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같은 남의 집 이야기
마흔한 번째
호텔 같은 집  
  여기저기가 다 호텔이 된 세상. 10년 전만 해도 역세권 아파트니 한강뷰 아파트니 하며 위치로 인해 집값이 천차만별이었던 시대였던 때가 있었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몇십억이 차이 났었다. 사람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각자의 집 인테리어를 꾸미고 보여주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개성 넘치던 스타일도 어느 순간 아파트처럼 우드&화이트 공간, 힙한 공간 등 스타일이 비슷해져 갔다. 그 후로 조금 지나지 않아 교통혁명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30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위치가 집 선택에 중요한 요소가 더 이상 되지 않았다. 집을 꾸미는 유행 또한 식상해질 때쯤 극강의 서비스를 내세워 편안함을 구현한 집 ‘호텔 같은 집’이 떠올랐다.


호텔 같은 집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고요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서비스 아파트’와 같이 감각과 경험을 내세운 아파트가 생기기도 하고, 커스터마이징 서비스 아파트, 기념일 축하 전문 서비스 아파트, IT 기반 최첨단 서비스 아파트 등등 서비스는 점점 고도화됐다. TV에는 온통 각종 서비스 광고로 가득했다. 집에 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집도 많았다. 옷 대여 서비스, 스타일링 서비스가 기본 서비스 항목이 되면서 자신이 선호하는 서비스만 정해 집으로 몸만 들어가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집을 선택하는 기준 또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파트를 고르는 것으로 되어갔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하루 동안 받는 서비스를 자랑하는 것으로 대화 주제가 채워졌다. 하도 신박한 서비스가 많아서 충격을 받을 때가 많았다. 알게 모르게 구김살이 없는 얼굴을 한 친구들 앞에서 위축되기도 했다. 대화에 잘 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 친구와 내가 받는 서비스를 계속 비교하게 되었다. 머릿속이 ‘누군가의’ 서비스들로 가득해서 나의 온전한 하루가 없어질 때 나는 결심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파트에 기필코 들어가겠다고. 다들 상상도 하지 못한 서비스로 말문이 탁 막히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살인적인 일상 속으로 나를 집어넣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팀장을 지나 회사를 대표하는 임원직에 힘겹게 오를 수 있었다. 반복적인 일상을 수없이 거쳐오는 동안 내 목표는 확고했다. 고생스런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책상 위엔 임원 혜택과 복지들이 채워진 종이가 놓여 있었다. 내 인생에도 드디어 행복한 일상이 펼쳐지는 듯했다. 선택지 중에서는 집도 있었다. ‘임원님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로 가득 채워진 집’이라는 문구가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곧 들어가게 될 집의 서비스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 입주 전 제공해야 할 정보가 많았다. 나에 대한 심층 인터뷰가 진행되고 나의 모든 생활 데이터들이 서비스 운영 시스템에 전송되었다. 나에게 더욱 필요한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라는 매니저의 설명이 이어졌다.



드디어 입주날 매니저로부터 집과 서비스 모두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웰컴 메일을 받았다.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출입문 너머 보이는 로비 공간은 현실과 확실히 구별되는 새로운 세계 같았다. 입구부터 매니저의 환대를 받으며 올라가 도착한 내 집은 근사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가웠다. 불을 켜니 그나마 조금 더 아늑해지는 듯했다. 창가에 배치된 테이블 위에는 서비스를 안내하는 책자가 놓여 있었다.

서비스 책자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서비스들로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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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긋 웃어주기,

손 흔들어 주기,

밥은 잘 먹었는지 물어봐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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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상실감이 한 번에 밀려왔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 살고 싶었던 집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서비스를 받기 위해 세월을 달려온 것일까?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차갑고 외로워져 가는 세상 속에서 따뜻한 환대가 필요했다고, 편안한 관계들이 그리웠다고 말하는 내 마음속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할까.


 





 

“과거나 지금이나 호텔은 모든 면에서 최고를 추구한다.”

by 이병우 전 롯데호텔앤리조트 총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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