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레터 77호
2024/6/18
직장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시빌리티(Civility)
송한수
직장내 정신건강에서 중요한 '괴롭힘'

직장에서의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괴롭힘'입니다. 업무상질병으로 승인된 정신질병의 원인을 살펴보면 '괴롭힘'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2019년 근로기준법에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업주의 조치가 의무화되면서, 직장내 괴롭힘의 판단기준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직장내 괴롭힘'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우선 2가지 사례가 살펴보겠습니다. 

<사례1> 62세인 스미스씨는 한 서비스 회사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상사인 존은 정기적으로 그를 '늙은이'라고 부릅니다. 스미스 씨가 60세 생일이 지난 후, 존은 그에게 언제 은퇴할 계획인지 반복적으로 물었고, 빨리 젊은 피를 데려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독감예방접종을 권고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존은 "늙은이들이 독감에 걸리더라도 나는 별로 마음 아프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미스는 그 얘기가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냐고 따져 묻자, 존은 "그렇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례2> 20세 영희씨는 한 콜센터에 입사하였습니다.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들은 후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실적이 부족하다며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상사는 목표실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고 화장실 가는 것도 제한하였고, 초과수당없이 추과근무를 강요하고, 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물리적 폭행은 하지 않았으나 때리려는 시늉을 하면서 고함을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Harassment(괴롭힘)란?

괴롭힘에 상응하는 영어로 HarassmentBullying이 있습니다.  이 두 용어는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괴롭힘 분야의 연구자들은 이 두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먼저, Harassment의 가장 전형적인 정의는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the U.S.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EEOC)가 2024년 4월에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새로운 시행지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성적 지향, 성 정체성, 임신 포함), 출신 국가, 연령(40세부터 시작), 장애 또는 유전 정보(가족 병력 포함) 때문에 개인에게 행해지는 구체적인 괴롭힘의 행동으로 정의합니다. Harrassment는 다음의 조건에서 불법이 됩니다.

1) 공격적인 행위를 견디는 것이 계속 고용의 조건이 되는 경우, 또는
2) 행위가 합리적인 사람이 위협적이거나 적대적이거나 모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조성할 만큼 심각하거나 만연한 경우"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사례 1>연령에 따른 구체적인 괴롭힘의 형태로 harassment에 해당합니다.


Bullying(괴롭힘)이란?

반면, bullying은 harassment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generic(일반적) harassment나 moral(정서적인) harassment 라는 표현은 Bullying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Bullying을 처벌한다면 harassment보다 처벌의 범위를 확장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Harassment가 아닌 bullying의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직장갑질(Gapjil)이나 간호사들의 태움을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례2>는 피부색, 인종, 종교, 성별, 나이, 성적 지향에 근거한 괴롭힘은 아니지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근무환경을 현저히 악화시켰기 때문에 Bullying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미국고용평등기회위원회의 직장내 금지법에서는 <사례2>를 규제할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미국고용평등기회위원회는 harassment를 금지하는 법이기 때문에 <사례2>의 경우는 규제 범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미국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사회이고,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로 인해  ‘다름’으로 인한 차별에 더 관심을 가진 결과로 보입니다.


Bullying 금지법을 도입한 국가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Harassment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Bullying을 금지하는 국가는 20여개국 뿐입니다. 그 중 처벌조항을 포함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가진 국가는 우리나라, 프랑스, 브라질, 호주 등 8개국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시기에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되었습니다. 직장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갑질(한국)과 파워하라(일본, パワ-ハラ, power harassment)가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사용된 '파워하라'라는 용어는 harassment의 정의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직위를 이용한 괴롭힘의 심각성이 harassment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한 용어라고 생각됩니다. 


직장내 괴롭힘(Bullying)의 모호성

Harassment를 판단하는 것은 '차이'에 기반한 차별이라는 점에서 정의가 명료한 편이고,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개념이 잘 정립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처벌을 통해 가해자들에게 그러한 행위를 못하게 하는 시그널를 명확하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Bullying은 여러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실제 상황에서 Bullying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해자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모호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직장내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도 많고,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상황(허위신고)에 대한 우려도 많습니다. 


직장내 괴롭힘(bullyng)의 판단기준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상 '직장내 괴롭힘'은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이 개념에는 '지위를 이용한 권력의 남용', '의도성'라는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업무상 적정범위'라는 모호한 기준을 인정받아야 하고, 그로 인해 초래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증명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서는 우위의 정의를 '직위·직급상 상위' 인 경우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원수 우위, 연령·학벌, 근속연수, 직장 내 영향력 등 상대방이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로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위가 없더라도 동료 간의 괴롭힘(horizontal bullying), 상사에 대한 괴롭힘(upward bullying)도 가능합니다. 가해자가 속해 있었던 문화적 맥락에서는 괴롭힘으로 인식되지 않으나,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괴롭힘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다른나라에서는 어떻게 판단할까?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대부분의 국가에서 객관적인 요소로는 지속성과 반복성을, 주관적인 요소로는 피해자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상식적인 범위, 의도성이라는 기준은 포함하는 국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힘의 불균형을 기준에 반영하는 국가는 드물었습니다.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이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번째는 방법론적인 대안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의 주관성을 보완하기 위해 피해자와 유사한 조건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조사(동료조사)를 참고하여 판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최근 법원에서의 판결도 이러한 준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두번째 대안으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판단과 상담을 위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조사자가 다양한 괴롭힘의 유형을 파악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를 잘 이해하도록 훈련되어 있다면, 더 체계적인 조사와 더 공정한 판단이 가능할 것입니다. (노르웨이와 벨기에의 사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는 없을까?

심혈관계질환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 고혈압을 관리하는 것처럼,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사후처벌중심의 대책보다 예방중심의 대책을 채택한 국가들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더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예방중심의 대책은 직장에서 교육모니터링(정기적인 무기명 설문조사)을 활성화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이 시빌리티(civility)입니다. 시빌리티는 예의바름으로 번역되곤 하는데, 단순히 예절이나 에티켓을 지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시빌리티는 시민들이 서로의 인격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문명화된 시민성을 나타냅니다.  괴롭힘이라는 것은 상대방은 존중해야할 독립적인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므로, 예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직장내 괴롭힘 예방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사례로 CREW(Civility, Respect, and Engagement in the Workplace)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보훈병원에서 시작된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입니다. 직장내에서 시빌리티와 존중을 증진시킴으로써 일에 대한 몰입을 높이고, 괴롭힘과 같은 사건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 긍정적인 효과가 확인된 방법이기도 합니다.



내 직장의 시빌리티는?

마지막으로 내가 근무하는 곳의 시빌리티는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한 설문도구를 소개해드립니다. 8개 중 몇 개가 해당되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설문지는 CREW 프로그램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Veterans Health Administration Civility Scale

Q1 (Respect):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며 대한다.

Q2 (Cooperation):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협력과 팀워크 정신이 있다.

Q3 (Conflict Resolution):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분쟁이나 갈등이 공정하게 해결된다.

Q4 (Coworker Personal Interest):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

Q5 (Coworker Reliability):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내가 도움이 필요할 의지할 있다.

Q6 (Antidiscrimination): 우리 회사(조직)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Q7 (Value Differences):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개인간의 차이를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Q8 (Supervisor Diversity Acceptance): 내가 속한 부서의 관리자/감독자/팀장은 다른 배경을 가진 동료들과 협력한다



글쓴이: 송한수 (오이레터 편집인)

*편집인의 실수로 지난번 호가 77호로 잘못 기입되어, 76호로 바로잡습니다.
오늘 송한수 편집인의 글은 어떠셨나요?
오이레터 편집팀  oel@ksoe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