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시대: 복합위기에서 질서전이로

 

정성철(명지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한반도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코로나 후폭풍, 복합위기의 도래

 코로나 후폭풍이 거세다. 온 세계가 경기침체를 체감하며 물가의 오름세와 성장의 하락세를 뒤집고자 애쓰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난 2년을 돌아볼 여유는 없다. 더구나 기후변화는 우리 산업과 일상의 획기적 변화를 요구하고, 민주국가는 선거 불복과 폭력 사태를 빈번히 겪으며, 강대국 러시아는 형제국이었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위기를 언급하며 긴장을 조성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누그러지며 맞이한 2023년에 세계, 국가, 사회, 교회, 가정, 개인이 다양한 문제와 악재를 맞이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자연스레 ‘복합위기’(polycrisis) 논의가 줄을 잇는다. 특정 문제가 우리의 역량을 넘어서 정체성을 위협할 때 위기가 발생한다. 현재는 복수의 위기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우리를 압도하는 시기이다.1) 코로나와 기후변화가 경기하강과 에너지·식량 문제를 일으키자 다양한 집단 간 갈등과 충돌은 한층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잠재울 글로벌 리더십은 찾기 어렵다. 글로벌 팬데믹이 발생하자 미국과 중국이 보여준 행동은 실망을 넘어 우려를 가중시켰다. 두 강대국의 충돌 가능성을 둘러싼 전망은 세계를 긴장으로 몰고 간다. 현재 양국이 협력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서로에게 멀어질 결심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복합위기의 근본적 원인 무엇인가? 대다수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뿌리를 둔 세계화를 지목한다. 자본주의가 전세계를 상대로 비용 대비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 결과 병든 지구에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욕망을 채울 자원은 고갈되고 예측을 비웃는 상황은 늘어났다. 이러한 결핍과 불안을 파고든 정치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곳곳에서 권위주의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서로를 동반자가 아니라 도전자로 바라보는 프레임이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전반에 걸쳐 등장한 것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경제성장이 둔화된 상황에서 각국의 지도자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에 기댈 경우 적대적 관계의 확산은 불가피할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뿐 아니라 또 다른 충돌을 우려하는 이유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질서전이의 서막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떠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아직 종전은 멀어 보이지만 국제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앞당기고 있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은 전세계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종말을 둘러싼 논의를 촉발시켰다.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지도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시장경제·민주주의·인권보호를 핵심으로 확장시킨 국제질서가 곧 종식되리라는 전망이 커졌다. 환태평양동반자협정과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이 구축한 질서를 변경하려는 ‘현상변경 패권국’의 등장을 알렸다. 바이든의 당선 이후 미국이 중국을 현존질서에 맞선 도전자로 규정하며 민주세력을 규합하고 있지만,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과 민주주의 연대망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두 강대국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사실 강대국 경쟁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복합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20세기 초 이후 가장 심대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대규모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지만 두 차례 대전 이후 500만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례는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현재까지 670만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그림] 참조). 물론 전쟁과 전염병은 상이한 경로와 수준으로 국가와 사회,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지난 수년 전세계는 대전쟁에 버금가는 충격에 신음하였다. 국제질서의 등장과 쇠퇴를 설명한 다수의 학자들이 전쟁에 주목한 이유도 그러한 충격이 가져오는 변화 때문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팬데믹이 가져올 질서전이(order transition)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림] 전쟁과 코로나 사망자, 1850-2020


*전쟁 사망자는 국가 간 전투 관련 사망자 수(전쟁 발발 연도 기준)

**2020년은 코로나 관련 사망자 수(2023년 1월 18일 기준)

***출처: COW War Data v4.0

           https://correlatesofwar.org/data-sets/cow-war/); Worldometer(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그렇다면 질서전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최근 한 연구는 국제질서를 받드는 세 기둥 - 권력(power), 제도(institutions), 규범(norms) - 가운데 둘 이상이 도전을 받고 변화하면 질서전이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2) 이러한 기준에서 살펴볼 때 현존 질서가 큰 도전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다. 비록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중국경제의 부상 속에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세기 중후반과 비교해 매우 낮아졌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쿼드, 오커스, 민주주의 정상회의 등 새롭고 다양한 (소)다자협력을 가동하면서 국제제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도 일대일로와 상하이협력기구 등을 적극 활용하며 미국 없는 제도망에 발벗고 나섰다. 이러한 두 강대국은 자유무역 규범을 무역분쟁에 돌입하였고 서로를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두고 비난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국제질서의 출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은 베르사유체제 속에서 국제연합을 출범시켰지만 또 다른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말았다. 현재의 복합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유주의 국제질서 2.0’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복수의 지역질서가 경쟁하며 공존하는 다극체제 혹은 무극체제가 나타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미래 국제질서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 행위자들의 전략과 행위, 또한 팬데믹과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환경의 변수 등이 결합 되면서 빚어질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 중견국들의 선택과 연합이 주목을 받을 것이다. 더 이상 조연에 머물거나 벤치에 앉아 승패를 받아들일 행위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환의 폭풍, 새로운 한반도

 다가오는 국제질서의 변화는 우리에게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그 파도를 타고 어떠한 한반도를 건설할 것인가? 물론 현재의 복합위기를 헤쳐나가는 작업이 단기적으로 중요하다. 단순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이 아니라 전환기 한국이 감당할 역할과 그에 따른 매력적 비전을 제시해야 할 상황이다. 작년 말 발표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그 출발점일 수 있다. 자유·평화·번영을 위해 포용·신뢰·호혜를 원칙으로 명시한 전략은 현재 우리의 상황과 지향을 보여준다. 변화하는 세력분배, 재편되는 국제제도, 흔들리는 국제규범을 바라보며 우리의 정당한 목표와 굳건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위한 세부전략을 구체화할 때이다.

 향후 수년 동안 복합위기와 질서전이의 시대를 살아야 할 것이다. 현재를 흔히 소련이 해체한 1991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45년과 비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신냉전이라는 구호 속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과거로의 회귀로 치환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거 미국이 아시아에서 구축한 중심-바큇살 군사동맹체제는 군사·경제·기술·정보를 넘나드는 자유주의 (소)다자동맹 네트워크로 변화하였다. 그러한 환경변화 속에서 한국은 냉전기 하위 군사파트너에서 벗어나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고 변화를 공동 추구할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눈앞의 폭풍뿐 아니라 폭풍 뒤 미래를 생각할 때 그 공간을 활용할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1) https://www.ft.com/content/498398e7-11b1-494b-9cd3-6d669dc3de33

2) Kai He and Huiyun Feng. "International order transition and US-China strategic competition in the indo pacific." The Pacific Review (2022):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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