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케드 소식을  전해주는 콤콤이입니다.🦭 콤케드(KOMKED)는 MK전문사역단체이며, 공식 명칭은 한국ㅅㄱㅅ자녀교육

*본 글은 일부 보안국인 ㅅ교지를 위해 특정 단어를 자음 처리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콤케드 소식을 전해주는 콤콤이입니다.🦭

콤케드(KOMKED)는 MK전문사역단체이며, 공식 명칭은 한국ㅅㄱㅅ자녀교육개발원(Korean MK Education & Development Center)입니다.

오늘은 매주 금요일 찾아오는 MK스토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열다섯 번째 이야기, C국과 Ca국의 하*진 MK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께 맡깁니다
C국과 Ca국의 하*진 MK

  2013년 12월이었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는 베개보다 조금 더 큰 박스가 깔려 있었고, 거기는 내가 밤새 누웠던 곳이다. 눈을 떠보니 빛이 두 눈을 환하게 비췄고 잠잠한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새벽이었다. 그날은 C국에서 추방된 지 4개월이 지난, 한국을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나에겐 가장 설레고 가슴 떨렸던 그 어떤 찬란한 레드카펫보다 더 멋진 바닥에서 보냈던 짜릿한 밤이었다.

  2013년 여름, ㅈ일ㅇ배를 드리는 중 C국 경찰들이 ㅇ배 현장을 덮치는 바람에 내가 태어났던, 부모님의 청춘을 다 바친 C국을 떠나야만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나의 조국이지만 너무나도 낯선 땅인 한국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나는 C국에서는 한국인이었고 한국에서는 그저 한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C국인이었다. 한국생활 4개월은 나에게 길고 긴 4년 같았다. 한국에는 간단하게 밥 한 끼 같이 먹어줄 친구도 없었고, 뭐 하냐고 문자 한 통 남길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그렇게 난 늦은 아침, 남들이 예쁘게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2교시 수업 종을 들을 때쯤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대충 세수만 하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매일 같은 일상이었지만, 조금씩은 괜찮아지는 것 같았고 ㄱ회 친구들도 차츰차츰 알아가며 한국생활에 조금씩 괜스레 적응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평온한 날들을 쫓아 열심히 살아가는 나에게 내 평온을 질투하듯 아버지께서는 새로운 ㅅ교지를 찾기 위해 갑자기 동남아 탐방을 떠나셨고, 1개월의 탐방의 결과는 12월에 Ca국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한국에 겨우 적응하고 있는데 또 새로운 곳이라니….’ 두려움이 앞을 가렸지만, 현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떠날 준비를 다 마치고 한국에서의 마지막 가정ㅇ배 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나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께서는 50세의 나이에 다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길게는 40년은 더 살 수 있으니 인생의 제2막을 새롭게 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남았다고 하셨다.

*본 MK스토리는 KOMKED 장학생으로 선발된 MK의 이야기입니다. MK스토리의 저작권은 한국ㅅㄱㅅ자녀교육개발원(KOMKED)에 있음을 알립니다.


다음 주, 새로운 이야기로 만나요!

한국ㅅㄱㅅ자녀교육개발원(KOMKED)
본부사무실  14060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귀인로 301, 새중앙ㄱ회 405호
서울사무실  06928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100, CTS빌딩 9층 콤케드
📞 02-817-1164, 010-7737-1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