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시사IN> 편집국의 마감날이기도 합니다. 제 아무리 늦어도 오늘 안에는 마감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기자들이 작성하는 기사는 물론, 외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방금,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가 보내 온 따끈따끈한 원고를 넘겼습니다. <시사IN>의 최장기 필자인 김세윤 칼럼니스트는 마감이 늦는 편입니다(혹시 본인이 보신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한 개도 겁나지가’ 않습니다(부럽기는 합니다). 15년간 원고를 펑크 낸 적이 없을뿐더러 읽고 나면 늘 감탄사가 나오는 글을 보내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원고를 받은 뒤 제가 필자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아니... 이 정도에요?’ 다른 때보다 각별한 성찬이 담긴 이 주의 영화는 무엇일까요? 지면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최근 제가 담당한 길고 긴 외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772호 커버스토리에 담긴 ‘우크라이나에서 온 일기’입니다. 어느 날,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 사는 한 여성이 전쟁 중 쓴 일기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번역된 글을 받아보니 저희 지면으로 11쪽 가량의 분량이었습니다. 더불어 그 글이 저희에게 닿기까지 중간에 도움을 준 나스차 크라실니코바 러시아 여성인권 운동가가 보내온 본인의 글도 비슷한 분량이었습니다. 하나는 일기이고 하나는 전쟁 중 여성들이 겪는 실상을 담은 기사였습니다. 두 원고를 들고 고민하다 전문을 각각 종이, 온라인 지면으로 소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외고를 커버스토리에 올리게 된 배경입니다.
우크라이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쉽사리 마르지 않을, 축축한 신발을 신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거대한 혼란에 저라는 개인 역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알은 체를 해야 할지 몰라 외신 근처를 서성이던 참에 ‘스베틀라나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아이 둘의 엄마인 그는 주민 대다수가 떠난 아파트에서 밤마다 공습을 겪으며 일기를 써내려 갑니다. 전쟁이라는 십자가를 품위 있게 지고 싶었지만 전쟁은 도시 뿐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폐허로 만듭니다. 신경안정제를 털어넣으며 아기 울음소리에 기대 폭격을 비켜가는 스베틀라나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무너집니다.
인상적인 건 3월20일의 일기입니다. 전쟁은 사람의 가면을 벗겨버린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드러나고 전쟁은 스트레스의 가장 극단적인 자원이니까요. 그런데 그날의 일기에서 스베틀라나는 전쟁이 고결함 역시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그가 아는 많은 이들이 바닥을 보이는 대신 배려하고 동정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본성이 한 가지 방식은 아닌 모양입니다. 폭격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한 개인의 안간힘이 읽힙니다. 물론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전쟁이라는 폭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만한 폭우에는 우산을 쓰는 게 소용 없다고들 합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젖기 위해, 곧 뒤집어질 우산을 펼쳐드는 심정으로 13쪽 지면과 온라인 기사 패키지를 꾸렸습니다. 독자님도 같이 쓰시겠습니까? <시사IN> 역사상 가장 긴 외고에 얽힌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