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가 사진을 찍지 않을 때
8월30일 열세번째 이야기
90년대에 보내는 편지 

영화 <빅토리>를 봤다. 1999년의 거제를 배경으로 춤추는 여고생들이 모여 치어리딩을 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사실 한국의 상업 영화에 대한 편견이 많은 편이라 국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일이 잘 없다. 독립영화들은 그래도 보러 가는데, 자본이 들어간 상업 영화로서 마지막으로 본 국내 작품은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이다. 이것도 기억이 안나서 감상한 영화를 기록해두는 왓챠피디아에 들어가 확인해봤다. 아무튼 그런 나이기에 이 영화 <빅토리> 또한 처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나쁘다고 생각한건 아니지만 봐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에 변화가 온 것은 트위터에 나타난 이혜리 배우 덕분. 영화가 생각 외로 흥행하지 못하자 그가 직접 나서 트위터에서 사람들에게 멘션(댓글)을 달며 감상을 독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트위터는 찻잔 속 태풍이라고들 하지만 인스타나 페이스북이 아닌 트위터에 나타난 그의 선택은 옳았다. 홍보사의 공식 계정도 아니고, 본인이 계정을 직접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나처럼 트위터에 하루종일 상주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어린 친구들이 트위터를 많이 쓰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반응이 일어났던 것 같고, 뒤이어 나같은 ‘고인물’들도 아 저렇게까지 하는데 정말 영화에 애정이 있나보다, 한번 봐주자.. 이런 분위기가 형성이 됐다. 뭐 내 생각이 그렇단 거다. 그들을 인터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어떤 마음으로 보러들 갔는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원래 혜리 배우를 무척 좋아한다. 나는 연예인을 막 ‘덕질’하는 성격이 아니라 팬이라고 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국내에 손에 꼽게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다. 그러다보니 응원의 마음으로 한번 보기로 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날며칠 그렇게 트위터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며 아 보면 좋겠다가 아니라 이건 꼭 봐야한다 싶을 정도로, 일종의 책임감이 들 정도가 되었다. 흥행이 안되고 있어서 금방 내려가 버릴까 마음이 좀 급했다. 그래서 오늘 오전 원주의 롯데시네마를 찾았다.


90년대 노래들이 나온다, 춤을 추는 아이들 얘기다, 혜리 배우가 주인공이고 밀레니엄 걸즈라는 여성 멤버들이 나온다.. 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 원래도 나는 영화를 볼 때 최소한의 정보만 접하고 ‘느낌’만으로 감상을 결정하는 편이라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과거 시점을 다루는 영화들이 대부분 당시 풍경을 고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이 영화도 25년전 세상을 보여줘야 하니 아무래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나오긴 했다. 영화 시작에 나오는 ‘펌프’ 오락기 같은 경우는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모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정도는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가줘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 자체의 재미가 아닌가. 아무래도 1999년에 대학교 2학년이던 사람이다보니 자꾸 그런게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내가 살아온 과거와의 비교는 뒤로 하고, 영화속으로 들어가본다. 혜리와 밀레니엄 걸즈의 세상속으로.


청춘이다. 이 영화는 청춘이었다. 반짝이는 10대 시절. 고등학생들의 빛나는 열정을 그린 이야기다. 실제 고등학생보다는 대체로 나이가 더 많은 이들이 연기했지만 여전히 충분히 청춘인 주인공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그 젊음의 열기만으로도 좋아서, 설령 단점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눈감아주게 된다. 그게 젊음 아니겠는가. 완벽하지 않아도, 좀 못해도 그 젊음 자체 때문에 괜찮은. 누구나 한번은 가지는 시절. 그 시절이 담겨 있으니 좋을 수 밖에 없다. 더하여 내 개인적으로 더 와닿았던 부분은 주인공들이 댄서를 꿈꾸는, 춤을 추는 아이들이라는 점이었는데, 이건 뭐 나의 흑역사라면 흑역사지만 나 또한 그 시절에는 댄스가수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속 아이들이 그랬듯이 혼자 춤연습을 하고, 사람들앞에서 공연도 했기 때문에 춤을 추고싶어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영화 초반 듀스의 나를 돌아봐에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십대 시절 가장 열심히 연습했던 춤이 듀스의 ‘우리는’ 안무였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의 안무가 기억이 나기도 했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가수가 되는 꿈. 나도 그렇지만 당시 많은 ‘X세대’들이 가졌던 꿈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많은 십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수를 꿈꾸고 또 춤을 추기 시작한 첫 시기였으니까.


십대들이 주인공인 하이틴 영화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청소년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내용도 그렇게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다. 일정의 갈등은 있지만 가볍게 넘어가고 모든 것은 대체로 건전하고 희망적으로 끝난다. 하지만 오직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X세대들이 추억 여행을 떠나기 좋다. 90년대 키즈라면 모를 수가 없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있고, 휴대폰 같은건 없고 삐삐로 연락을 주고 받던 시절. 아마 나와 달리 많은 X세대들이 지금은 아이를 가진 부모가 되어 있을텐데 가족이 함께 감상하고 대화를 하기에도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개봉 시기부터 잘못 잡았다. 에일리언, 트위스터스와 같이 개봉했는데 이 작품은 아무리 봐도 추석 연휴에 개봉했으면 더 잘됐을 것 같다. 안타깝지만 어쩌랴. 지금이라도 입소문으로 역주행 하기를 바랄 수 밖에.


영화적으로 봤을 때 아쉬운 부분들이 없지는 않다. 스토리 진행이라든지, 은은하게 삽입하려고 한 개그가 약간 빗나간다든지… 그리고 가장 옥의 티라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한 90년대의 노래들이다. 노래들은 전부 명곡이고 나도 좋아하지만 199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봤을 때 그 노래들이 좀 올드하달까. 유행에 민감한 고교생들이 그 몇년 지난 노래들로 춤을 추진 않았을 것 같다. 특히 오프닝에 나오는 ‘하여가’는 93년에 나온 곡인데 99년의 고교생들이 그 노래를 좋아했을 확률은 적다. 앞서 언급한 듀스의 ‘나를 돌아봐’도 같은 해에 나온 곡이고 둘 다 99년엔 이미 해체한지 몇년이 지난 후라 고증면에서 아쉽달까. 에쵸티나 젝키, 에스이에스나 핑클, 베이비복스 정도가 더 어울렸을 것이다. 디바와 엔알지 정도가 시대적 배경 측면에서는 가장 좋은 선곡이었다. 한편, 유승준이 그런 사고만 안쳤어도 분명 이 영화에 노래가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열정’ 같은 곡은 시기도 딱 맞아 떨어지고 가사나 춤이 작품과도 잘 어울렸을 것이라.. 몇몇 당시 노래들이 안나온 이유 중에는 해당 가수들이 이후에 이상한 짓들을 해서 제외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뭐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 같은 X세대들이나 그걸 캐치하겠지 젊은 친구들은 전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앞서 말했듯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가줄 수 있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혜리 배우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무척 즐겁게, 신나게 연기하는게 느껴져서 그걸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작품에서 자주 보기가 어려웠는데 이 작품을 계기로 더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더하여 조연들도 모두 개성이 넘치고 매력적이었는데,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잘 안봐서 모르는 배우들 투성이었지만 다들 또 좋은 작품에서 볼 수 있기를 빈다. 얼굴들이 잘 각인이 되서 이제 다른 작품에서 보게 된다면 기억 날 것 같다. 남자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정하 배우는 <무빙>에서 무척 인상적으로 봤어서 한눈에 알아봤다. 무빙 시즌 2도 어서 촬영해주기를.


엄청난 히트작이 되어야 할 작품인지까지는 확신이 없지만 현재 100만명도 못넘었다고해서 깜짝 놀랐다. 못해도 300만은 족히 들만한 작품인데. 그런 아쉬움에 혜리 배우가 트위터에 나타났나보다. 그외 조연들도 하나둘 트위터에 나타나 약속이나 한듯 홍보활동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니 그만큼 출연진들에게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보다. 영화를 보고 났더니 그럴만하다 싶다. 명작… 뭐 이런건 모르겠지만 이 젊은 배우들의 청춘이 정말 눈부시게 담겼다. 밀레니엄 걸즈가 사람들을 응원하는 영화지만 뒤로 갈수록 관객이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영화를 넘어 영화에 출연한 젊은 친구들까지. 다들 잘되면 좋겠다. 빅토리도 추석까지 잘 버텨서 흥행하기를 바란다. 조금은, 너무 순진한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세상엔 이런 영화가 더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For the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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