기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낡은 규칙을 소설에 박아둔 게 아닌지 의심할 때도 있다. 《값비싼 독》은 100년 전에 쓰였으니 낡은 정신이 담겼다 한들 시대착오가 아니라 시대 반영일 테지만 말이다. 어쨌든 《값비싼 독》을 옭아맨 낡은 규칙은 이성애 로맨스다. 속된 말로 못난 여자와 이 구역 최고 인기남의 사랑 이야기. 그러나 소설을 잘 뜯어보면 이야기가 보통 뒤틀려 있는 게 아니다.


주인공 프루 사른은 소위 ‘언청이’라 불리는 구순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때문에 당시 여성의 통상적인 삶의 형태인 결혼과 출산을 꿈꾸지 못할 뿐 아니라 마녀라는 소문에 시달리고 그것은 곧 화형당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뜻한다. 시대가 정상이라고 정해놓은 모델에서 한참 벗어난 비천한 존재 프루 사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신분이 높은 여자도 “잼 병에 ‘이것은 모과와 사과’라는 글을 적는 정도”로 문맹률이 높은 시대에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점이다. 이 조건은 프루 사른이라는 인물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러나 소설의 설정으로서도 그럴까?


다락방에서 몽상에 빠지고 여느 여자들과 달리 글을 쓰는 여성 인물이라는 설정은 드물지 않다. 그들은 마녀,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우울증 환자, 못 말리는 말괄량이로 그려지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매력적이라 언제나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그렇기에 프루 사른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에는 큰 감명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죽도록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 웬만한 장정보다 밭일을 훨씬 많이, 그리고 잘한다는 것에는 반했다.


그가 오빠 기디언에게 복종을 맹세하며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까닭은 ‘언청이’ 수술을 받을 돈을 벌기 위해서다. 수술을 받아 요정처럼 아름다워져 결혼하기위해서고, 결혼에 실패하더라도 여자가 혼자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현대의 인물로 변환하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원하는 외형을 갖기 위해 수술비를 벌려고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하고 늠름한 건설업 종사자가 그려진다. 프루 사른은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을걷이 시즌에 사과를 따고, 사과를 저장한 다락방에서 배구공 윌슨에게 말을 거는 척 놀런드(〈캐스트 어웨이〉)처럼 발그레한 얼굴의 사과에게 말을 거는, 자연을 사랑하는 베테랑 농부이자 작가이자 사랑꾼으로 다채로운 개성을 드러내며 운명의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그렇다면 프루 사른의 운명의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케스터 우즈이브스라는 어려운 이름의 남자는 마을 여자들이 “도박을 걸 만한 남자”라고 하자 “목숨을 걸 남자”라고 고쳐 말하는, “꽝꽝 언 눈 뭉치처럼 팔근육”이 튀어나온 남자다. 게다가 그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동물권 활동가로 사냥개와 황소를 싸움 붙이는 ‘황소 괴롭히기’ 행사를 멈추기 위해, 자신이 황소 대신 개들과 싸우다 죽을 뻔하는 의인이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소울메이트다. 또한 두 사람은 문맹의 커플을 위해 각자 한 사람씩 맡아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는데, 남의 편지를 대필하는 주제에 뻔뻔하게도 사심을 담아서로에 대한 사랑을 늘어놓는 귀여운 이들이기도 하다. 기대하시라, 이 부분, 정말 재밌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 말하고 싶다. ‘값비싼 독’은 미래의 부귀영화를 위해 현재의 행복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린 기디언 사른이 품은 독, 언젠가 값비싼 대가를 치를 독을 의미한다. 그러나 푸르 사른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그에게 독처럼 느껴졌을지 모르는 구순구개열이 그녀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몰고 갔다. 그는 관습적인 삶을 바랐으나 그의 몸이 방해하고 반대했다. 마지막에 프루 사른은 소원을 성취하게 되지만 그 부분은 소설에서도 우리에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독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나를 돕는 아이러니, 그 ‘값진’ 독의 유쾌한 청개구리 짓이 소설에 가득 담겨 있다.

이미상 | 2018년 웹진 〈비유〉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이 있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값비싼 독
메리 웨브 | 정소영 옮김

1926년 페미나상 수상작이자 초판 출간 100년 만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메리 웨브의 대표작. 장애와 편견을 거슬러 자신의 운명마저 개척해나가는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웨브는 영국 슈롭셔의 사계절을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하는데, 웨섹스를 완벽한 소설의 무대로 꾸며놓은 토머스 하디와 자주 비견되곤 한다. 무엇에도 짓눌리지 않는 청명한 사랑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작품.

031 이방인 알베르 카뮈|박해현 옮김
032 루시 게이하트 윌라 캐더|임슬애 옮김 *초역
033 메마른 삶 그라실리아누 하무스|임소라 옮김 *초역, 작가도 첫 소개
034 결혼식을 위한 쾌적한 날씨 줄리아 스트레이치|공보경 옮김 *초역, 작가도 첫 소개
035 값비싼 독 메리 웨브|정소영 옮김 *초역, 작가도 첫 소개
흄세(휴머니스트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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