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골목 | 변종모
그 골목에 편입되고 싶었던 어느 겨울 - 마슐레, 이란 Masuleh, Iran
카스피해로부터 번져오는 겨울 안개가 밥 짓는 굴뚝의 연기처럼 뭉근하게 밀려오는 아침이면 허기가 지곤 했다. 아마도 간밤의 꿈에서 먼 길을 떠났던 모양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골목을 돌아다녔던 것이리라.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 그때 나는 이란의 북쪽 깊은 산중에 자리한 마을 마슐레Masuleh에 머물고 있었다. 이 산중마을에서 여행자라고는 나밖에 없었는데, 오직 그 이유로만 나는 성대한 환대의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밤마다 나는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도 모른다. 그 환대를 꿈에서라도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지붕이 골목이고, 골목이 지붕인 마을
그곳은 아르메니아와 조지아가 합류하는 국경에서 멀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란의 최북단에 가까운 곳이었다. 카스피해의 거친 겨울 안개와 살을 애릿하게 저미는 추위가 날마다 세금징수원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는 곳. 그 이유로 외부인의 발길이 뜸했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이 작은 마을은 지붕이 골목이고 골목이 곧 지붕인 이상한 마을이다. 얼핏보면 바깥으로 드러난 개미굴 같기도 하고, 조각가의 엉성한 작품 같기도 하다. 한밤중에 방문하게 된다면 옆으로 누운 거대한 빌딩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무심히 흘려보면 까만 밤하늘 산비탈 아래로 층층이 박힌 별빛 같은 불빛들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쳐 있기 때문이다. 집과 집의 간격이 없이 그냥 길게 누워있는데, 수평으로 늘어선 구조가 여러 단으로 산의 허리를 감고 있다. 부산항에서 바라보는 감천마을 같기도 하고 또는 한성대전철역에서 바라보는 북악스카이웨이 쪽 성북동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이상한 마을은 오래된 역사와 전통 생활 방식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덕택에 이란의 10대 관광지로 선정되었으며 유네스코의 지원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여행자가 없다. 덕분에 나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귀한 손님이 되었다. 이러다 버릇없는 여행자가 될까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겨울 마슐레를 찾는 여행자라면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어떤지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영문도 모르고 이곳으로 끌려오다시피 해서 결국 짐까지 풀게 됐다. 내가 묵는 숙소는 이 마을에서 겨울철에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이었다. 배낭은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학생이 한사코 자기가 메겠다며 들춰 업고 숙소까지 신나게 가져왔다. 버스를 타고 나서부터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내가 힘들여 한 일은 그들의 관심에 웃는 얼굴로 화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 방은 골목 위 구름다리 같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방바닥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창문을 열면 앞집의 옥상이 나왔는데 그곳이 곧 골목이었다. 지붕 위로 아이들이 지나가거나 조그만 수레들이 분주히 오가기도 했다.
혹시 누군가의 실수로 이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했다. 무심코 쌓아놓은 블록 같은 집들이 그런 식으로 이어져 결국 마을을 이루었다. 그것도 경사가 급한 산의 각도를 따라 만들어져 아름답게 치장되었다. 마치 산이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집들은 산의 액세서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투박한 흙이나 돌로 지어 따뜻한 질감을 느끼게 한다. 골목의 아래 칸은 주로 상점이나 찻집인데 팔짱을 낀 듯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마을 맨 위쪽은 빵을 굽는 집이다. 이른 새벽이면 굴뚝에서 하얀 연기를 피워올린다. 고소한 냄새를 가득 품은 연기는 안개처럼 내려와 마을을 뒤덮는다. 군데군데 관공서나 예배당이 무심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게 전부인 작은 마을이라 부지런한 여행자라면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딱히 커다란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첩첩산중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신기하고 소중하다.
여러 날 이 골목을 떠나지 못했다.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아침에 차를 마시러 오라고 했고, 그 약속이 진심인 것 같아서 그러겠노라고 했는데, 대장간에 들른 화가에게 다시 초대를 받아 그의 화실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는 식이었다. 빵집 앞은 지나갈 때마다 끌려 들어가 날마다 새로운 빵을 맛보아야 했고, 찻집에서는 시음으로 배가 불렀다. 하릴없이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불러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나 많은지.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첩첩산중의 마을에서 나는 너무나 바쁘고 분주한 여행자가 되었다. 이 골목은 마치 나를 환대하기 위해 결심하고 작정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마음먹고 살가웠다.
어느 날 이백 원짜리 빵(바르바리라고 불리는 두꺼운 난)을 굽는 청년에게 물었다. 지붕 위로 사람들이 뛰어다니면 시끄럽거나 신경 쓰이지 않은지. 화덕의 열기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뛰어다니는 거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요. 이 마을 사람들은 급하게 뛰어다닐 일 없어요.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뛰어다니면 누군가에게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난 거죠. 자다가도 누군가 뛰는 소리가 들리면 저도 뛰어나가고 싶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