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 정도까지 올라가 봤으면 이제 맘 놓고 쉬어도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부사장 타이틀까지 달았던 사람이 굳이 체면 구겨가며 인턴을 할 필요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죠. 이것은 '일'의 개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오창규 님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해 일을 했다면, 결코 회사 탕비실에 과자를 채워놓는 업무는 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 일은, 자신이 계속해서 어딘가에 쓸모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을 통해 자존감을 얻는 것 아니었을까요? 저는 분명히 오창규 님이 마케팅 트렌드의 중심에서, 젊은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배움을 얻고, 본인이 쌓아온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창규 님의 이야기를 보며, 부끄러웠던 제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대기업의 타이틀을 달고 3년 반 정도 일하다가 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을 때, 불만이 참 많았어요. 대기업에선 호텔 화장실 부럽지 않게 화장실이 깔끔하고 크기가 컸는데, 이직한 회사는 직원 수가 거의 100명 정도였는데 여자 화장실 칸수가 2개인 데다가 세면대도 하나뿐이라서 점심시간마다 화장실 대란이 일어났어요. 엘리베이터도 대기업에 다닐 때에는 6개나 되고 속도도 빨랐는데, 이직한 회사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낡고 느려서 출근시간마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죠.
그 스타트업에서 퇴사하고 꽤 오랜 경력 휴식기를 가질 때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대기업의 화장실이든 스타트업의 화장실이든 모두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회사의 타이틀과 회사에서 제공해 주던 복지가 곧 '나'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회사의 네임밸류나 직함이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데 있어 분명 좋은 이득이 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 전체의 보증수표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악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부사장에서 인턴으로. 영화 <인턴>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지만, 저는 앞으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일수록 더 큰 편차를 경험하게 되겠죠. 인생을 '산'에 비유하여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인생을 '산'보다는 '마라톤'에 비유하면 어떨까 싶어요. 골인 지점에서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코스를 달려보는 것. 죽기 전에 한 코스만 달리는 것보다는 다른 코스도 달려보며 여러 풍경을 즐긴다면 보다 다채로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오창석 님의 제2의 마라톤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