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5% 인상,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폴라리스 Vol.56

폴라리스 항해도

최저임금 인상은 지난 몇 년간 뉴스에 나왔다 하면 대서특필되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아마 재계와 노동계, 그리고 영세자영업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리는 영역이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고 계시나요? 그리고 그 방법은 충분히 합리적일까요? 이는 첫 기사 '최저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나'에서 담고 있는 물음입니다.

최저임금이 논쟁적인 또 다른 이유는 최저임금이 물가 상승이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학계에서도 논쟁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즉, 팩트 체크의 영역이 아닌 연구의 영역인 셈이죠. '물가와 최저임금은 어떤 관계일까'와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에선 최저임금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주로 담았습니다.

각론에 빠지다보면, 애초에 최저임금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 헷갈리기 마련입니다. '누구를 위한 최저임금인가?'에선 최저임금의 의의를 짚었습니다. 또, 해외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을 소개하며 최저임금 인상이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새 방법을 상상해보고자 했습니다.

🎬오프닝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법 제1조(목적)

ⓒ최저임금위원회

1. 최저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나?

‘최저임금위원회’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어쩌면 ‘파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해 6월이면 노동자 대표 9명, 사용자 대표 9명, 정부(공익위원) 대표 9명, 총 27명이 모여 그 다음 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데 이 협상은 늘 파행을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파행은 이어졌지만 법정 심의 기한은 다행히 지켜졌습니다. 소개해드릴 기사에서는 이번 최저임금 결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미를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우선, 새 정부들어 첫 최저임금 결정이었습니다. 둘째, 2014년 이후 8년 만에 법정 심의 기한을 지켰습니다. (…) 이번 결정에서 앞으로 최저임금을 어떻게 결정할지, 결정 기준의 큰 틀이 제시됐다는 것입니다.

-김지숙, <KBS뉴스>, 매해 정하는 최저임금, 근거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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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에 언급된 ‘결정 기준의 큰 틀’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하는 산식을 말합니다. 최저임금을 산정할 땐 먼저 인상률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때 여러 경제 지표들을 사용합니다. 올해는 '경제성장률 + 물가상승률 - 취업자증가율’ 수식을 사용하였는데, 작년과 같은 산식을 사용했다는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매해 다른 수식을 사용하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틀’이 생겼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마냥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고정된 산식이 생기면 최저임금 인상률을 쉽게 예측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노사가 치열하게 다툴 일도, 뉴스를 보며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낄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고정 산식은 해마다 바뀌는 경제 상황을 반영할 수 없다는 허점이 있습니다. 이렇듯 최저임금 결정에 있어 고정 산식의 사용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매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산정에 사용하는 경제지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에디터 부기🐢

2. 물가와 최저임금은 어떤 관계일까?

최저임금 산정에 ‘물가상승률’ 지표가 반영되었다는 건 정부 측에서도 수치를 유의미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동일한 수치를 두고도 노동자나 사용자는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노동자는 구매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사용자는 자신에게 떨어지는 순이익이 적어지기에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4년 만에 물가가 5%나 오른 올해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최저임금이 오를 시,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비스나 상품의 가격을 높여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분명한 건 부담이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기업 월급은 10% 내외로 오르는데 최저임금은 5%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대기업 노동자에 비해 저임금 노동자가 받는 실질임금이 적어지는 만큼 그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겠죠. 눈덩이처럼 커진 인플레이션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겁니다.

에디터 방금🌔

소비자물가와 공공요금이 치솟는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는 인플레이션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처지에 놓였다.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을 경우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줄어들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대기업은 임금을 올렸고, 공공요금마저 인상하는 시기에 최저임금을 올리지 말라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라는 얘기”라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최소한 실질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 5~6% 인상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경향신문>, 물가·요금 무시한 최저임금 동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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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3.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최저임금이 임금의 균형 가격 이상의 수준에서 형성되면 고용을 줄인다.’ 이는 고등학교 경제원론 시간에도 배울만큼 간단한 내용이죠. 최저임금이 높아지면 구직자는 많아지는 반면, 구인은 줄어 그 차이만큼 초과공급, 즉 실업이 발생한다는 설명인데요. 지난 정부가 주도한 최저임금 상승 시기에도 많은 보수 경제지에서 이 경제원론의 대목을 드며 정부가 경제의 기본도 모른다며 비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어려운 문제게 가깝죠. 얼마나 어려운지,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결론의 실증 연구를 한 데이비드 카드 교수는 이 연구로 노벨상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올랐다. 저임금 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도소매·유통업, 음식·숙박 개인서비스업, 그리고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몰려 있는 영세자영업계는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인건비 문제인지, 부진한 경기 탓인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이상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한겨레21>, ”0과 23.5 사이에 갇힌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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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변동, 인구구조, 기술발전 등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이 중 최저임금 상승의 효과만을 정확히 분리해내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특히 한국은 주(state)별로 최저임금이 다른 미국이나, 산업별로 최저임금이 다른 독일과 달리 전국 모든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이 동일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외의 변수를 통제한 실험을 하는 것이 더욱 까다롭습니다. 최저임금이 고용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양측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연구를 들기보단, 조금 더 차분하고 절제된 접근이 필요할 때입니다.

에디터 안목☕

4. 누구를 위한 최저임금인가?

최저임금법 제1조는 “임금의 최저수준 보장”으로 그 목적을 정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하한선을 설정하는 것이죠. 취지대로라면 아르바이트 노동자나 단기 계약 노동자 등 최저소득 노동자들을 우선으로 하는 제도여야 할 거예요.

최저임금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사람들 역시 소득 하위 업종 노동자와 영세사업자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최저임금위원회에 닿기 어렵습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저소득 노동자와 불안정한 매출에 수익을 의존하는 영세사업자 사이에서 제대로 된 교섭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고, 관련 경험이나 협상력이 부족해 최저임금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죠. 다른 나라의 상황은 좀 다를까요. 아래 기사는 최근 불거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둘러싼 쟁점들을 다루며 최저임금제도가 정착된 국가들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기업별 교섭을 넘어선) 산업별 교섭을 통해 정해진 산업·업종별 최저임금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고, 법정 최저임금은 협약의 보호 범위에 들어가지 못하는 취약 노동자들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이용된다. 한국은 반대로 최저임금이 주된 임금 기준이 되고, 특히 최초 입직 시 기준임금이 되며 산업별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전혜원, <시사인>, 최저임금 차등적용 하자는 고용주 단체, 취지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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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협약'은 근로계약 밖의 노동조건에 대해 노사가 합의해 체결하는 단체협약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노동권이죠. 그러나 대부분의 취약 노동자와 영세사업자는 이 협약 바깥에 존재합니다.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결정 구조부터 개편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최저임금제도가 취약 노동자와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해 임금 하한선을 설정하고 본래 목적을 실현하려면, '아래에서 위로' 일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에디터 무지🌈

3줄 요약

📌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합의된 원칙이 없다보니 파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 물가상승 국면에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최저임금을 동결하면, 인플레이션의 비용을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른 없습니다.

📌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임금입니다. 이 중요한 임금을 소수의 위원이 탑다운 방식으로 정하다 보니 마찰이 커질 수밖에요. 각 산업의 노조와 고용주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적정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정착하면 하는 바람입니다.

흙수저 빙고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 여름에 에어컨을 틀지 못하거나, 집에 욕조가 없다거나, 곰팡이 핀 곳이 있다거나 하는 항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물론 ‘돈이 없는 상태’는 개인의 사정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발현되는 양상이 다릅니다. 다만 저는 자신을 흙수저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몇 빙고를 달성했다고 할 때 한 가지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우리가 사물과 관계맺는 방식에 돈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말입니다.

‘돈이 없는 상태’는 결코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결정할 수 없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이 명제를 의심합니다. 가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결정과 감정을 의심하도록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돈은 사물과 내 관계를 바꾼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러다 보니 돈이 부족하면 원하지 않는 상황에 내던져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고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히 거절해야 하는 상황. 누구나 알 법한 식당 얘기를 하는데 혼자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그런 사소한 상황이 반복되면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움과 망설임 같은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최저임금이란 적어도 마모될 감정의 최저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당면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한 사람을 빠르게 소모시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때문에 가지는 딜레마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죠. 하지만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부정적 감정이 너무 커지지는 않도록 해주겠다는 겁니다.

물가가 이만큼 오른 건 외환위기 이래 처음이라고 하죠. 코로나 팬데믹, 거리두기, 리오프닝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경제 변동성이 커졌고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저임금 노동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계산대 앞에서 머뭇거리며 부담을 느끼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속절없이 쌓이는 감정을 사회 전체가 나눠질 때입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부담되겠지만 사회에서 재분배가 이뤄지면 부담이 분산될 테니까요. 최저임금을 포함해 양극화를 완화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모두가 감정의 최저선을 지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지난달 조선일보 기자들은 월급을 인상해달라며 “통장에 찍히는 월급액 첫 자리가 최저임금 월급과 같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습니다. 독자들은 이에 반발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조선일보의 기사가 노동자들이 돈 때문에 느끼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전혀 나눠지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자기 문제가 아니라며 노동과 임금을 둘러싼 논의를 회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돈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테니까요. 그러니 최저임금 인상과 동결을 놓고 찬반대결을 하기보다는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돼 왔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할지를 말입니다.

2022.07.11.

에디터 방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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