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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행운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으레
성취감이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합니다. 

「문명특급」의 밍키PD는
성취감이 아닌 뿌듯함으로
하루하루를 꾸려나간다고 답하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함께 읽어봐요!
🙌



홍민지


SBS 디지털뉴스랩에서 PD로 일하며 「문명특급」을 만들고 있다.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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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감 vs 뿌듯함

‘성취감’과 ‘뿌듯함’이란 말은 둘 다 무언가를 이룬 상황에 쓰이지만 의미는 미묘하게 다르다.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탐험가에게는 ‘성취감’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고, 저녁에 운동 삼아 동네 뒷산에 오른 나에게는 ‘뿌듯함’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사전을 찾아보니 두 단어의 차이점이 더욱 흥미롭다. ‘성취하다’란 ‘목적한 바를 이루다’라는 뜻이다. 유의어로는 ‘달성하다‘가 있다. 그에 반해 ‘뿌듯하다‘란 ‘기쁨이나 감격이 마음에 가득 차서 벅차다‘라는 뜻이다. 유의어로는 ‘보람되다‘가 있다. 500원짜리 동전으로 돼지 저금통을 가득 채운 상황에서는 ‘뿌듯하다’를 쓰고, 100억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에는 ‘성취하다’를 쓴다.


면접에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식은땀이 났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성취감을 느낄만한 일을 한 적이 없거니와 애초에 목적한 일조차 없기때문이다. 학생회장을 했던 경험이나 어떤 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경험을 말하며 이런 것들을 달성해서 성취감을 느꼈다는 레퍼토리를 짜서 둘러대긴 했으나 사실 거짓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나는 성취감보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작년의 새해 목표는 이불 정리. 원래 이불 정리를 하지 않았는데 별 이유 없이 아침에 일어나면 침구를 정돈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난 아침 시간을 허둥지둥 보내는 종류의 사람이다. 매일 이불과 베개를 정돈하겠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도전이다. 용케도 일년째 잘 실행하고 있는데 침대가 깨끗하니 주변이 더러워 보여서 방을 더 치우게 되는 효과가 있고, 퇴근 후 집에 오면 방이 깨끗해서 피곤이 풀린다. 최근에 또 하나 더한 일상의 결심은 하루에 사과 한알 먹기다. 스스로 건강을 의식적으로 챙기고 있다는 기분도 들고, 사과를 먹기 위해 5분이라도 일찍 일어나다 보니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긴다. 그깟 이불을 정리하는 일이나 사과를 챙겨 먹는 걸로 어떠한 목적을 달성했다는 성취감을 느끼진 못하지만, 틀림없이 뿌듯한 하루다.


그런데 회사 안에서는 어떤 일을 해놓고 “아 뿌듯하다”라고 하면 귀여운 척을 하는 것 같고, 내가 한 일이 평가절하되는 느낌도 있다. 예를 들어 매주 월요일에 아침 보고를 할 때 “저번 주에 시청 수 100만을 달성해서 뿌듯했습니다”라고 하는 것보다 “지난주에 시청수 100만을 달성하는 팀 내 성취가 있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있어 보이지 않는가. 이런 이유로 공식적인 회의자리에서는 “뿌듯하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회사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뿌듯함보다는 성취감이라는 감정에 더 익숙해졌다.


성취감이 불닭볶음면이라면 뿌듯함은 진라면 순한맛이다. 하던 일에 익숙해질수록 더 큰 자극을 원하기때문에 평소에 느끼던 보람의 슴슴함은 싱겁게 느껴진다. 과거에는 내가 제작한 영상을 한명만 봐줘도 즐겁고 기뻤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내 앞에 있던 사람이 내가 만든 영상을 보면서 깔깔 웃고 있었던 그날, 첫 월급날보다 뿌듯한 날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 정도의 성취는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고 조회수 500만, 1000만이 목표가 되었다. 다른 PD들이 만든 영상의 조회수가 이 숫자를 뛰어넘으면 부러웠다. 그 프로그램의 성공비결을 찾아 따라가고 싶었다. 성취를 맛보려는 탐욕에 눈이 돌았다.

며칠 전 점심이었다. 그날도 전날 올린 영상의 조회수가 낮아 풀이 죽어 있었다. 어깨가 처진 채로 나가 선배와 쌀국수를 먹었다. 선배는 내 시무룩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오늘 정리 잘돼가?”라고 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부 인사가“밥 먹었어?”라면, 독일에서는 “오늘 정리 잘돼가?”라고 한다며.


정리? 그제서야 정신없던 하루를 돌아봤다. 엉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하루였다. 아침에 이불 정리도 했고, 말끔히 씻었고, 사과도 잘 챙겨 먹었고, 따뜻한 스웨터도 입고 나왔고, 맛있는 커피도 마셨고, 편집 마감도 무탈하게 지나갔으니. “현재까진 잘 정리되고 있어요”라고 답하자 선배는 말했다. “뿌듯하겠네!” 문득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500만, 1000만이 아니라 이부자리 정리와 사과 한알, 이런 걸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이 훨씬 가볍고 즐거울 것이다. 집 나갔던 뿌듯함이 돌아왔다.


“오늘 정리 잘돼가?” 하고 물은 선배 덕분에 미세한 일상의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기억했다. 큰 목표에만 집중하면 내 인생은 실패작이고, 비교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뿐더러, 그것을 성취한다 해도 더 큰 성취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뿌듯함은 잊은 채 공허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뿌듯함에 기반해 성취를 하는 사람이다. 물론 반대로 성취가 있어야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게 일이란 나의 뿌듯함을 성취로 바꿔내는 일이다. 나의 지속을 위해 뿌듯함을 수집하고, 프로그램의 지속을 위해 정량적인 성취를 목표한다. 되돌아보면 100만, 1000만 조회수에 눈이 뒤집혀 만든 콘텐츠는 망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우리가 궁금한 이야기를 추구했을 때 조회수도 잘 나왔다. 직장 내 세대 차이에 대해 고민하다 연출한 「다시 만난 세대」, ‘신문명’과 ‘구문명’의 간극을 좁히고 싶어 기획한 「문명특급」이 그랬다.


하지만 일이 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고, 때로는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고, 기획은 엎어지고 섭외는 불발되기 일쑤다. 그럴 때면 우리가 제작한 영상을 잘 봤다는 시청자의 댓글을 찾아본다. 우리 프로그램이 밥 친구라는 댓글, 퇴근 후 재미있게 하루를 마무리했다는 댓글, 덕분에 위로가 된다는 댓글을 보면 다시금 일의 의미가 충전된다. 프로그램을 즐겁게 시청해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보람으로 여기며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사과를 챙겨 먹었다는 데 만족한다. 오늘 하루도 잘 정리했으니까. 작은 뿌듯함들이 나를 계속하게 한다.


앞으로의 「문명특급」도 먼저 나를 뿌듯하게 하는 것들로 채워가려고 한다. 나는 그래야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을 하며 번아웃이 오거나, 현재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렇게 성취감과 뿌듯함을 나눠서 고찰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본인이 성취감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인지 뿌듯함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인지 파악하면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회에서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지, 어떤 일에 보람을 느끼는지. 그 두가지를 합치면 이전보다는 구체적인 답이 나오지 않을까.

💬
큰 목표를 보고 달리는 것보다는
일상의 사소한 뿌듯함을 수집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정리하는 것, 
그게 우리가 더 오래, 건강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님, 오늘 하루 잘 정리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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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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