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태: 어린 시절 이소아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였나요?
-소화 : 저는 되게 지금도 그렇고 부모님 눈치를 많이 봤어요. 엄마의 영향을 엄청나게 크게 받았고,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딸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 사촌 언니가 말하길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 저희 삼남매더러 “어디서 저런 부잡한 애들이 왔을까잉?”하셨대요. ^^;) 엄마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엄마가 가라고 하셔서 법학과를 갔는데, 그때 법학이 나하고 안맞고 너무 어렵더라구요. 그러다보니 무기력했고 대학생활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내가 이걸 어떻게 공부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 말만 따라하다가 나 숨막혀 죽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있었던것 같어요.
-준태 : 그럼 사시도 어머님 뜻대로 보신 것일 텐데, 공익활동은 어머님이 좋아하셨나요?
-소화 : 사시도 엄마 뜻대로 보게 된거죠. 제가 엄마의 뜻을 거역해서 살만큼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떠밀리듯이 법학과를 가고 사시를 공부하고 이런 과정이 계속 떠밀려서 온거죠. 그러다가 합격하고 나서, 합격했으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하기 싫은 일은 안하며 살았어요. 못하겠더라구요.
엄마는 제가 단체 상근변호사 하는 거 그리 좋아하시진 않았어요. 엄마는 사실 제가 판사를 하길 원하셨거든요. 엄마의 기도제목 중 하나였어요. 판사는 너무 재미가 없고 힘든 일 같았어요. 하지만 그때부터 '뭐 어쩔거야!?!' 싶었어요. 엄마의 뜻에 따라 합격까지해서 자격증까지 땄는데 말이죠! 그때부터 제가 하기싫은 일은 안하며 살다보니 오늘 이렇게 되었네요.
- 준태 : 요즈음 변호사나 활동가로서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어디신가요?
- 소화 : 변호사로서는 사회적 기본권과 관련된 부분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심이 많고, 관련하여 사회적기본권의 실질화를 위하여 행정소송에서 의무이행소송과 같이 어떤 법률체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동행의 리더로서, 활동가로서 조직 구성이나 연속성과 같은 것에 더 관심이 있어요. 엄청난 뜻이 있거나, 엄청난 지식을 쌓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할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이 더 관심이 있고, 일의 지속가능성에 더 관심이 있고, 그렇게 지속가능성이 담보되려면 조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구성원도 성장하고, 조직이 성장하는 그러한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의 아니게 여러 유형의 단체에 있으면서 그만둬 보기도 하고 활동가들이나 변호사들이 그만두는 것을 보기도 했어요. 비영리단체에서는 좋은 뜻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있는데 회사랑 같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계속 있으려고 하겠어요. 영리회사에서는 보수로써 동기부여가 되는데, 비영리 단체에서는 그런 것이 안되니까 동기부여가 중요하죠. 동기부여가 안되면 이 일을 계속할 필요가 없죠. 근데 그게 안되어서 그만두는 것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릇이 먼저 튼튼해져야 그 다음에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럼 무엇이 동기부여가 될까요? 그건 너무 큰 이야기 이므로 다음 기회 더 자세히)
- 준태 : 자연인인 이소아 개인으로서 가장 관심있는 분야가 있으시다면요?
- 소화 : 자연인으로서는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자하는 부분을 가장 우선순위로 둡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곤 하죠 (하하) . 영적으로 충만한 것이 별것이 아니라, 음…. 그냥 배꼽에서부터 웃음이 올라오는, 배꼽에서부터 슬픔이 올라오는, 배꼽에서부터 신남이 올라오는, 배꼽에서부터 감사가 올라오는 그런 삶. 그런 삶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너무 껍질로만 살고 있거든요.
- 준태 : 동행을 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때, 가장 신났던 때
- 소화 :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작년에 5월 공동체 상을 받을때 가장 신났어요. 광주의 시민분들이 뽑아주시는 것인데, 저희가 별다른 홍보도 안했는데 전자투표에서 1위를 했어요. 그래서 그때 단상 앞에 나아가 여러 시민분들 앞에서 수상을 “그래도 잘해왔네” 싶었고 신나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끼고 그랬어요
제일 재밌었던 때는 저희가 전시회때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신났어요.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전달이 되고 했던 떄 좋았어요. 신났기도 했구요. (준태 : 저는 없었지만 그거 준비하면서 무척 힘들었다고들 하시던데요?) 하하하하. 마자요 힘들었지요. 두 번은 못할 듯. 그래도 유투브로 한번 봐보세요. 제 아이는 그때 7살이었는데 아직까지 그때를 떠올리면서 동화속 같았다고 얘기해요. 물론 다시하자고 하면 무척 고생스러웠기도 했어서 고민은 될 것 같아요
- 준태 : 동행을 하면서 힘들었을 때,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 소화 : 사람이 계속 바뀌는 거요. 동행에서 함께 했던 인연들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모두 제 생각보다는 일찍 헤어지게 되어서. 오랫동안 일한 동료가 이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뭔가를 더 해볼 수 있는 순간이 온 것 같은 때 떠날 때... 제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가 자괴감이 들거든요.
- 준태 : 그런 힘든 순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나 다짐같은 것들이 있으신가요?
- 소아 : 그런 순간들이 오면, 그 전에 크게 아팠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죽기야 하겠어? 혹은 아니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자알 성찰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기대를 걸지 않으려고 해요. 또 패소가 연달아 있을 때에는 어려운 사건에서 승소했던 기록이나 서면을 찾아 읽어요.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난 이후에 신의 뜻에 맡긴다는 자세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되겠지!라고도 생각해요. 정리하자면 그렇게 스트레스 받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땐 건강도, 사람의 들고 나감도 내 손에 달려있지 않은 일들이 많은데라고 생각하고는 해요.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하면 나머진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준태 : 진인사대천명 마인드시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성격상 냄비처럼 화르르 올랐다가 가라앉고 화르르 올라왔다 가라앉고 잘 그래요. 물론 욕도 많이 하면서요. 그리고 일을 다시 하죠. 또, 옆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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