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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5 세상의 모든 골목 | 변종모
 
 
 
 
 
 
 
 
 
 
 
 
 
곧 출간될 변종모 작가님의 『세상의 모든 골목』을 사전 연재합니다.

세상의 모든 골목 | 변종모


그 골목에 편입되고 싶었던 어느 겨울 - 마슐레, 이란 Masuleh, Iran


카스피해로부터 번져오는 겨울 안개가 밥 짓는 굴뚝의 연기처럼 뭉근하게 밀려오는 아침이면 허기가 지곤 했다. 아마도 간밤의 꿈에서 먼 길을 떠났던 모양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골목을 돌아다녔던 것이리라.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 그때 나는 이란의 북쪽 깊은 산중에 자리한 마을 마슐레Masuleh에 머물고 있었다. 이 산중마을에서 여행자라고는 나밖에 없었는데, 오직 그 이유로만 나는 성대한 환대의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밤마다 나는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도 모른다. 그 환대를 꿈에서라도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지붕이 골목이고, 골목이 지붕인 마을


그곳은 아르메니아와 조지아가 합류하는 국경에서 멀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란의 최북단에 가까운 곳이었다. 카스피해의 거친 겨울 안개와 살을 애릿하게 저미는 추위가 날마다 세금징수원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는 곳. 그 이유로 외부인의 발길이 뜸했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이 작은 마을은 지붕이 골목이고 골목이 곧 지붕인 이상한 마을이다. 얼핏보면 바깥으로 드러난 개미굴 같기도 하고, 조각가의 엉성한 작품 같기도 하다. 한밤중에 방문하게 된다면 옆으로 누운 거대한 빌딩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무심히 흘려보면 까만 밤하늘 산비탈 아래로 층층이 박힌 별빛 같은 불빛들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쳐 있기 때문이다. 집과 집의 간격이 없이 그냥 길게 누워있는데, 수평으로 늘어선 구조가 여러 단으로 산의 허리를 감고 있다. 부산항에서 바라보는 감천마을 같기도 하고 또는 한성대전철역에서 바라보는 북악스카이웨이 쪽 성북동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이상한 마을은 오래된 역사와 전통 생활 방식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덕택에 이란의 10대 관광지로 선정되었으며 유네스코의 지원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여행자가 없다. 덕분에 나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귀한 손님이 되었다. 이러다 버릇없는 여행자가 될까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겨울 마슐레를 찾는 여행자라면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어떤지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영문도 모르고 이곳으로 끌려오다시피 해서 결국 짐까지 풀게 됐다. 내가 묵는 숙소는 이 마을에서 겨울철에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이었다. 배낭은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학생이 한사코 자기가 메겠다며 들춰 업고 숙소까지 신나게 가져왔다. 버스를 타고 나서부터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내가 힘들여 한 일은 그들의 관심에 웃는 얼굴로 화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 방은 골목 위 구름다리 같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방바닥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창문을 열면 앞집의 옥상이 나왔는데 그곳이 곧 골목이었다. 지붕 위로 아이들이 지나가거나 조그만 수레들이 분주히 오가기도 했다.


혹시 누군가의 실수로 이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했다. 무심코 쌓아놓은 블록 같은 집들이 그런 식으로 이어져 결국 마을을 이루었다. 그것도 경사가 급한 산의 각도를 따라 만들어져 아름답게 치장되었다. 마치 산이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집들은 산의 액세서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투박한 흙이나 돌로 지어 따뜻한 질감을 느끼게 한다. 골목의 아래 칸은 주로 상점이나 찻집인데 팔짱을 낀 듯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마을 맨 위쪽은 빵을 굽는 집이다. 이른 새벽이면 굴뚝에서 하얀 연기를 피워올린다. 고소한 냄새를 가득 품은 연기는 안개처럼 내려와 마을을 뒤덮는다. 군데군데 관공서나 예배당이 무심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게 전부인 작은 마을이라 부지런한 여행자라면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딱히 커다란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첩첩산중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신기하고 소중하다.


여러 날 이 골목을 떠나지 못했다.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아침에 차를 마시러 오라고 했고, 그 약속이 진심인 것 같아서 그러겠노라고 했는데, 대장간에 들른 화가에게 다시 초대를 받아 그의 화실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는 식이었다. 빵집 앞은 지나갈 때마다 끌려 들어가 날마다 새로운 빵을 맛보아야 했고, 찻집에서는 시음으로 배가 불렀다. 하릴없이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불러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나 많은지.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첩첩산중의 마을에서 나는 너무나 바쁘고 분주한 여행자가 되었다. 이 골목은 마치 나를 환대하기 위해 결심하고 작정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마음먹고 살가웠다.


어느 날 이백 원짜리 빵(바르바리라고 불리는 두꺼운 난)을 굽는 청년에게 물었다. 지붕 위로 사람들이 뛰어다니면 시끄럽거나 신경 쓰이지 않은지. 화덕의 열기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뛰어다니는 거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요. 이 마을 사람들은 급하게 뛰어다닐 일 없어요.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뛰어다니면 누군가에게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난 거죠. 자다가도 누군가 뛰는 소리가 들리면 저도 뛰어나가고 싶다니까요.”

골목을 기억하려는 의지


안개가 심한 날이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골목의 풍경과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들을 그렸다. 대장장이 할아버지의 얼굴을 그렸고, 빵 굽는 청년의 표정을 스케치했다. 찻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내가 그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화가에게는 보여주지 못할 실력이지만 그들은 기꺼이 좋아해 주었다. 마을의 지붕을 그리면 길이 되었고, 길을 그어나간 선들을 바라보면 어느 귀퉁이에서 누굴 만났는지 기억이 났다. 이것이 다시 꿈에 나타나 나를 걷게 하고 또 허기지게 하겠지. 혹은 어느 날 현실에서 꿈처럼 기억나겠지.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주 그림을 그렸다. 세월이 지나면 이 기억도 안개처럼 희미해질 것이라 나는 손에 힘을 주고 더 선명하게 선을 그어나갔다. 오래 기억하는 방법은 오래 마주하는 일이 가장 확실하겠지만, 나는 잠시 지나가는 여행자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가 어떤 식으로든 이 골목을 오래 기억할 것이라는 의지였다. 아마 여기에 오는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이란은 천사들이 사는 곳이다. 오래된 여행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이다. 내가 있는 이 산중의 깊고 가파른 골목은 그 말을 가장 실감 나게 하는 곳이다. 만약 긴 시간만이 인연의 결속을 보장한다면, 사실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는 비록 이곳에 짧은 시간 머물렀을 뿐이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했다. 나란히 앉아 차를 나누어 마셨고,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 당신의 고단한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은 다정함과 친숙함으로 발전했고 이것이 내 발을 묶었다. 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 마음은 자꾸만 약해졌다. 떠나지 않으려 자꾸만 마음 깊은 곳에서 변명을 하게 만들었다. 내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던 사람들 앞에서, 내 서툰 농담에 잘 웃어주고 내 지루한 여행담을 끝까지 들어주던 사람들 앞에서, 나는 말이 달라도 웃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의 관심이 결코 성가시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좋은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그들은 이웃에게 자신의 지붕을 마당처럼 내어주고 이웃의 지붕을 자신의 길로 여기며 사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곳은 그만큼 서로의 일상이 긴밀한 곳이다. 그렇게 사는 게 물론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골목은 생활 이상의 삶을 그들에게 안겨줄 것이다. 함부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나는 이 골목의 삶에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으로 포함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샬람. 겨울 골목을 따뜻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의 감정까지는 그릴 수 없지만, 나는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공손하게 인사하던 그 환한 얼굴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낯선 손을 마주 잡고 비탈진 골목의 안쪽을 걷는 꿈을 꾸게 된다면 분명 그곳일 것이다.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그날의 기억들이 따뜻하게 나를 찾아올 것이다. ✉️

📌 마슐레에 가고 싶다면 _ 

이란 북쪽에서 내려오거나 테헤란 쪽에서 올라가더라도 라쉿Rasht이라는 곳 또는 푸만Fuman을 거쳐야 한다. 미니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다. 둘 다 비용은 아주 저렴하다. 합승 택시나 미니버스는 사람들이 다 차야 출발을 한다. 이란에서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마슐레는 여름 휴양지로 각광받는 곳이라 겨울철에 방문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반대로 비수기의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형 원룸처럼 욕실과 티브이, 가스레인지, 가스난로가 구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이 풍경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는 테라스가 압권인 숙소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눈물 나게 춥다는 것을 알아두어야만 한다.

변종모 | 오래도록 여행자

쓴 책으로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 등이 있다. 지금은 길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유튜브 ⟨모처럼, 여행⟩(https://www.youtube.com/@maldive9)에서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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