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소설 원작, 견자단 배우 주연 중영본색 29호
2023-02-12 (입춘+8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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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하오입니다.
중국 영화계의 전략이 통했습니다. 춘절에 동시 개봉한 대작들이 연이어 흥행하며 지난해 4월 상해 코로나 확산 이후 끝을 모르고 하락하던 중국 극장가의 기세를 되살렸습니다. 장예모 감독의 <만강홍>, SF재난 영화<유랑지구2>, 애니메이션<심해>, 양조위 주연의 <무명> 네 작품으로 2023년 춘절 일주일간 68억 위안(한화 1.26조 원) 규모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안녕 리환영>, <당안가탐안3>으로 78억 위안(한화 1.45조 원)를 기록한 2022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춘절 시즌 박스오피스 기록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관계로 중국 극장 개봉한 춘절 영화에 대해 리뷰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오늘 중영본색에서는 춘절 기간동안 중국의 OTT와 한국의 영화관에서 개봉한 <천룡팔부: 교봉전>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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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영화로 보여주는 하나의 중국
<천룡팔부: 교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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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와 거란족이 격전을 벌이던 북송 초기, 송나라의 교봉(견자단 역)은 뛰어난 무술과 의협심을 인정받아 개방(중원 전역에 걸쳐 무림의 정보망 역할을 하는 거지 패거리)의 방주 자리에 오릅니다. 하지만 교봉이 송나라의 개방에 숨어든 거란족 첩자라는 소문이 퍼지며 개방 무리의 신뢰를 잃고, 결국 방주 직위를 파면당합니다. 교봉은 자신이 거란족이 아님을 증명하려 양부모와 스승을 찾아가지만, 그들의 살해 시각이 교봉의 도착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교봉은 고향에서마저 역적으로 몰립니다. 설상가상 스승을 찾으러 소림사에 갔던 교봉은 보물을 훔쳐 달아나던 아주(진옥기 역)를 구해주며 두 사람은 정체성을 찾는 여정에 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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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교봉전>은 중국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원작 중 아주 일부분을 인용하였지만, 소설 속 화려한 무공 묘사는 아낌없이 살렸습니다. 영화 도입부에 시작되는 10분 분량의 객잔 전투씬부터 교봉을 죽이려 차례로 모여드는 개방 각개 문파와의 무공 대결까지, 러닝타임의 40%가량을 밀도 높은 액션으로 채웠습니다. 단전에서 기를 모아 불을 뿜는다든지 기둥에 매달란 채로 수십 명을 상대하는 등 게임에나 나올 법한 현란한 액션들은 수십 년간 무술을 연마해온 견자단과 무술 전문 엑스트라 군단의 능숙함으로 어색함을 극복했습니다. 객잔, 개방의 요새, 각개 문파들이 모이는 경합장 등 영화의 배경 역시 무협 웹툰 속 한 장면 같은 휘황찬란한 비주얼을 자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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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7일 견자단은 영화 홍보차 내한하여 한국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한국의 무협 팬들은 견자단과 함께 <천룡팔부: 교봉전>을 감상하며 무협지나 게임에서 접하던 “황룡십팔장” 같은 무술들이 스크린에 재현되자 환호했습니다. 견자단은 이에 대해 “김용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외국인들도 이 영화를 통해 중국 무협의 정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견자단은 이소룡, 성룡, 이연걸을 잇는 마지막 세대 중화권 액션스타로 배우로서는 물론 여러 작품에서 제작과 연출로도 참여하며 중국 무협 영화의 중진웅풍(重振雄风: 과거의 영광을 되살림)을 외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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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영화계에서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일부의 액션영화 만이 의미 있는 극장 수익을 내면서, 블록버스터가 아닌 액션물들은 극장 개봉이 어려워졌습니다. <천룡팔부: 개봉전> 역시 한국을 비롯한 말레이시아, 대만 등에서는 극장 개봉하였지만, 중국에서는 아이치이, 텐센트비디오, 요우쿠 등 중국 주요 OTT 플랫폼에서 춘절 시즌 작품으로 공개되었습니다. 각 플랫폼에서 9위안 (한화 약 1,700원)을 추가 결제해야 관람할 수 있는 TVOD(개별 구매) 방식으로 서비스된 <천룡팔부: 교봉전>은 춘절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관객들이 관람한 OTT 콘텐츠로 올랐습니다. 김용 작가 원작의 콘텐츠들을 수없이 접해온 중국 관객들은 <천룡팔부: 교봉전>의 허술한 전개에 혀를 차면서도, 역시 견자단의 액션에 견줄 배우가 없다며 속편을 기대한다는 관람평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이 OTT 개봉된 것에는 극장 영화의 문턱이 높아진 이유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 ‘저품질 영화 제작사’ 혹은 ‘극장 상영이 끝난 후 온라인 서비스로 부가수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만 여겨지던 OTT가 독자적인 영화 매체로 인정받은 영향이 큽니다. 팬데믹 동안 대규모 자본으로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극장 개봉이 연이어 미루어지다가 춘절과 국경절 특선 영화로 OTT에서 개봉하며 높은 수익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OTT 플랫폼의 작품별 구매 금액은 일반 영화 티켓가의 30% 수준이지만, 높은 접근성으로 인해 극장보다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뚜렷한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인구수 14억에 달하는 훌륭한 내수 시장을 가진 중국에서는 OTT 개봉이 극장 이상의 수익을 내는 창구가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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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단은 중국 공산당 정부와 홍콩보안법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배우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친중 성향은 <천룡팔부: 교봉전>에서도 드러납니다. 영화에서 개방(거지 패거리)을 비롯한 송나라의 중원인들은 중국 다수 민족인 한족을 상징하며, 거란족 교봉과 대리국 사람인 아주는 소수민족을 대표합니다. 교봉은 거란족이라는 정체를 들킨 후 개방에서 내쳐지고 그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송나라의 적대세력인 대연국이 송나라를 공격하자, 아주의 동생 아자와 힘을 합쳐 송나라를 위해 싸웁니다. 영화 속 송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나 자신이 각각 거란과 대리국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교봉과 아주는 한족(주류 민족)의 문화를 흡수한 소수민족을 상징하고, 이들이 송나라에 힘을 보태는 것은 결국 소수민족이 한족에 융화되는 “하나의 중국”을 의미합니다. 영화의 말미에서는 “거란의 아들이 대리국의 칼로 송나라를 지키려 나와 맞서다니”라는 적군의 대사를 통해 이 영화의 주제를 한 번 더 상기시킵니다. <천룡팔부: 교봉전>은 중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홍콩 국적의 배우 견자단의 정체성을 드러낸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원작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액션 영화이니 무협물을 좋아하시는 구독자분들은 킬링타임용 영화로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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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드렸던 입춘하고도 일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번번이 늦어져 죄송하다는 양해의 말씀을 구하며, 늦어지더라도 꼭 오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동지 즈음에는 오후 5시가 되기도 전에 어두컴컴해지던 하늘이 어느새 오후 6시가 넘도록 환합니다. 어둡고 움츠러들었던 지난 겨울에서 구독자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이 매일 한 걸음씩 봄으로 향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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