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계속 난희의 죽음을 상기하고 있었다. 삭막한 저택의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아니 가족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녀는 다를 줄 알았다. 그녀가 저택에서 도망쳐도, 그 부질없는 믿음으로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는 허황한 소원을 품었다. 그 결말을 알자 도윤은 또다시 나약하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고 호흡이 가빠진다.
난희의 환상이 매일 밤 자신에게 나타난다. 이것은 환상인가, 아니면 그저 잔상인가. 혹은 정말 난희인가, 자신 탓에 죽은 사람들의 원혼인가. 불면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피로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파리한 시체를 끌고 일을 나갔다. 신입이기에 주어지는 잡무들을 쳐내느라 바빴고 그녀를 추모할 시간 따윈 없었다. 저택은 여전히 분주하고, 또 조용하다. 순간 도윤은 직감했다. 자신은 이대로 평생을 저택에 갇혀 지내야 할 것이라는 또렷한 현실을.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모를 자신의 인생은 이대로 종착지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는 미래를 예견했다. 이제 그에게 집은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 일상의 반복이었다.
도윤이 눈을 뜬 것은 새벽이었다. 평소에도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오한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잠옷 위에 겉옷을 걸쳤음에도 몸에 한기가 돌아 패딩을 입고 누웠지만 그럼에도 몸이 계속 으슬으슬하게 떨렸다. 불면으로 인한 감기인가. 도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타이레놀을 3알 꺼내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피곤함에 절어 눈을 감고 잠을 불렀다. 그러나 찾아온 것은 애꿎은 난희였다. 난희가 죽음 이후 처음 그를 찾아왔을 때 도윤은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형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이 당연히 난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지켜주지 못했다고 고해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난희는 도윤의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매일 밤 죽은 모습 그대로 방 한구석에서 그를. 관찰했다. 먼저 다가오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래서 도윤도 말을 멈췄다. 반응없는 난희는 그저 귀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난희가 먼저 몸을 움직여 그에게로 온다. 눈을 감고 있어도 알 수 있었다. 그 기척은 난희일 수 밖에 없다. 난희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단 한. 가지 분명히 들리는 단어는 있었다. 시작-.
“시작했다.”
도윤이 귀를 막으려 했지만 가위에 눌린 듯 몸이 압박되어 도무지 움직일 수 없다. 난희가 계속 중얼거린다. 두려움에 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른다.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손을 달싹. 거리지만 소용이 없었다. 난희가 그의 위로 올라간다. 그를 밟고, 심지어는 깔고 앉는다. 중얼거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결국 도윤은 모든 행동을 포기하고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불확실한. 말의 연속에서 명징한 한마디가 뇌리에 꽂힌다.
“죽여야 해. 죽어야 해. 죽어. 죽어. 죽어.”
난희는 저주처럼 그에게 왔고 그가 앓게 시작했을 때, 예정된 것처럼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저택이 없어지기를, 저택의 주인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길 원했다. 자신을 가둬 놓은. 주인을 사실은 그 자리에서 계속 저주하고 있었다. 도윤은 이후 몇 날 며칠을 앓았다. 의사를 불러 진단을. 받았지만 그저 고열과 오한을 동반한 감기라는 이야기밖에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병의 정체를 알았다. 그것은 신병이었다.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다. 그녀의 숙원을 풀어주기 전까지. 없어지지 않을 속죄.
그래서 도윤은 그녀를 위한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열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몸이 나아졌다. 건강해진 몸으로 다시 일을 나갔다. 부장이 그를 불렀다.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이 의심된다며 부서를 변경하겠다는 통보였다. 도윤은 하룻밤 사이에 저택에서 좌천되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도윤은 당장 다음 날부터 키친으로 출근했다. 오랜만의 바깥에 나오니 상쾌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살 것이 생각나 잠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서점에 들러 성경을 하나 사고 다시 차를 탔다. 평범한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