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의미가 변한 일

안녕 결, 민경이야.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 며칠 동안 미세먼지가 심했는데, 먼지가 비에 다 씻겨 내려갔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 창이 없는 방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 비가 멎었는지 계속 내리는 중인지 모르겠지만, 높아진 습도로 구불거리는 앞머리와 평소만큼 건조하지 않은 실내 공기로 비가 내리는 날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어.


비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은 비 대신 눈이 오기도 했고, 오랫동안 재택근무를 해왔기에 우산을 쓰고 비를 맞을 일도 별로 없었거든. 그래서 이 비가 유난히 반가워.


*


요즘 준비하는 일이 생겼어. 

모든 계산은 끝났고, 매일 해야 하는, 주어진 일이 생겼지. 

그게 기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해. 


벅참은 중립적인 감각일까? 기쁨에 벅차오를 수도 있고, 힘들어 벅찰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무언가 한계를 넘었다는 의미기에, 고요한 수면을 떠오르게 하는 '중립'이라는 단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게 기쁨이든 힘듦이든) 자주 벅참을 느끼는 요즘은, 어느 때보다 식사와 요가에 의지하고 있어. 


점심을 꼭꼭 씹어 먹고, 저녁도 정해진 시간에 잘 차려 먹으려 하고 있어. 이번 주 저녁 단골 메뉴는 두부 미역국과 무채 볶음이었어. 새우와 멸치로 우려낸 육수에 잘린 미역을 양껏 넣고, 두부에 미묘한 늪빛이 배일 때까지 끓여 먹는 게 즐거웠어. 무는 굵기를 다채롭게 썰고, 뭉근해질 때까지 볶다가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매운 향을 입혀 먹었는데, 둘째 날에는 후주를 많이 넣는 바람에 너무 매워졌지만 담백한 맛이 입맛에 맞았어. 


그리고 자기 전에 25분 정도 요가 시간을 가지고 있어. 어떤 감정으로 매트 위에 앉아도, 요가를 하다 보면 고요하고 밋밋한 마음이 되어서 잠이 몰려오는 게 좋아. 


몸과 마음은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늘 발걸음을 함께 옮기지. 그래서 불안하거나 버거울 때 심호흡을 하고, 근육을 이완하는 훈련을 하면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된다고 해. 그 둘은 두 다리와 같아서, 반대 방향으로 갈 수는 없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요가가 도움이 많이 돼.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독서의 의미야. 원래 내게 독서는 '일'과 '취미' 중 '일'에 더 가까운 것이었어. 정보를 얻고, 읽기를 연습하고, 감정과 사고를 배우는. 하지만 지금 나에게 독서는 '놀이'에 가까운 행위가 된 것 같아. 고등학교 시절, 자습실에서 공부 말고 할 수 있는 게 책 읽기밖에 없었던 때(그마저도 소설책을 읽다 걸리면 혼나기도 했지만) 책을 아지트 삼았던 것처럼. 지금도 준비해야 하는 일 사이 틈틈이, 어떤 날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며 아주 흠뻑 빠져 책을 읽곤 해. 눈을 반짝이며, 속으로 히히덕거리면서. 


공부하듯 읽을 때보다 독서 경험의 물리적인 양은 줄어들었지만, 질은 더 좋아진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웃음)


이것 말고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생기고 난 후 이전과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 것들이 더 있는데, 우다다 쏟아내고 싶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편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 같아서 오늘은 줄이려고 해.


*


결, 너에게도 최근 그 의미가 바뀐 일이 있니? 행위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의미가, 경험이 변한 것 말이야.


*


주말 동안에는 비가 오고,

네가 편지를 받아볼 월요일에는 기온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서도 늘 건강하길 바랄게.



2023.01.13. 민경

추신. 요즘 사진이 뜸했던 것 같아서 한장 골라보았어. 퇴근길에 찍은 노을이야.   
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보내준 답장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줘.
모두들 너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42-2. 지난주에 받은 답장을 나눌게, 변하고 싶은 모습이 있는지 물었어.
"자기가 서열 일 위인 줄 아는 야옹이 마냥 좀 건방진가?"

몇 날 몇 일을 미세 먼지 때문에 방 구석에 쳐 박혀 있다가 어제 오늘 드디어 공기 질 맑음이 뜨자 마음이 급하다.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산행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가지 못하고 오늘 드디어 비 오는 산책로를 걸어가고 있을 때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나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사실 어제는 여럿이 어울리는 자리에서 맛 나는 음식을 먹고 웃으며 떠들었지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냥 불편하였다. 그래서 오늘 혼자서 호젓이 즐기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홀가분하다. 혹시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럿이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받는 유형이야. 그렇지만 변하고 싶다기보다는 나이가 들수록 사교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니 억지로라도 어울리려고 해 보지만 매번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어.

민경아! 너는 혹시 '인공지능이 말해주는 내 관상'이라는 놀이? 해 보았니? 누군가 보내온 이 관상가에게 내 사진을 보내보니 희안하게도 내가 아는 나와 닮은 풀이를 해 주더라. 재미가 나서 몇 번을 보내보았는데 풀이가 매번 달랐지만 핵심을 관통하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았어. 사람마다 고유한 틀이 있나 봐. 틀이라는 것은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변하고 싶다고 한들 쉽게 변할 수 없는 것 같아. 내 고유의 틀을 바꾸는 작업이라 어마어마한 모티브가 없는 한 어렵지 않을까?

다만, 틀을 그대로 유지하되 모서리를 다듬어가는 노력은 하여야 할 것 같아. 혹은 발은 땅을 딪고 있되 가능한 한 범위 내에서 매일 매일 정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날카로운 모서리는 상대에게 다가가 상처를 주기 십상이고 공자의 말씀 마냥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섰으며, 마흔 살에 미혹 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 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 도에 넘지 않았다.” 이처럼 되고파.

"I weep for Narcissus, but I never noticed that Narcissus was beautiful. I weep because, each time he knelt beside my banks, I could see, in the depths of his eyes, my own beauty reflected."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한참을 앞서 가며 뒤통수 때리는 lake에게서 내가 심한 동질감을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나도 사실 자뻑하는 기질이 있는 것 같아. lake처럼 드러내지는 않되, 그러나 ‘내가 제일 잘났다’ 라는 고고함을,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내가 지금 너의 의견을 받아들이지만’‘내 판단이 옳다’‘다만 나의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을 뿐이다.’ 자기가 서열 일 위인 줄 아는 야옹이 마냥 좀 건방진가? 하지만, 실질적인 척도가 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고 싶은 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변화야.

설날이 다가오고 있어. 저벅 저벅 빠르게! 서로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의 재회가 눈 앞에 선하다.
*
호수 입장에서 바라본 나르키소스 이야기가 재미있어 찾아보니 연금술사에 나오는 글이구나, 나르키소스가 호수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듯 호수도 나르키소스의 눈동자에 떠오른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거라 생각해본다면. 서로 마주하고 있지만 각자 서로에 비친 자신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외로운 풍경으로 다가왔어. 자신에게 몰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 아닌 존재에게 마음을 쏟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고, 사회적 동물로서 그렇게 하였을 때 호르몬적인 보상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아. 타고난 틀은 바꿀 수 없지만 보완해나갈 수 있다는 말에 나도 공감해:) 다음 주는 내내 날씨가 춥다고 해, 영하의 기온과 미세먼지 좋음은 단짝이니, 아마도 자주 산책길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싶네! 반가운 시간 가득한 명절 보내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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