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바라봄] 7년 차 소화 이야기
 이 인터뷰는 2021. 봄 녹취해두었음에도 1년을 묵혀둔 ^^;;; 소화(이소아 변호사)의 이야기입니다.
시간과 상황이 지나 약간의 편집을 했고, 사진은 최근 사진을 올렸습니다.
인터뷰어는 당시 동행의 자원활동가 박준태입니다. (녹취 박준태, 편집 이소아)
포토 바이 : 이기림
장소 바이 : 그리고 커피

- 준태 : 형용사로 자기소개 해주세요

- 소화 :  일단 동행의 이소아라고 합니다. 혼자 동행을 꾸리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동료들이 생겨서 든든,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도 항상 누군가가 방향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동행의 이소아입니다.  (준태 : 너무 길지 않습니까?)  짧게는 자유로운,  자유롭고 싶은 , , !  더불어 귀여운! (^^;) 이소아 입니다.

- 준태 : 동행을 혼자서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광주에) 동행 만들게 계기라거나 동기가 있으셨을까요
- 소화 : 질문도 많이 받고 얘기도 여기저기서 많이 했는데요. 다시 해보자면, 지역에 공익변호사가 아무도 없어서. 오히려 지역에 더욱 필요한데 아무도 하지 않아서 (시작) 했어요.
당시에는 지역에 공변이 명도 사실은 굉장히 필요하거든요. 그 때도 동행이 유일하고 지금도 유일해져버렸네요. 다행히도 제가 여러 비영리단체의 상근자로 일한 경험이 많다 보니까, 지역에서 '비영리단체' 까지 만들( ) 되었어요. 사실은 다른 선배 누군가가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주길 바랬는데 아무도 안해서그래서 제가 하게 되었어요.

-준태 : 공익관련 활동을 시작하게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소아 : 엄청난 계기 특별한 순간은 따로 없었어요. 3 점수에 맞춰서 엄마의 뜻대로 법대를 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 굉장히 무기력한 생활을 보냈는데, 그나마 새끼손가락이라도 걸쳐둔 동아리가 서울가톨릭대학생연합회 동아리였어요. 그때 선배들 중에 활동가로 살거나 학생운동을 하거나 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긴 했었어요. 저는 법학과를 가고 싶어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주 무기력한 대학생활을 했고, 그때 함께 진학한 언니와 당시 동아리 동기와 선배들이 여러가지로 챙겨줘야 하는(지금도 챙김을 받고 있는) 손이 많이 가는 애였어요. 법학 공부는 너무나 무섭고 무겁고 막막했는데, 그래도 일단 시작한 공부이고 20 후반의 아름다운 시기를 바쳤다보니 끝장은 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공부했고 감사하게도 사법시험을 합격했죠.

 또, 종교의 영향이였는지 뭔지 의미있는 삶을 살고 다는 마음은 었어요.

 그래서 다음 생에는 종교가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종교가 없는데, 신념이 어떻게 생기고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어디서 얻게 되는지 무척 궁금 해요.  왜냐하면…. 종교 믿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뭐랄까짐처럼 느껴져요. 저는 무엇에도 자유롭고 싶은데 이놈의 종교 때문에 신념이 생겨나는 같은 억울한 마음도 들고….  그래서 그런 것에 아예 얽매이지 으면서 자유롭게 의미있게 신나게 살아가는 법을 다음 생에 알고 싶어요. 이번 생에는 종교 안에서만 자유로울 같아요.

- 준태 : 동행을 만들기 공익변호사로서의 역량을 쌓은 과정들은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소화 : 주요한 곳만을 말씀 드릴게요. 제일 처음 직장에서는 실패의 경험을 맛보고 나서, 놀고 있는데 당시 민변 여성위 위원장이셨던 원민경 변호사님의 추천으로 다시함께 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시함께 센터는 성매매나 성폭행 분야의 엔지오였는데요, 박숙란 변호사님과 같은 선배 변호사들의 경험이 많이 쌓인 곳이었어요. 당시에는 제가 성매매나 성폭력과 같은 젠더관련 이슈들에 대해서 이해가 높은 상황이 아니었어요. 특히 성매매 관련한 공부는 전혀 안되어 있어서 불안했는데, 선배 변호사님들이 몰라도 된다. 가르쳐줄 있다, 배우면서 하면 된다.’ 말씀 하셔서  믿고 일했어요. 제가 선배님들 말을 믿거든요. 성매매 이슈가 당시에도 되게  첨예한 이슈였는데, 이에 대해 실무와 함께 공부를 면서 문제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성매매와 인신매매의 관계, 그것이 결국 성착취라는 . 이론과 현실의 괴리 등등. 곳에서 일을 1 정도 했는데 갑자기 아파서 거의 1년 정도를 쉬게 되었어요.

   변호사 3년차에 1년을 아파서 것이죠. 3년차면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뭔가 방향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때인데 말이죠.

 

     아파서 복귀하고 나서는  민변  본부 상근 변호사 들어가게 되었어요. 민변에서는 이미 주어진 역할(회원팀, 소수자인권위원회, 민생경제위원회)을 해야했어요.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라 모르는 분야(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신입변호사 시절이므로 모르는 건 다 똑같았을 거에요)를 마주하는 것이 막막한 점도 있었지만, 저는 주어진 역할을 잘하고 싶었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훌륭한 선배님들의 뭐라도 배우고 잘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잘했어요(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그때  소수자위원회와 민생경제위원회에서 간사 역할을 했고 민변의 회원팀장 일을 했거든요. 여러가지 회원사업을 하게 되고 회원 관리를 직접 했었죠.  특히 회원사업은 소모적인 측면이 있어서 변호사들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이었지만 저는 그냥 회원 사업 재밌었어요. 그렇게 회원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행사 기획 어떻게 하는지, 위원회 회의 준비하고 독려하고 조직하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알게되니까 나중에 동행을 설립하는게 두렵지 않을수 있었요. 품은 들지만 회원 관리와 회원을 대하는 태도 등에 관한 노하우들이 있었으니까요.


소수자위와 민생경제위는 다른 위원회였는데요, 위원회 연대단체들이 무척 많았어요. 그러한 위원회별로 이슈가 되는 지점들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 연대단체들과 엮어내서 일이 되게하는지에 대한 경험이 쌓였구요. 일종의 오거나이져 역할을 잘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어요.

 역량을 쌓고 싶어서 방향성을 가진 것고 준비한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닥치는 일들에 대해서 대응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배우고, 물어보고, 실무를 뛰면서 어느샌가 역량들이 갖추어진 것이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제네럴리스트가 같네요.

 

   시간이 지나서 뒤를 되돌아보며 말을 하니까 뭔가 있어보이지만, 그때의 저를 생각해보면 냉정하게 말해서 변호사로서 뭔가 계속 실패를 하는 경험들이었어요. 경력을 쌓아야 시기에 이직을 밖에 없거나 아파서 일을 못하거나 했으니 미래가 …. 불안했었어요. 그런데 시간들이 모두 결국에는 어떻게 쓰이고 있으니 신기한 같아요.

-준태:  어린 시절 이소아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였나요?

-소화 : 저는 되게 지금도 그렇고 부모님 눈치를 많이 봤어요. 엄마의 영향을 엄청나게 크게 받았고, 엄마의 말을 듣는 순종적인 딸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 사촌 언니가 말하길 어릴 외할머니께서 저희 삼남매더러  “어디서 저런 부잡한 애들이 왔을까잉?”하셨대요. ^^;)  엄마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을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엄마 가라고 하셔서 법학과를 갔는데, 그때 법학이 나하고 안맞고 너무 어렵더라구요. 그러다보니 무기력했고 대학생활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내가 이걸 어떻게 공부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 말만 따라하다가 숨막혀 죽을 같아"라는 생각이 있었던것 같어요.

 

-준태 : 그럼 사시도 어머님 뜻대로 보신 것일 텐데, 공익활동은 어머님이 좋아하셨나요?

-소화 : 사시도 엄마 뜻대로 보게 된거죠. 제가 엄마의 뜻을 거역해서 살만큼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떠밀리듯이 법학과를 가고 사시를 공부하고 이런 과정이 계속 떠밀려서 온거죠. 그러다가 합격하고 나서, 합격했으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하기 싫은 일은 안하며 살았어요. 못하겠더라구요.

엄마는 제가 단체 상근변호사 하는 그리 좋아하시진 않았어요. 엄마는 사실 제가 판사를 하길 원하셨거든요. 엄마의 기도제목 중 하나였어요. 판사는 너무 재미가 없고 힘든 같았어요. 하지만 그때부터 ' 어쩔거야!?!' 싶었어요. 엄마의 뜻에 따라 합격까지해서 자격증까지 땄는데 말이죠! 그때부터 제가 하기싫은 안하며 살다보니 오늘 이렇게 되었네요.

 

 - 준태 : 요즈음 변호사나 활동가로서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어디신가요?

- 소화 : 변호사로서는 사회적 기본권 관련된 부분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심이 많고, 관련하여 사회적기본권의 실질화를 위하여 행정소송에서 의무이행소송과 같이 어떤 법률체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동행의 리더로서, 활동가로서 조직 구성이나 연속성과 같은 것에 관심 있어요. 엄청난 뜻이 있거나, 엄청난 지식 쌓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같아요.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할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일하는 것이 중요한 같아요. 그래서 사람이 관심이 있고, 일의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있고, 그렇게 지속가능성이 담보되려면 조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구성원도 성장하고, 조직이 성장하는 그러한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의 아니게 여러 유형의 단체에 있으면서 그만둬 보기도 하고 활동가들이나 변호사들이 그만두는 것을 보기도 했어요. 비영리단체에서는 좋은 뜻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있는데 회사랑 같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계속 있으려고 하겠어요. 영리회사에서는 보수로써 동기부여가 되는데, 비영리 단체에서는 그런 것이 안되니까 동기부여가 중요하죠. 동기부여가 안되면 일을 계속할 필요가 없죠. 근데 그게 안되어서 그만두는 것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릇이 먼저 튼튼해져야 다음에 내용물을 담을 있는 것이지요. (그럼 무엇이 동기부여가 될까요? 그건 너무 큰 이야기 이므로 다음 기회 더 자세히)

 

- 준태 : 자연인인 이소아 개인으로서 가장 관심있는 분야가 있으시다면요?
- 소화 : 자연인으로서는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자하는 부분을 가장 우선순위로 둡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곤 하죠 (하하) . 영적으로 충만한 것이 별것이 아니라, …. 그냥 배꼽에서부터 웃음이 올라오는, 배꼽에서부터 슬픔이 올라오는, 배꼽에서부터 신남이 올라오는, 배꼽에서부터 감사가 올라오는 그런 . 그런 삶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너무 껍질로만 살고 있거든요.

  

 - 준태 : 동행을 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 가장 신났던

- 소화 :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작년에 5 공동체 상을 받을때 가장 신났어요. 광주의 시민분들이 뽑아주시는 것인데, 저희가 별다른 홍보도 안했는데 전자투표에서 1위를 했어요. 그래서 그때 단상 앞에 나아가 여러 시민분들 에서 수상을 그래도 잘해 싶었고 나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끼고 그랬어요

제일 재밌었던 때는 저희가 전시회때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신났어요.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전달이 되고 했던 좋았어요. 신났기도 했구요. (준태 : 저는 없었지만 그거 준비하면서 무척 힘들었다고들 하시던데요?) 하하하하. 마자요 힘들었지요. 두 번은 못할 . 그래도 유투브로 한번 봐보세요. 아이는 그때 7살이었는데 아직까지 그때를 떠올리면서 동화속 같았다고 얘기해요. 물론 다시하자고 하면 무척 고생스러웠기도 했어서 고민은 같아요

 

- 준태 : 동행을 하면서 힘들었을 ,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 소화 : 사람이 계속 바뀌는 거요. 동행에서 함께 했던 인연들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모두 생각보다는 일찍 헤어지게 되어서. 오랫동안 일한 동료가 이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뭔가를 더 해볼 수 있는 순간이 온 것 같은 때 떠날 때...  제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가 자괴감이 들거든요
- 준태 : 그런 힘든 순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나 다짐같은 것들이 있으신가요?
- 소아 : 그런 순간들이 오면, 전에 크게 아팠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죽기야 하겠어? 혹은 아니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리고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자알 성찰하고, 내가 없는 것에 대해 기대를 걸지 않으려고 해요. 패소가 연달아 있을 때에는 어려운 사건에서 승소했던 기록이나 서면을 찾아 읽어요.

있는 일을 다하고 이후에 신의 뜻에 맡긴다는 자세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는 같아요.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해요. 정리하자면 그렇게 스트레스 받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땐 건강도, 사람의 들고 나감도 손에 달려있지 않은 일들이 많은데라고 생각하고는 해요.내가 있는 하면 나머진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준태 : 진인사대천명 마인드시네요) 그렇다고 있죠. 리고 성격상 냄비처럼 화르르 올랐다가 가라앉고 화르르 올라왔다 가라앉고 그래요. 물론 많이 하면서요. 그리고 일을 다시 하죠. , 옆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구요.

- 준태 : 집에 도착했을 가장 먼저 하는 ?

- 소화 : 집에 들어가서 불을 켜고, 아기가 있으면 아기한테 말을 시켜요, 없으면 소파에 널부러져요. 하지만 아무도 없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밥을 챙기고 간식을 챙겨요 오늘도 김치볶음밥을 것이에요. (워킹맘은 모두 슈퍼맨들인 같습니다)

 

-준태 : 아무거나 자기 자랑을 해본다면? 

- 소화 : (별로 망설임없이) 무슨일이든 시키면 잘한다. 일머리가 좋다. 유쾌하다. 나이에도 귀엽다. 사진을 잘찍는다. 나를 사랑한다. (미냐 : 어떻게 저렇게 바로 나오지? / 소화 : 사실이 그렇잖아요. 나는 내가 귀엽다고 생각해!)

 

- 준태 :동행 자랑을 해본다면?
- 소화 : 지역유일, 이렇게 멋지 재미있 일하는 조직은 없다. 못 알아보면 너가 바보다. 돈보다 좋은 뭔지를 보여줄게!

 

- 미냐의 급질문: 소아님이 동행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소화 : 변론할 때요. 서면도 그렇구요. 일반적인 서면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다르게 쓰려고 노력하기도 하구요. 400 가까이되는 후원회원들과 함께하는 서면이라고 하기때문에 멋지지않을 수가 없죠.

일하는 방식도 일반적인 변호사 단체와 다르고 엣지있다고 생각해요. (미냐변: 일반적인 서면을 적어본적이 없긴해요)

 

- 준태 : 소화에게 동행이란?
- 소화 : 물려주고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가 없는 조직? (준태 : 낱말하나로 정리해주실수 있나요?) 부메랑인거 같아요. 멀리 떠나고 싶은데 떠날수가 없는 조직 다시 돌아와버릴 같아요. 동행은 돌아오는거야!? ^^;;;

 

요 정도 하고 저는 아를 데리러 가야합니다!

 

 

학민이를 데리러 유유히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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