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8 - 2024.11.14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드디어,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흥겨운 첫 무대가 LA돌비씨어터에서 열린 2024MAMA에서 공개 됐고, 오아시스가 2025년 10월로 내한을 공식화 했죠. 저의 이번주의 콘텐츠 생활은 조금 부진(...) 했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재미있게 보았던 콘텐츠들을 소개합니다.

01. 가공OL일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02.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우리가 온라인에서 고해 성사를 하는 이유"


 01. 

가공OL일기

#일드 #은행원 #바카리즈무

©ytv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2023)에서 갓 죽은 후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을 향해 접수원은 이렇게 말한다. 오른쪽 문으로 나가면 과테말라 개미핥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고요. 왼쪽 문으로 나가면 지금 살았던 인생을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주인공이 n번 환승하는동안 그에 비례하게 n번의 물음표를 건네는 접수원 역은 바카리즈무가 연기했다. 바카리즈무는 <브러쉬 업 라이프>의 출연자일 뿐 아니라 각본가이기도 한데, 그는 일전에도 드라마 <가공OL일기>(2017)의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각본까지 쓴 전적이 있다.

 

 <가공OL일기>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동안 편당 20분의 러닝타임, 총 10부작의 이 드라마는 우리의 인내심과 기대 사이를 내내 효과적으로 조종한다. 몇 번이나 맥이 빠지지만, 바로 그게 이 드라마의 정수다. 

 

 “우리는 월요일을 의인화해서 험담하는 것으로 우울함을 누그러뜨린다”는 나레이션이 흐르지만 <가공OL일기>를 오피스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든 회사는 제각기의 방식으로 전쟁터인데, 오피스물이라면 좀 더 회사를 배경으로 스펙타클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함께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구내식당의 메뉴가 치즈함바그였다가 갑자기 두부튀김으로 바뀌었을 때 묘하게 분개한다. 탕수육의 익힘 정도를 구내식당에서 크게 기대하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패한 점심 탕수육을 만회하기 위해 또 다같이 퇴근 후에는 회사 근처 중식당에 간다. 그리고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는 것에 대해 서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2차는 카페로 향한다. 이 모든 것들은 더도 덜도 않고 조직에서 일하는 이들의 소소한 일상 그 자체다. 

 

 물론, 주인공과 은행 동료들에게는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한 구석이 있다. 공공의 적인 상사가 한 번 말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의 길이, 요즘 혼자만 미는 것 같은 재미 없는 유행어, 말을 걸 때 너무 가까이 들이미는 얼굴 등, 단지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상사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을 낱낱이 해부하며 왜 그런 사람을 좋아할 수 없는지 재확인한다. 가끔 주인공 ‘나’는 속으로 이렇게까지 뒤에서 누군가를 가루가 되도록 빻아버리는 건 나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그러는동안 시청자들은 중년의 남성 배우인 바카리즈무가 20대 중반의 ‘OL(오피스 레이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남성 상사의 말과 행동을 공격하는 장면을 바라보게 된다. 여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현실감이 있다.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았죠? 어떻게 진짜처럼 연기하는 거죠?

 

* ‘OL’(Office Lady)은 결혼하지 않고 일하는 2-30대 여성을 지칭하기 위해 주로 일본에서 사용되어 왔지만, 이런 시대착오적 용어가 드라마 제목에 포함 되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 바카리즈무는 2000년대 중반에 은행에 출근하는 OL인 척 하면서 가명으로 블로그에 <가공OL일기(架空OL日記)>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있지도 않은 일을 써내려간 것이지만 사람들은 작성자가 진짜 ‘OL’일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쓰여졌던 것이다. <가공OL일기>는 추후 동명의 책, 드라마, 영화로 각색 됐다. 나는 <가공OL일기>를 이러한 일련의 정보를 모르는 채로 보았는데, 마치 파워블로거들의 영역싸움에서 자유로우나 정기적으로 기능 업데이트는 되지 않고 있을 정도로 방치된 게시판에 일일 연재되는 포스팅을 보는 기분을 안겨주는 드라마같다고 생각했다. 




 02.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SNS #진정한 #나

©푸른숲


 어느 날 갑자기 킴 카다시안의 이름이 소환됐다. ‘패리스 은지 튼튼’이 땀을 흘리면 선풍기 매니절에게 호통부터 치고 보는 할리우드 스타 ‘퀸가비’의 활약을 담은 페이크 다큐 포맷으로 담은 유튜브 <디바마을 퀸가비>의 댓글창에서다. <디바마을 퀸가비>의 여진솔 PD 또한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기획의 시작이 “카다시안 패밀리 일원이 나오는 MTV 시리즈물이나 디즈니플러스,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미국 리얼리티 쇼”였다고 말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문화 비평가 에밀리 부틀은 그의 첫 책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이진 옮김, 푸른숲, 2024)에서 킴 카다시안이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대중문화의 역사부터 짚고 시작한다. 누군가 킴 카다시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궁금해하고 그를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그게 그가 충분히 진정성 넘치는 사람이라서는 아니다. 하지만, 셀럽 혹은 인플루언서가 아닌 우리는 모두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어쩌면 셀럽 혹은 인플루언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가톨릭 교회의 고해실에서 우리는 ‘내가 나쁜가요?’라고 묻는다. 정신 분석가의 소파에서 우리는 ‘내가 미친 건가요?’ 라고 묻는다. 자기 돌봄 문화 속에서 우리는 ‘내가 행복한가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우리는 ‘내가 진정성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에밀리 부틀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p.209


 책 전반에 걸쳐 ‘해독제’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쓰인 점이 눈에 띄었다. SNS를 할수록 소모적이고 피로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에 대한 심리적, 구조적 분석이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은 진정성 문화가 얼마나 유해한지에 대해서 파고든다. 우리가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나머지, 온라인 공간에서 마치 고해 성사하듯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설가와 의류 브랜드도 문책을 당하게 된다. 자전적 소설은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는 글쓰기일까? 작가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쓰라고 요구하는 것이 온당한 걸까? 의류 브랜드 웹사이트에 ‘기후 정책’이라든가 ‘제품의 생산 과정’을 공개해두었다면, 소비자로서 해당 기업이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쓴다고 믿고 안심하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 그러니까, 진정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써도 괜찮은 걸까?

 

 이런 식으로 “진정성 문화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하거나 더 많은 문제를 유발하는 영역”을 찾아낸다. 다만, ‘왜’를 찾고나서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까지 가지는 못하는데, 한계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떤 독자들은 그 점을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 이번호까지만 읽고 해지하기

COPYRIGHT © CONTENTSLO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