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제일 재밌는 건 사람 마음이야
결에게,

안녕 결, 민경이야.

이번 주도 독서실에 앉아 너에게 편지를 써. 지난주의 경험이 꽤나 만족스러웠나 봐. 조용히 하기로 약속한 이곳이, 그럼에도 물을 마시는 소리나 발자국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숨길 수 없는 이 공간이 마음에 들어.


나는 예민한 편이야.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 마주하는 자극들을 세세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일상이 조금 더 깊고 풍부해지는 건 좋지만, 무언가 조금 덜 느끼고 싶을 때도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건 버거운 일이지. 지금도 에어컨 바람이 피부에 닿는 느낌과 왼편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이는 걸 신경 쓰고 있어. 예전 같으면 자리 운이 없다며 다른 곳으로 옮겼겠지만, 이제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 요가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해. 요가를 하다 보면 낯선 자극을 자주 마주치거든, 그럴 때 '아.. 이거 아닌데? 뭔가 잘못됐는데?' 싶다가도 들숨날숨하며 잠깐 있다 보면 익숙해지고 가끔은 시원하기도 해. 그래서 요즘은 명백하게 나쁜 자극이 아니라면 그냥 그걸 마주 보는 일이 많아졌어. 


관계에 있어서도 나는 작은 단서에도 불안을 느끼고 조급해져. 무언가를 유보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가령,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같은 말을 못 견디는 편이야. 여전히 그런 말은 힘들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무것도 결론짓지 못한 밤에도 잠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난해한 요가 동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어려운 마음 앞에서 쉽게 그것을 버리려 하지 않아. 그게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비겁하지 않은 방식이란 걸 이제 조금 이해한 것 같아.


결, 이번 주 나에게는 두 가지 특별한 만남이 있었어. 하나는 오래 좋아했던 작가님의 북토크를 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한 인터뷰였어. 이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


최은영 작가님은 나를 가장 많이 울린 작가님이야. 작가님이 쓰신 작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금 약간 목구멍이 먹먹해졌어. 작가님의 책을 읽다 보면 인물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져 그리고 절정의 순간엔 마치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울게 돼. 울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 작가님이 주는 울음은 언제나 선물 같아. 우울로 가게 하는 울음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울음.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 작가님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 덕분인 것 같아. 내가 느끼는 감정이 가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죄책감이나 수치심, 오만, 두려움 같은 것이 끼어들어 감정으로부터 소외되곤 해. 그러면 그 감정은 내 것도 아니면서 유령처럼 나를 맴돌아, 그리고 약해진 틈을 타 나를 공격하지. 작가님의 글은 그런 감정과 나 사이의 매듭을 부드러운 방식으로 풀어줘. 그 감정이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게 해 주지. 나는 <한지와 영주>라는 작품과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작품을 특히 좋아해. 너에게도 한 문장을 적어 보내.


"걔랑 같이 밥을 먹어도, 같이 길을 걷고 이야기하고 웃어도 괴로웠어. 우리의 마음이 너무 달라서 외로웠어. 마음이라는 게 사그라지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면 그 마음이 사라질까 봐 겁이 났어. 아무리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그 마음을 잃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단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워지기 싫어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진짜 마음 하나 없이 함께하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게 나에게는 가장 무서운 것이었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까."


북토크에서는 작가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자기혐오를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셨고, 지금은 그 마음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이야기해주셨지. 그 역사를 내가 몇 줄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일'이라고 말하시는 것 같았어. 작가님은 상담받으셨던 이야기를 길게 해 주셨는데, 상담사 선생님이 '어떻게 사람한테 그럴 수 있냐고' 작가님을 다그치셨대. 앞 문장에서의 '사람'은 바로 작가님 자신이고. 그리고 상담을 종결하는 날 작가님의 '선생님, 저는 이제 저를 비난하지 않아요'라는 말에 상담사 선생님이 우셨다고 해. 작가님이 좋은 상담사를 만나신 것 같아 기쁘고 찡했어. 


이제 두 번째 만남에 대해 이야기할게. 나는 '인터뷰 놀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거든. 말 그대로 인터뷰를 놀이처럼 하는 거야.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질문들을 작은 질문지로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놀이야. 가까운 지인부터, 지인의 지인 그리고 아주 낯선 사람과도 종종 하고 있어. 이번 주에 만난 분은 온라인으로 진행된 워크숍에서 알게 되었어. 그날 유난히 수줍어 워크숍에서 말을 잘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 사람들에게 인터뷰 놀이를 홍보했는데 그분이 연락을 주셨어.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인터뷰 놀이를 쉬었는데 그 오랜 정적을 낯선 이와의 대화로 깨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나는 내 매력이 사람들의 유머 코드를 빠르게 파악하고 적절한 농담을 던지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긴장하면 매력 발산이 하나도 안 된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 점이 가장 걱정되었어. 그런데 (그분은 너무 미안해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인터뷰이가 무언가 두고 오는 바람에 약속 장소로 오던 중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인터뷰 장소와 친해지고, 질문도 돌아보고 차도 마시며 마음을 정비할 수 있었어. 그래서 아주 재밌는 인터뷰 놀이를 할 수 있었지. 

물론 재밌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긴장을 안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어. 인터뷰이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었어. 그리고 활짝 열린 문처럼 솔직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 앞에서는 나도 무장해제를 하게 되지. 


인터뷰 놀이를 하면서 속으로 '역시 제일 재밌는 건 사람 마음이야'라고 생각했어.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저마다 다른 게 너무 재미있어. 다른 마음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안에 풍성한 이야기가 넘치고 있는 게 나를 두근두근하게 만들어. 인터뷰 놀이를 계속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겠지. 그래서 어릴 때도 백문백답 읽는 걸 그렇게나 좋아했어.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지. 관계에서 상처가 발생하는 이유 또한 사람들의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마음이든 '그럴 수 있지'하고 넘겨 버릴 수 있는데, 가까운 사람이 나와 너무 다른 생각, 그것을 넘어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마음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되는 것 같아. 지금은 진행 중인 상처가 없어서 '그래도 재밌는 건 못 참지!'라는 말이 쉬이 떠오르지만, 지나온 상처를 떠올리면 머리가 아찔해지는 걸 보니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오늘은 너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어. 네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네게 상처가 되는 생각이나 마음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될 때 너는 어떻게 하는지, 어떤 마음이 드는지 말이야. 


결, 나는 사람이 무섭고 밉고 끔찍해.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대부분의 존재는 사람이야. 그리고 무섭고 끔찍한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경계가 그리 분명하지 않다는 걸, 그 두 집단이 언제든 쉽게 섞이곤 한다는 걸 이제 알아. 이 모순을 예전에는 해결해보려 하기도 했었는데(아주 냉소적으로 살기를 다짐하거나 밝은 모습만 보자고 다짐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야) 그럴 수 없다는 걸 이제 받아들였어. 그래서 나에게는 아주 많은 질문들이 생기게 되었지. 오늘 너에게 건넨 질문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아. 


여름이 훌쩍 다가온 기분이 들어.

나는 여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예쁜 부채를 하나 사려고 해.

너는 여름을 어떻게 준비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우리 여름에도 계속 편지하자,



2022.05.22. 민경

추신. 인터뷰 놀이날의 풍경을 함께 보낼게:)
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보내준 답장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줘.
모두들 너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8-2. 지난주에 받은 답장을 나눌게, 영원하지 않음과 망각에 대해 물었어.
"매년 이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1장.
현재의 나에게 ‘영원하지 않음’은 아쉬움에 가까워. 아마 이 마음을 가장 잘 담아낸 노래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아닐까?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들어본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흑흑 내 나이 곧 서른이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쉽다. 게다가 매년 이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선배들은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씀해주시지만 나는 앞으로 마주할 숱한 이별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기차 안에서 저무는 햇살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오늘 하루가 이렇게 끝나가다니 아쉽고 아쉽다. 이번주는 너무 빨리 지나갔다. 벌써 5월 20일이야!

2장.
‘모두 지나고 나니 좋았던 것만 떠오른다’는 말 들어본 적 있을거야. 이 말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 나의 뇌는 이미 나도 모르게 망각의 기능을 자기 입맛대로 사용하고 있는걸지도 몰라.

윤현상의 노래 중엔 <기억의 창고>라는 곡이 있어. 늦은 밤. 자신의 기억의 창고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 그 창고를 헤집어 놓는다는 내용의 가사인데, 나에게도 그런 창고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곡이야. 앨범 소개에 ‘본인의 기억의 창고는 잘 정리하여 행복한 삶이 되길 응원합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윤현상은 정리된 기억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 것 같아.

이쯤되면 이런 질문도 떠오를 것 같다. ‘그럼 행복한 기억은? 좋았던 추억은?’이라는 질문. 비어가는 가슴 속에 슬퍼하던 가수 김광석의 질문쯤 되려나.ㅎㅎ 답을 해보자면, 난 행복했던 기억으로 현재를 살아간다기 보다는 그 기억은 과거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으므로, 그것만으로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봐. 지나간 기억에 매여있는 건 오히려 아쉬움과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리고… 좀 냉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잊어가는게 아쉽다기엔, 어느샌가 잊은 줄도 모르는 미래의 내가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의미가 있다’던 이적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좋은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결국 망각은 우리에게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아.

‘다 잊고 새출발’할 수 있게.
"멍든 가슴을 우리는 안다"

편지를 받고 오랫동안 고민했어. 오랫동안 고민해도 여전히 답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서 오늘은 종일 산을 걸으면서 드문 드문 생각해 보았어.
'영원'이라니...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 지지도 않고 경험해보지도 않은 일이라서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어. '영원하다'와 '그렇지 않다'의 명제 중에서 나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 고민해 보았는데 나는 '영원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잎이 지면 나무에 붙어 있는 것들은 사라지지만 뿌리가 있으면 또다시 꽃 피고 지고 이파리 열리고 떨어지잖아. 나무는 영원해. 나무도 언젠가는 죽어버리겠지만 씨로 태아나 다시 자라겠지. 이상한 논리 인 것 같은데 여하튼 나는 영원을 믿기로 했어.
너는 영원히 계속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이나 관계 혹은 사람이 있나? 또는 하루 한시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상황이나 환경이 있어?
(민경: 그럼, 둘 다 아주 많아! 그렇지만 일상을 지낼 때 그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진 않아)

나는 오늘 나의 인생을 찬찬히 되돌아보았어. 되돌아보았자 범인의 인생에 영원이나 망각을 들먹인 만한 상황은 없더라. 극단의 인생을 지나오지 않았음을 감사해야 할 것 같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이라면 환호의 자리에 영원히 머물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영원하지 않음에 절망할 것 같아.
잊으려 애쓰지도 않겠지만 아무리 잊으려고 애써도 잊을 수가 없는 멍든 가슴을 우리는 안다. 생각만으로도 울컥한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을 애써 덮으려하지 말고 다른 대체물로 자연스럽게 천천히 승화시켜야 해.

다소 질문과 동떨어진 대답인 것 같지만 영원과 망각에 대해서 고심해볼 수 있었던 좋은 편지였어. 고마워. 그리고 나도 너처럼 아지트 하나쯤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며 편지를 맺는다.
"내일은 꼭 외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안녕 민경! 벌써 일곱 번째 편지라니. 사실 첫 편지를 받아본 날, 독서실에서 열었다가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참았던 기억이 나. 움츠러든 마음에 경주에서 행복한 날을 보냈다던 그 글이 어찌 그리 다정하던지.
지금은 새벽 4시가 다 돼 가는데,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들뜬 기분 때문인지, 잠이 오질 않아서 조금 나른한 기분으로 이렇게 써.
왜 들떴냐고? 랜덤으로 팀원을 만나서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을 진행 중인데, 이번 팀원들이랑 너무 잘 맞았거든! 2주 전만 해도 입맛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힘들어서, '내가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 그러다 티키타카가 되는 팀을 만나니까, '내가 이렇게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오늘이 마감일이었는데, 다음에도 같이 하면 좋겠어요!! 하면서 헤어졌어. 이제 일요일이면 또 새로운 팀이 꾸려질 텐데, 이젠 두렵지 않아 히히
미숫가루 크림라떼 나도 먹어보고 싶다. 또 그보다 너랑 놀고 싶다. 읽고 쓰기에 부지런한 네가 참 멋져. 영원을 믿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응'. 그게 슬픔일지 위로일지에 대한 답은 '위로'야. 불안을 떨치려고 명상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좀 넘었는데, 마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난데없이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해. 내 안의 행복이 차곡차곡 덧대져서 단단해지면, 그 마음은 영원할 거라 생각해. 내가 겪은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그리고 이 삶에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게, 현재를 더 치열하게 행복하라는 뜻 같아서 위로가 돼. 내일은 꼭 외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나도, 매일 감사할 일이 넘쳐나는 축복 속에서 너의 행복을 바라:)
"속상한일 있다고 나를 떠올려준게 너무 감동이다"

지난번 편지에 따뜻한 위로 고마웠어ㅎㅎ나는 괜찮아 그래도 덕분에 나를 한 번 더 살피게 되잖아^^

이번 질문은 받고 정말 감탄했어. 어떻게 이렇게 항상 모두 그렇다 또는 모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깊은 질문을 보내줄까....너의 통찰력과 깊은 마음을 이렇게 무료로 나눠봐도 되는걸까ㅠㅠ 혹시 에세이집이 나오면 우리한테 가장 먼저 알려줘! 나는 초판본 모으는데 진심이거든ㅋㅋ

각설하고ㅎㅎ 요즘 나는 노희경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보고있어. 그런데 거기 등장인물들이 그래. 마냥 못된사람이 없고 마냥 착한사람이 없어. 주인공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너무나 짠하고 고된 삶의 무게 그 자체거든.

오늘의 질문도 그런거같아. 나는 아직까진 영원하지않음과 망각은 축복이다 저주다. 슬픔이다 위로다. 어떻다고 말을 못하겠어.

망각이 축복이길 바라는 일들도 많고,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해서 기록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일들도 너무 많거든. 내 생각은 그런데, 나의 바람은...부디 어느한쪽으로 내마음이 기울지 않게 평온한 날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 슬프고 아픈일은 망각이 축복이길..영원하지 않길 바라게 되잖아. 아 아니다. 망각이 슬픔이고 영원함이 계속되길 바라는 쪽으로 기울고 싶어.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더 많은 날들로 미래가 가득차면 좋겠다ㅋㅋㅋ완전 변덕쟁이같네ㅋㅋ 망각이 축복이길 바라는 일들은 접어두고 (그건 슬프거나 힘드니까..) 영원하길 바라는! 내가 사랑하는! 장면들을 적어볼게ㅎㅎ

- 사랑하는 사람의 편의점 앞 새벽녘 고백
- 밸트틀 매어주던 장면
- 우리 둘만의 은어
- 할머니의 미소와 잔소리, 밥
- 할아버지의 웃음소리
- 가족과 양념치킨먹으며 배트맨 영화보던것
- 엄마와 크라비해변에서의 시간
- 엄마와 호텔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책읽던시간
- 울면서 친구에게 찾아갔을때 "속상한일 있다고 나를 떠올려준게 너무 감동이다"라고 했을때 놀라움과 고마움

끝도없이 적을수 있지만 그건 내 일기장에 적을게ㅋㅋ나는 실은 참 감정기복이 심하고 가진것 보다 모자란거에 아쉬움이 많은 사람인데, 이렇게 편지를 쓰다보면 나의 것들에 집중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는 것 같아. 고마워ㅎㅎ
답장 잘 읽었어.
영원하지 않음과 망각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한가득 받게 될줄은 몰랐어. (재미있는 걸!) 나눠준 마음과 장면들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는데 왠지 너의 영원을 조금 나누어 가진 기분이 들었어. 고마워, 다음주에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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