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는 사회를 반영하죠.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한국 사회에 부정부패라는 뿌리 깊은 병폐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요. '무슨 이런 법이 다 있어?'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 이면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초등학생을 '의대반'에 보낼 수 없게 금지하는 법안이 최근 발의됐습니다. 일명 '초등의대반 방지법'인데요. 칼럼 한 편 읽고 대화 이어갈게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제히 학원 수업과 과외를 딱 끊는 것이다. 이렇게만 되면 수많은 난제가 풀린다. 부모는 돈을 아끼고, 아이들은 공부 부담을 덜 수 있다. 입시가 공정해지고, 계층 이동 사다리도 복원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걱정하는 강남 집값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사교육을 그만둔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사교육을 포기하지 못한다.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떠올리게 한다.

교육 주체들이 스스로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없을 땐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80년 전두환 정권의 '과외 전면 금지' 조치와 박근혜 정부에서 제정된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다.

'초등의대반 방지법'. 여러모로 특이한 법이라, 기존에 없던 법안을 새로 발의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법을 개정하는 발의안이더군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이란 것이 이미 현행법이고, 이를 고치자는 안입니다. 학교급을 뛰어넘는, 그러니까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단계를 넘나드는 선행학습을 확실히 제안하자는 것이 법안의 취지입니다.

'우스운 법안이 나왔다'는 것이 솔직한 첫인상이었습니다. 의대를 향한 이 사회의 열망은 정말로 큰 것이기에 법으로 누르는 게 불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각종 우회로가 생길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고요.

그런데 초등의대반을 다룬 기사와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오죽하면 이런 법을 생각했을까' 하는 이해심이 생겨났습니다. "대치 초등 의대관-중등고등수학 심화를 진심 잘 가르치는 학원" "중등과정 초6까지 3번 반복하자!"라는 학원 광고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 고등학교 2학년 수학 과정을 6개월 만에 가르친다는 '14배속 선행' 상품도 광고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대학생 때 서울 서초동에서 초등학교 5학년 학생 2명에게 고등학교 과정인 수학Ⅰ을 과외하던 기억이 있네요.

무리한 선행학습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들은 선행학습이 학업효과가 낮을 뿐 아니라 창의성·감정조절·정서발달 등 문제를 유발한다고 봅니다.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돌아볼 수 있는 '메타인지'도 지장을 받고요.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합니다. 자살을 생각하고 심지어 행동에 옮기는 초등학생 이야기를 기사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년 전 대치동 출신 미국 유학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는 대치동 시절 학업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공부를 잘하던 동생은 고3 때 자살했다며, 주위에서도 가끔 듣던 종류의 이야기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초등 의대반은 분명한 사회 병리입니다. 이걸 법으로 막는 것보다, 의대를 향한 전 사회적 욕망이 왜 생겼는지 관찰하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죠. 혹은 한국은행이 지난 8월 펴낸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제안한 서울대 '지역별 비례선발제'처럼 판을 과감하게 흔드는 대책을 도입하든가요.

'의대 광풍'을 두고 다양한 원인을 듭니다. 실패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라는 믿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회라서,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문화 때문에, 그저 돈이 최고라는 물질주의의 만연…. 모두 풀어가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들입니다.

언뜻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만의 특징적 병리를 해소하려면 필요한 장치라고 보고 만든 제도가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에 있는 '학원 심야교습 금지 조례'에 따르면 학원은 오후 10시 이후 심야교습을 할 수 없습니다. 서울·부산 지역 학부모와 학원 운영자들이 헌법소원을 냈는데 헌법재판소는 2009년과 2016년 모두 합헌 결정을 했어요. 학생들의 수면과 휴식을 확보하고,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초등의대반 방지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한계가 뚜렷하겠지만, 일단은 이런 방법에라도 손을 벌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