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시.사 레터 24회 (2021.10.06.)
안녕하세요. 글쓰는 이제니입니다.
시를 추천해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이 가닿을 고유한 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 편의 시는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것일 수 없는, 개별적인 사건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어떤 시를 발견하게 된다면, 혹은 어떤 이가 어떤 시를 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현재의 너와 나를 마음 깊이 돌보고 돌아보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시는 언제나 바로 곁에 있었지만 어떤 특수한 상황에 처한 뒤에야 비로소 불현듯 뒤늦게 찾아드는 무엇이라 여겨집니다.
오늘의 나의 삶이 어둡고 무겁다면 내가 읽는 오늘의 시 한 편이 저 하늘의 찬란한 햇살을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 행간에는 어떤 그늘이, 그러니까 나의 그늘이, 숨어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시와 조우하게 되고 그 시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일순간에 동시에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기쁨보다는 아픔에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시를 만났다면, 당신이 당신의 어둠을 대면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당신의 영혼은 조금이나마 성장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존재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될 때 우리에게로 찾아오는 그것. 아픈 말인 동시에 무한히 날아오르는 말인 무엇. 한 편의 시가, 지금 나의 언어로는 말할 수 없는 어떤 말을, 없는 나의 입을 대신해 그 행간의 침묵으로 말해줄 때. 당신이 그 가득한 공백과 여백을 읽고 또 읽고, 찾아내고 또 찾아내게 될 때. 당신은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언어가 있었음을, 그리하여 말하지 못한 그 말을 어느 깊은 밤 홀로 깨어나 백지 위로 옮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시를 만나게 될 때 이전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믿음, 조금은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것을 저는 제 읽기-쓰기를 통해 경험하고 있습니다. 빛보다 빠른 언어로 뭉쳐진 그것으로 당신의 시선이 새로워지기를. 당신의 마음자리가 드넓게 자유롭기를. 그렇게 삶이라는 이 여행이 그 언어들의 묵묵한 행진으로 인해 조금은 더 즐겁고 굳건해졌으면 합니다. 이제니 시인이 사랑한 첫번째 시💌 입김(박서영,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하얗게 귀가 얼어서
기다림은 늘 기다리는 일밖에 할 줄 모르고
나는 기다림 곁에서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봄이어서
목련은 하얀 총구를 겨누지만
내게는 그것도 따스한 화구(火口)여서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살고 싶었다
문득
아, 귀는 먼 곳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구나
녹아내린 귀는 녹아버려서 울음이 되었다
꽃 피는 소리로 위로를 받았다가
꽃숭어리 떨어지는 고통이 귓가에 맺힌다
불타는 귀를 잘라
죄책감을 넣어둔 상자의 손잡이로 만들어야지
열기에 휩싸인 마음은 귀로 열고 귀로 닫아야 해
소리를 내면 안 되지
울음은 사랑을 분해해버리니까
자꾸 울어서 모두 떠나는 거니까
여자야, 홀수와 짝수처럼
눈물을 셀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하렴,
목련나무 곁 돌멩이 밑에
달팽이와 지렁이와 뱀이 살고 있다
그들은 소리 죽여 우는 걸 알아
돌 위에 떨어져 있는 목련 꽃숭어리 셋
핏줄이 다 튀어나온 돌멩이의 붉은 귀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나비 한 마리
입김이 만든 무늬를 손가락을 문지르면
잘게 조각난 선물들이 쏟아지지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산산조각이
기억이라는 걸 알아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는 박서영 시인의 유고 시집입니다. 저는 어떤 귀한 인연으로 박서영 시인을 생전에 몇 번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단둘만 만났던 자리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랬기에 오롯이 시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각자의 시집이 나올 때마다 우편으로 서로의 시집을 주고받으며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나누거나 드문드문 통화를 나누었던 것이 전부였는데 시인의 죽음을 뒤늦게 듣게 되었을 때 저는 저도 모를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짧게 살다간 아름다운 삶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시인으로서의 그 치열함을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비통했다는 것이 더욱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시인을 볼 수는 없지만 현존하는 육체와는 무관하게 시인은 자신이 쓴 시로 하나의 깊고 높은 정신으로 여전히 내내 지금 이곳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도저한 슬픔과 아픔을, 깊은 밤 자주 홀로 소리 없이 흘렸을 눈물을, 말갛게 씻긴 얼굴과 깊어진 두 눈으로 새로이 아침을 열었을 시인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 마음으로 시인이 바라보았던 시선 그대로 제 곁의 사물과 풍경을 바라봅니다. “입김이 만든 무늬” 속에서 조각난 선물들을 바라보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산산조각이/ 기억이라는 걸 알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넓고 깊은 슬픔을 건너온 것일까요.
「삼월」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라고 쓰기도 했지만 그는 이 지상에서 짧은 생을 살다 갔음에도 이미 몇 겹의 삶을 살았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사람은 죽음 너머를 보는 눈으로 오늘을 바라보는 사람일 테니까요.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오늘이 그저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단차원의 시공간은 아닐 테니까요.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치열한 눈빛을 마음 아프게 떠올리는 밤. 담담히 써내려간 그 담담한 슬픔 덕분에 조금은 더 깊은 슬픔을 알게 되었다고, 전할 수 없는 어떤 말들을 뒤늦게 전하여봅니다. 💘 막간 우.시.사 소식: 김선호가 신민아를 생각하며 읽은 그 시집! ![]()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보시나요? 요즘 잠든 연애세포 다 깨운다는 드라마로 사랑받고 있죠. 드라마 한 장면에서 주인공 홍두식(김선호)이 시집을 읽다가 윤혜진(신민아)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서점에는 이 시집 뭐냐고 문의가 쇄도했다고 합니다. 이 시집은 장석주 시인의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입니다:D 드라마 속 그 장면을 떠올려보며 함께 시를 읽어봐요! (시집 보러 가기) 첫 키스는 진흙과 햇빛과 장미의 맛, 키스가 우연과 무중력의 일임을 알았더라면 인생에서 모호함과 회의가 얕아졌겠지요. 어떤 키스는 인생을 쓰디쓰게 하고, 어떤 키스는 참혹한 기쁨을 줍니다. _「키스」 부분이미지 출처: tvN 갯마을 차차차 공식 홈페이지, tvN 유튜브 채널 이제니 시인이 사랑한 두번째 시💌 나의 형식(권민경,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나는 나로서
어제
어제의 사람
어릴 적 골목에서 만난 개
질이 튀어나온 채 복판에 앉아 있었어요 무서워서 지나가지 못했죠
개는 아팠던 것뿐인데 난 뭐가 무서웠던 걸까요 저는 만날 튀어나오는 주제에
네모 다음에 세모
다음은 평행 우주
애써 꾸민 형식보다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좋아요
읽을 수 있는 말이란 결국 내 수준의 것
유치 무모 비겁한 것들
예수 정도는 서른 번 모른다 할 수 있어요
폼을 재고 있는 사람의 폼
약통이 열리고
크기가 다른 알약이 쏟아져나오면
너머를 보여주세요
이를테면
내장이라든가
말 못하는 동물이 보내던 눈빛
아픔을 호소하거나 두려워하는 감정
감정 너머에 생
살아 있다는 감각
우리의 내용은 같을지 모르지만
목뒤에 새겨진 글자가 다르고
이번 형식을 뭐라고 부를까요
질탈
절단
무식함과 유치함
동물인 내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눈빛
사랑도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작렬하는 한복판에 앉아 있겠어요
무서워 말고 지나가세요
방금 전의 나는
시간을 후회할 줄 알며
한낮의 일이니까요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걸까요. 아니 그는 어떤 시간을 건너오고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쓰는 사람이라면 감내하고 감수해야 하는 그런 고통과 불행을 시인의 자리로 불러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시인은 언제나 이미 그 어둠을 건너온 뒤였다는 것을 그들의 시를 읽으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권민경 시인의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는 몸과 마음을 허물어지게 했던 어떤 고통의 기록입니다. 때때로 어떤 몸의 고통은, 그로부터 오는 영혼의 아픔은, 생동하는 한 생명을 보잘것없는 사물의 자리로 끌어내립니다. 사람이었던 자리에서 사람 아닌 자리로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사람은 어떤 눈과 어떤 목소리를 덧입게 되는 것일까요.
권민경 시인은 어릴 적 골목에서 만난 개를 훗날의 자신과 다시 만나게 합니다. “개는 아팠던 것뿐인데 난 뭐가 무서웠던 걸까요 저는 만날 튀어나오는 주제에”라고 말하면서 “말 못하는 동물이 보내던 눈빛”과 “아픔을 호소하거나 두려워하는 감정”을 이곳으로 다시 불러들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감정 너머의 생” “살아 있다는 감각”에 대해, 안온한 나날에서라면 알 수 없었을 그 너머의 감정을 오늘 이 현재의 순간에서 선명히 감각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도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작렬하는 한복판에 앉아 있겠어요”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문득 얼마나 강인한 질감으로 다시 새겨지는지요.
인간은 그렇게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 이르러서야 나의 자리를 넘어 너의 자리로, 생 이전과 이후의 어두운 빛을 발견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의도도 과장도 없이 그저 그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다른 누군가의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얼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살아났고 살아냈고 다시 살아나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 문장의 걸음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결엔가 삶 쪽으로 바짝 붙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다음주 시믈리에를 소개합니다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김마리 북디자이너 다음주에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분은 김마리 북디자이너입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하는 아름다운 책을 직접 디자인하는 김마리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시 두 편, 기대해주세요!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