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 이벤트📑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 


추석 연휴에 혼자 영화를 봤다. 선택은 〈성적표의 김민영〉. 영화 제목에 떡하니 김민영이 적혀 있으니 당연히 김민영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 포커스는 민영의 친구, 정희에게 맞춰져 있었다. 민영(윤아정)과 정희(김주아)는 청주에서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단짝친구. 수능을 본 후 민영은 대구로 대학을 가고 정희는 대학 진학 대신 테니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둘은 서울에서 만나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친했지만 왠지 두 사람의 하루는 어색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챙기기는커녕 무심하게 대학 성적표에만 몰두해 있는 민영, 그런 민영을 보며 서운한 정희. 둘을 보면서 내 학창 시절이 오버랩됐다. 10대 시절의 친구들이 어떻게 서서히 멀어졌는지, 아마 나는 민영에 가까웠을 것이다. 현실에서도 머릿속에서도 꿈과 계획이 많아 분주한 친구였으니까. 정희는 그보다 10대 시절의 우정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어찌 보면 현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민영은 대학에 가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보이는 정희를 걱정했다. 하지만 정희는 민영의 생각만큼 대책없거나 꿈이 없지 않았다. 정희에게는 정희만의 루틴과 계획, 책임감이 있었다. 다만 ‘평균’이라 말하는 기대치와 모습에서 벗어나 있을 뿐.
 
정희는 떠나면서 〈김민영의 성적표〉를 남겨놓는다. 민영의 경제력, 인간관계, 패션 센스 등에 대해 점수를 매긴 후 적은 마지막 항목은 ‘한국인의 삶’이었다. 정희가 본 민영은 한국인의 삶에서 ‘F’ 였다. 이전에 둘의 대화에서 한국인의 삶이 싫다는 이야기가 몇 차례 등장했다. 한국인의 삶을 싫어하고 그런 한국인을 싫어하는 민영이지만 정희가 보기에 민영은 결국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정희의 말을 빌려, 한국인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성과를 향해 늘 바쁘고, 지금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즐기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한 켠에 비교와 상승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고. 아, 순간 관객석에서 동일한 전율이 느껴졌다. 나 또한 절대 민영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 민영에게서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러고 보니 민영의 냉장고엔 제대로 된 음식 하나 없었고, 화장대 상자는 도착한 지 1주일이 넘었지만 뜯지도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내 방에도 뜯지 않은 택배 상자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쌓여 있었다. 분주함과 불안함에 현실을 돌보지 않고 방치한 것이다.

@Unsplash


또 다른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엊그제 엄마와 한판 싸운 순간. 연휴인지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에 들렀다가 비몽사몽 다시 방에 들어가는 내게 엄마가 건넨 한 마디가 발단이었다. “전을 부치는데 와서 보고 가지도 않니?” 순간 입이 삐죽 나왔다. ‘언제 전을 먹고 싶댔나, 그냥 편하게 사 오지’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잘못했다. 엄마가 바란 건 작은 관심이었다. 와서 전 하나 집어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더라도 한 마디라도 건넸다면 서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기대를 부담스럽게 느꼈고. 내 입장에서도 물론 이유가 있었다. 평소에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으니 이때만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내일 같이 가려던 식당도 예약해 두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엄마에게 응수했다. 나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아, 그 말을 다시 주워담고 싶다. 엄마와 다투고 난 후 그날 특히나 울적했던 이유를 이 순간 명확히 알게 됐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나름의 할 일들을 했으니 엄마에게도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잘 살아가는 것과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혼동해선 안 된다. 나에게 집중하느라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줄도 모르는, 그날 임현주의 성적표는 F였다.
 
내가 느낀 복잡다단한 감정은 소위 ‘착한 딸 콤플렉스’와는 다르다. 딸이라서 엄마에게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몰두하느라 상대의 마음과 시간을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굳이 장을 봐서 전을 해먹는 마음은 민영을 위한 놀이들을 바리바리 싸 온 정희의 마음과 같았고, 언제 일어나서 전을 먹을 건지 기다리는 마음은 민영이 언제 노트북에서 얼굴을 떼고 나와 시간을 보낼까 기다리는 정희의 입장이었다. 영화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지금 앞에 있는 것을 놓쳐버리는 한국인의 삶을. 영화관을 나오며 어느새 다시 비틀어진 삶의 방향을 조정하자고 다짐했다. 정희의 삶을 떠올려보면서. 누군가의 눈에는 목적 없어 보이지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속도대로 살아가는 삶, 상상력이 있는 삶, 소중한 사람을 실망시키더라도 조용히 성적표를 그리며 다시 한번 손을 내밀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삶, 그런 삶을.




Writer 임현주
듣고, 쓰고, 읽고, 말하는 MBC 아나운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신중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부지런한 나날을 담은 책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를 펴냈다. 

- <엘르> 2022년, 10월호 발췌




모헙이다! '글리치'의 전여빈X나나 #72
이런 ‘똘기’ 가득한 여성들의 신나는 모험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글리치〉

외계 생명체, UFO, 로스웰 사건, 미스터리 서클… 이런 것에 현혹된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넷플릭스 〈글리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겁니다. 외계인이 보이는 여자 ‘홍지효’는 어느 날 갑자기 남자친구가 사라지자 ‘그들’에 의해 납치됐다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 UFO 커뮤니티에 접근했다가 그곳에서 어린 시절 헤어졌던 친구 ‘허보라’를 만나고, 힘을 합친 두 사람은 미스터리의 실체에 다가서게 됩니다.    
 
〈연애의 온도〉의 노덕 감독,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가 의기투합해 탄생한 〈글리치〉는     과연 지금껏 한국에서 본 적 없는 개성을 뽐내는 작품입니다. 외계인이란 비현실적인 소재가 친숙한 대한민국의 풍경, 일상적인 이야기에 녹아 들며 벌어지는 사건은 예상외로 귀엽게, 천천히 흘러가다가(톡톡 튀는 캐릭터들!) 중반부를 지나며 예측을 훌쩍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점차 가속도를 내며 뻗어 나가는 이야기는 ‘끝’에 다가갈수록 이것이 ‘외계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두 여성의 성장기이며, ‘믿음’에 대한 이야기란 걸 드러냅니다.
 
장르적 재미를 기대하고 열어본 〈글리치〉는 생각보다 ‘버디 무비’의 매력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배우 전여빈과 나나가 연기한 지효와 보라,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는 〈글리치〉의 가장 중요한 동력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글리치〉


〈글리치〉의 지효는 왜 전여빈이 ‘도화지 같은 배우’라고 불리는지 납득하게 만듭니다. 삐죽삐죽 끝이 뻗친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모습은 과연 〈빈센조〉의 시크한 홍차영을 연기했던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 극 초반에 지효는 꿈도 목표도 없는, 무기력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럭저럭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는 있으나 ‘이게 정말 나인가?’하는 의문을 품고 있는 30대. 〈글리치〉는 그런 지효가 외면하고 미뤄뒀던 질문을 직면하기로 마음먹고 앞장서서 담을 넘는 여정을 그립니다. 방황과 혼돈, 공포의 순간을 통과해 눈물범벅으로 미소 짓기까지, 온몸과 마음으로 지효의 모험을 수행한 전여빈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어요.
 
노덕 감독이 “이때다 싶어 캐스팅했다”는 보라 역의 나나 또한 매력이 넘칩니다. 2화에서 히피펌을 하고 두 팔의 타투를 드러낸 채 담배를 물고 있는 보라가 등장하는 순간, ‘진짜 이야기가 시작됐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2016년 첫 드라마 데뷔작 〈굿와이프〉에서 호평받으며 미녀 아이돌에서 배우로 거듭난 나나. 외모부터 말투까지 ‘똘기’가 느껴지는 캐릭터를 제 옷처럼 입고 누비는 그를 보면서 벌써부터 ‘다음’을 기대하게 됩니다.        
 
겉모습만 봐도 ‘극과 극’인 두 사람, 이렇게 별나고 흥미로운 여성 콤비를 본 게 얼마 만인지! 지효과 보라가 나란히 선 모습만으로도 이미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 아역 배우들이 등장하는 ‘과거 신’은 모든 장면이 좋았어요(어쩜 그렇게 둘을 쏙 닮은 소녀들을 찾아낸 거죠?). 서로 다른 두 소녀가 친구가 되고, 일련의 사건으로 헤어졌다가 재회하여 함께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는 이야기. 자신들이 찾는 답을 향해 ‘끝까지’ 손잡고 달려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내 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스쳤지요. “어쩌면 보라는 지효가 만들어낸 상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노덕 감독의 말처럼,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 내리지 않고 열어 둔 점도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글리치〉


어린 시절 내가 봤던 영화와 소설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미스터리를 쫓아 달리는 캐릭터들은 늘 남자이고 소년이었어요. 〈글리치〉의 지효와 보라를 보면서, 비로소 내가 기다렸던 이야기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엉뚱하고 어리석고 이상하고 어딘가 ‘미친 것 같은’ 여자아이들의 모험담.
 
극의 결말에서 지효는 ‘철갑상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요(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어요). 모험을 떠난 여자아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글리치〉를 통해 “더 잘 살아나갈 힘을 얻었다”는 전여빈 배우의 말처럼, 지효와 보라의 모험담이 우리에게 더 멀리 갈 수 있는 용기를 전해주길 바랍니다.




Writer 김아름
전 <엘르> 피처&라이프스타일 디렉터 김아름.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으며 책과 영화, 각종 컬처 콘텐츠를 탐닉합니다.
 - <엘르> 2022년, 8월 웹기사 발췌




📑성적표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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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애칭 짓기 이벤트에 제가 제출했던 애칭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번 레터에서 이벤트를 한다는 걸 보고는 바로 떠올라서 제출을 해봤던 거였는데, 사실 보내놓고도 '유치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괜히 보냈나..' 싶었었거든요.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제가 이런 걸 감히.." 하며 겸손의 제스처를 취했겠지만, 지금은 이 행운을 넙죽 받아서 깨방정 춤을 출 수 있답니다!

*작은아씨들 재밌게 보고 있는데 다뤄주어서 흥미로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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