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근데 또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망한 것이 아닐지도
나는 내가 졸업을 못 할 줄 알았다. 학번에 따라 졸업 요건이 다른데 나같은 경우는 약간 재수 없게도 1997년에 태어나 현역으로 그 당시 기준으로는 성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름 적당한 대학에 입학하여 꽤 할 게 많은 졸업요건을 채워야 되었다. 본전공 졸업 요건인 어학 자격증과 복수전공 졸업 요건인 토익 850점 이상, 그리고 학교 졸업 요건인 컴퓨터활용능력 또는 모스 취득이다. 이렇게만 보면 심플한데 나한텐 복잡한 문제였다.
일단 본전공 졸업요건인 DELF 시험이 1년에 3번 밖에 열리지 않았다. 다들 B1은 다들 붙는다, 떨어져도 두 번째엔 다들 붙으니 이걸로 졸업 못 할 일은 없다고 했지만 시험 과목 중 말하기가 있다는 것이 미치도록 부담스러웠다. 오픽같은 녹음 방식이 아니라 시험관이랑 1:1로 앉아서 대화를 해야된다. 대학교 2학년 때 쯔음, 이 시험을 봐야 된다는 생각만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과장이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있는데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내 귀로 들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얼굴에 있는 혈관까지 울릴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프랑스어에 대한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영어 공부야 워낙 오래 해왔고, 남들 일본 애니 보면서 일본어 배울 때 온갖 할리우드 가십거리와 구글링 등등으로 영어를 접한 상황에서 고작 1-2년 배운 프랑스어 실력을 평가받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시험이 1년에 고작 3번 있다는 것도 리스크가 크다고 느껴졌다. 심지어 11월에 봐서 떨어지면 내년 봄에 재시험을 봐야되었다. 6개월 정도의 텀이 있지만 년도가 바뀐다는 것은 심각한 부담이다.
이걸 쓰면서 나는 애를 낳지 말아야 된다고 느낀 것이, 아마 나는 내 자식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온갖 상술에 넘어가서 애한테 돈을 쳐바를 인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종로 신중성에 가서 그 짓을 했기 때문이다. 신중성은 프랑스어 학원 이름이다. 중국집 이름이 아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신중성 라파엘 쌤이 유명하다고 했다. 여름 방학하자마자 신중성에 있는 원어민 선생님 회화반 등록해서 그것도 듣고, 원장쌤 문법 특강도 듣고 (이건 진짜 1도 도움이 안됐다), 시험 3개월 전부터 라파엘 쌤 반에 들어갔다. 엄마한테는 20만원 + 책값만 내달라고 했고, 나머지는 알바비로 충당했다. 근데 밥은 엄마 카드로 먹었다...ㅎ
시험은 한 번에 붙었다. 가장 걱정했던 회화 시험은 솔직히 말해서 이날 이 때까지 교수님 빽으로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런 걸로 붙여줄 인간들은 아닌 것 같다. 그냥 붙을 만해서 붙여준 것 같다. 회화 시험관이 아주 나이스했는데 자기소개할 때 '나는 ㅇㅇ대학교에 다녀~' 했더니 거기에 ㅁㅁ 교수를 아냐고 물어봤고, 안다고 했다. 이것 때문에 붙여준다는 것에 애당초 말이 안된다. 어쨌든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했다. 이렇게 붙을 줄 알았으면 심장박동 레이스는 왜 뛴거야?
두 번째 문제는 컴퓨터활용능력시험(이하 컴활)이었다. 1급 아니고 2급 땄다. 솔직히 이 얘기하기 너무 부끄러운데 누군가는 나 같은 사람을 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단 적는다. N년 전에 필기에 합격하고, 실기에 떨어졌다. 그리고 학교 다니고 인턴하면서 잊고 살다가 필기 합격증이 만료되기 전에 또 실기를 쳤는데 또 떨어졌다. 그렇게 필기부터 아주 다시 봐야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컴활을 꼭 따야만 하는 순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에게 경고하는데 혹시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았거나 졸업을 유예할 생각이 있다면 얼마나 유예가 가능한지 꼭 확인해야 된다. 과 선배 한 분이 졸업 유예 만료 문자를 받았다는 것을 듣고 학교의 극악무도함에 치를 떨었는데 아? 나도 그 문자를 받았다. 나한테만 귀뜀해주면 알아서 조용히 해결할 일을 이노무 사학재단은 우리 부모님께도 문자를 보냈다. 씨발. 등록금 내라는 문자도 나한테만 보내던 인간들이...
그렇게 컴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너무 화나는 사실들은 내 후배들은 컴활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내가 알아본 바로 직전 학기에 컴활 대체 교육을 셧다운 했다는 것이다. 컴활이 너무 싫어서 모스를 볼까 고민도 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성비가 엉망이었다. 그래서 컴활에 진득히 도전해보기로 했다. 필기는 바로 붙었지만 실기가 문제였는데, 아무리 기출을 빠르고 정확하게 풀고 가도 이상하게 점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의 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첫 번 째 시험을 급격한 컨디션 난조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의 시험을 얼른 더 접수했다. 두 번 째 시험도 어쩌다보니 응시를 못해서 한 번의 시험을 더 응시했고, 다행히도 마지막 두 번의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이 때 안 보면 기간 내에 졸업 심사를 받을 수 없어서 진짜 매일매일이 미칠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컴활에 쓴 돈을 계산해보면 228,000원 정도가 나올 것 같다.
진짜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세상 요란하게 졸업했다. 나만 이런가? 라는 생각을 하면 현타가 온다. 다들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나름 스펙터클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원래 평탄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다.
2.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된다는 것은 어른들의 기만과 거짓말이 아닌 진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졸업 유예 기간이 만료되는 3년 동안 김혜지는 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무엇을 하느라 이렇게 정신이 없었던 것인가? 인턴했다.
나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는데 3년 내내 거의 풀로 인턴을 했다. 수료 후에 진로를 트는 바람에 학교 다니는 동안 해놓은 '취업 준비'도 많이 부족했고, 무엇을 업으로 삼을지도 불분명했다. 일단 뭐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특기인 영어를 살려 외국계 기업에서 사내외 커뮤니케이션 인턴을 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에 인턴 자리가 나서 그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관심 깊게 보고 있던 브랜딩 에이전시에 자리가 나서 거기로 갔다가 가장 최근에는 화장품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사실 작년에 친구가 대신 눈물 흘려줄 정도로 어이없는 일들도 많았고, 욕도 아까울 정도로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원하는 성과가 있던 2023년은 아니었지만 2023년이 간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잘 함'과 '좋아함'과 '재미있음'의 교집합이 없는 일에서는 전문성을 쌓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근데 저 당시에는 '정규직'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만 보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조급했고, 조급했기 때문에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나라는 인간의 퀄리티가 좀 떨어져 보였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지금도 사실 마음이 급한데 해당 문단의 소제목 때문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왜나하면 저 인턴 경험을 쌓은 과정과 지금의 상황이 어느정도는 생각하던 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했고, 브랜딩에 관심이 많았는데 3개월 동안 아주 찐하게 경험해보기도 했고, 글을 기고하고 싶었는데 온큐레이션에서 객원 에디터로 글을 쓰고 있다. 영상 캠페인이 궁금했는데 화장품 회사 다니면서 맡은 일이 이 쪽이었고, 이미지 기획이 궁금했는데 해당 프로젝트도 어시스트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만큼 진득하고 큰 결과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 해봤다는 측면에서는 정말 신기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로에 대한 확신과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아빠가 '너는 너 하고싶은거 다 했잖아'라고 말씀하실 떄 '뭐래'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책 없이 해맑은 사람은 물론 논외다. 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뭐라도 할 수 있고, 버틸 수 있다.
3. 나는 '망했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말을 뱉는 순간 진짜 망할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작년에 난 진짜 망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망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있었고, 진짜 내핵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망했어'라고 말하면, 그 말을 하는 순간 주저 앉을 틈도 없이 내팽겨쳐질 것 같았다. 어릴 때 운동장에 서 있으면 발로 오금을 차고 도망치는 림프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친구들이 있었다. 거길 차면 사람이 휙 넘어지는데, 저 말을 뱉으면 바로 그렇게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는 아주 많이 했는데 거기에는 망하면 안된다는 불안감, 진짜로 망한 상황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 그래도 아직은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절박함 등등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4. 축하는 넘치게, 울음은 진하게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는 것처럼, 울음도 인간의 본성이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이유는 몸 안에 공기가 들어갈 때, 폐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 때문이라고 한다. 슬프고 고통스러우면 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인데 우리는 언제부터 눈물과 부정적인 감정을 등한시하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죄악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슬픔과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를 낮출 뿐이다(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어서 다음에 또 써 볼 예정이다).
더 이상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나쁘게 보는 시각이 커졌는데 그렇다고 기쁜 일들을 제대로 축하하고, 즐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먹고살기 팍팍하다보니 뭐든 잘해야 될 것 같고, 이 정도의 성취는 별 것 아닌 것 같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에 우리는 축하를 미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별 거 아니라도 내가 해낸건 해낸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열심히 자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나처럼 일상적으로 나 자신에게 친절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작은 자축이 중요하다는 것을 눈물 콧물 흘리며 배웠다.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이 점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남들 다 가진 학사, 대단한 학벌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동안 이룬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써도 될까? 그치만 나는 온갖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졸업에 성공했으며, 그 시간 동안 한 게 없거나 배운 게 없는 것이 아니므로 일단 써보기로 했다. 이왕 글 쓴 김에 사촌동생이 고생하며 찍어준 졸업사진 한 장 자랑하고 이만 여기서 줄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