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승리면 또 어때요? 내 마음이 편한 게 중요하죠.
DECEMBER 12, 2025
특기를 묻는 질문을 마주하면, ‘김칫국 마시기’라고 주저 없이 말하고 싶을 만큼 시도 때도 없이 만사에 기대하는 편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선 김칫국을 넘어 김장할 정도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는데요. ‘이렇게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일을 벌이고, 잠을 설칩니다. 당연하게도 실제로 그렇게 된 적은 많지 않지만요. 그래도 언제나 하지 않은 것보다 하고 보는 것이 좋든 싫든 실제의 결과를 만들어 주었고, 그 과정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바뀌지도, 바꿀 마음도 없는 천성입니다.

단점이라면 그 기대감이 굴레가 되어 옭아맬 때입니다. 특히 기대감이 내가 아니라 상대를 향할 때는 더더욱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롯한 나 자신 하나임에도(심지어 스스로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무의미한 기대를 덧씌운다는 건 이미 그 자체로 불행의 씨앗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습니다. 의식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지점이 슬프지만요.

스스로를 더 갉아먹기 전에 고쳐 나가야겠다 싶어서, 의식적으로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기 캠페인을 혼자 펼치기로 했습니다.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그 순간에 퍼뜩 깨닫고 그건 욕심이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거죠. 내 실망은 상대의 잘못이 아니며, 타인은 내가 단 하나의 요소도 절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꾸역꾸역 받아들여 봅니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할 요소는 정작 상대는 알아채지도 못할 잘잘한 감정의 찌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라는 걸 상기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면서도 비상식적이고, 선택적이며 취약하기 때문에 세상만사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편치 않다면 우선은 나를 잘 다독여야 합니다. 그 모양새가 이기적이고 불합리해 보일지라도, 내 마음을 먼저 도닥여주고 나서야 뒤탈 없이 타인과 건강한 관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나를 잘 먹이는 거겠죠. 나를 잘 먹인다는 뜻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운동하는 시간, 명상하는 시간처럼 스스로에게 시간을 들여 투자하는 시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집히는 대로 때우는 끼니 말고, 제대로 식탁에 앉아서 누군가의 손으로 요리한 음식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식사하는 시간은 안도감을 줍니다.

최근에 마트에서 고사리가 저렴하게 나와서 구매했습니다. 채개장을 한 솥 끓여 먹고 나서도 고사리가 남았는데, 얼마 전 문득 스쳐봤던 고사리 파스타가 생각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고사리 파스타는 집에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고사리가 길쭉길쭉하니까 스파게티니 면을 꺼내서 쯔유를 더해 만들어 먹었습니다. 고사리를 다지지 않고 넣었더니 간간하게 씹는 맛이 있어 금방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어요. 

아무래도 고사리가 파스타 면보다는 질깃한 치감이 있어 꼭꼭 씹어 먹으며, 멍하니 최근의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타인에게 이런저런 불만이 생기는 순간을요. 내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만큼 상대는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내가 그렇게 주저하는 시간만큼 누군가는 또 저만큼 앞서 나가 있는 것 같아 이도 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 악순환에 빠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고사리를 씹을수록 느껴지는 감칠맛이 문득문득 유해한 망상에 빠지는 저를 식탁에 붙들어 주었어요.

내가 불만을 느끼는 지점 외에 인지하지 못한 정반대의 순간에 상대도 나를 분명 참아주었을 거예요. 이기적인 사람이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정신 승리면 또 어때요? 내 마음이 편한 게 중요하죠. 불쑥 고개를 드는 감정은 어쩌지 못하지만, 그걸 다스리는 마음가짐은 어떤 식으로든 조정할 수 있으니까요.

오로지 고사리 파스타를 위해서만 고사리를 사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분명 나물인데 어찌 보면 고기 식감 같기도 하고, 버섯과 비슷한 감칠맛이면서도 또 해산물의 풍미가 있다는 글을 보고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제철도 아닌데 이렇게 맛있게 먹은 걸 보면 내년 봄에 먹는 고사리 파스타는 얼마나 맛있을까요? 잠깐 그렇게 생각이 딴 길로 새다 보니 투덜거리는 마음이 조금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이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나 봐요.
고사리 파스타

재료 [1인분 기준]

(필수)
스파게티니 1인분
고사리 50g
마늘 3알
쯔유 3스푼
올리브오일
소금

(선택)
쪽파
화이트와인 비네거 

만드는 법

1. 스파게티니는 패키지에 적힌 시간보다 2분 정도 덜 삶아줍니다. (알덴테)
2. 삶은 고사리는 큼직큼직하게 썰어줍니다.
3. 올리브오일에 편으로 썬 마늘을 약불로 볶아 향을 내고, 고사리를 더해 살짝 볶습니다.
4. 삶아둔 스파게티니를 더하고 면수를 넣어 농도를 잡아가며 볶아줍니다. 볶을 때 쯔유를 넣어 고사리의 감칠맛에 간을 더합니다.

5. 소금간을 한 다음, 그릇에 담아 파채를 올려주면 완성! 화이트와인 비네거를 곁들여 먹습니다.

저는 삶은 고사리를 사용했지만, 건고사리를 사용한다면 전날 미리 불려둔 다음 20분간 삶고 불을 끈 후, 10분간 뜸을 들이는 식으로 삶아서 사용해 주세요. 건고사리는 불리면 양이 늘어나니 레시피의 절반 분량으로 양을 잡는 걸 추천합니다. (만 저는 고사리 다다익선 파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잔뜩 넣는 편이랍니다.)
님, 오늘의 파스타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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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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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AM
artist.rd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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