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고려의 미술은 섬려(纖麗)하다.

2022. 03. 18(금)

⟪칠, 아시아를 칠하다⟫ /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가 이번 주 일요일(3월 20일)까지 열립니다. 이미 많은 분들께서 다녀오셨을텐데 저는 이제서야 봤네요. 이 전시는 여러모로 교육적인 전시입니다. 한중일 삼국 그리고 동남아의 칠공예를 순서대로 비교 · 감상할 수 있게 구성하고 매체와 기법에 대한 소개를 상세하게 해줬거든요. 설명 → 작품 → 설명 → 작품의 반복인 전시라서 전시기획 자체는 평이했습니다만 칠기에 대해 잘 설명해줬다는 점에서 꼭 가볼 만한 전시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특징인데, 마지막에는 현대에 이르러 이 미술이 어떻게 변용되었는지로 마무리하는 섹션은 꼭 포함시키더군요. 현대미술에 대한 갈증이 있는 기관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일단 관련 분야에 대한 인력, 소장품 등의 구조적 한계가 있어 소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시도가 있어야 점점 나아지는 법이라 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전통에서 시작하여 현대를 보여주려면 가교 역할을 한 근대를 꼭 넣어줘야 하는데 이 부분은 항상 빠져있어 ‘응? 갑자기?’라는 생각이 항상 드네요. ㅎㅎ

이번 전시 역시 현재 우리나라의 칠공예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부분으로 마무리지었습니다. 짜임새있어 보이던 작품 수나 설명이 충실했던 앞 부분과 결이 안맞을 정도로 몇 작품만 휑하니 가져다 놓고 <오늘날의 옻칠, 그 물성과 예술성>이라 칭한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앞 섹션들의 충실한 설명에 비해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점도 그렇고요. 현대 공예에 대한 비평이나 연구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임을 알기에 이해는 하지만 안넣으니만 못했다는 아쉬움은 들더군요.

그래도 이 전시를 보고나서 늦게나마 보러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고려시대 나전칠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고려시대의 미술은 “섬려(纖麗)하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섬세하고 수려하다”는 의미입니다. “수려하다”는 또 “빼어나게 아름답다”, 즉 아름다움 중에서도 최고라는 극찬입니다.

상감이 빼곡하게 들어간 청자, 사람의 손으로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게 그렸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인 불화, 그리고 나전칠기까지 고려시대의 미술은 마치 “우리가 각잡고(?) 하면 그 어느 나라보다 치밀하고 화려하게 할 수 있지!”라고 당당하게 말해주는 듯합니다(우리에게 고려가 있어 정말 다행이에요). 손으로 집기도 어려운 고작 2~3mm 정도 밖에 안되는 조개 껍데기로 만든 문양을 이렇게 빼곡하고 정연하게 넣다니 한참을 들여다봐도 내내 감탄만 나왔습니다. 더욱이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는 조선시대에 비해 한 줌도 안될 정도로 전해지는 수량이 많지도 않거든요.

저는 전공이 아무래도 고미술이다 보니 전시기획으로 큐레이터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현대미술에 비해 조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더불어 이미 명품으로 인정받은 작품과 역사적 가치를 담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기에 가능하면 기획에 의한 전시의 맥락보다는 작품이 더 대접받고 주목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이번 전시는 고려시대 나전 작품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마냥 좋았던 전시로 기억이 남을 것 같습니다.

혹시 아직 못보셨다면 이번 주 일요일(3/20)까지니까 주말에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

⟪홀로세의 미래⟫ /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1. <홀로세의 미래>전은 사진,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에 대한 전시다.

2. 전시는 자연의 반격, 종의 위기와 사멸 그리고 회복을 위한 준비 3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3. 언제부터인가 지구의 양극단을 소재로 촬영한 사진은 오로라가 피어오르는 황홀경보다 녹아내리고 있는 빙하와 먹이를 찾아헤매는 앙상한 북극곰이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여담이지만 북극에는 펭귄이 없고, 남극에는 곰이 없다).

4.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홀로세(Holocene)라는 용어는 빙하기가 끝나는 약 1만 년 전부터 지금을 의미한다.

5. 섹션1 <자연의 반격>에서는 임상빈 작가가 2013년 남극에서 촬영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임상빈 작가의 사진은 한 화면에 다양한 시점이 존재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보여준다<Antarctica-Penguin>은 기후온난화로 곳곳에 흩어진 유빙을 바라보며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망설이는 펭귄떼와 관광하러 온 듯한 인간들의 모습을 대비시켰다.

6. 엄기준 작가는 세 폭의 대형화면에 떠도는 쓰레기로 뭉쳐진 섬을 그린 <쓰레기 섬>을 출품했다. 그 화면 구성은 마치 중국 강남지역의 안개가 자욱한 산수화 같다. 고요한 분위기로 마음을 가라앉게 해주는 이상적인 풍경의 산수 대신 온갖 쓰레기로 뒤덮인 이 작품은 소비문화의 문제점을 시각적으로 쉽게 표현했다.

7. ‘쓰레기 섬'이라는 용어는 1997년에 찰스 무어라는 인물이 처음 명명하였다. 그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플라스틱 양이 무게로 따졌을 때 동물성 플랑크톤보다 6배나 많으며 바닷속 플라스틱의 화학 성분 때문에 해양 먹이사슬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환경운동가이다. 원래는 바다 좋아하는 평범한 시민이었으나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해양 환경 연구자로 삶의 경로가 바뀌었다고 한다.

8. 섹션2 <종의 위기와 사멸>에서는 고상우 작가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마치 증명사진 찍듯이 촬영하고 그 위에 여러 상징을 그려 낯선 경험을 유도하였다.

9. 백종훈 작가는 <낮잠당한 천사>에서 고릴라와 울고 있는 아이가 병든 북극곰을 든 모습을 그렸다. 인간과 (아직은 덜 위험한) 열대지역의 고릴라가 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든 모습에서 현재 지구 환경의 가장 아픈 곳을 지시적으로 보여준다.

10. 파랑 작가는 속도감 있는 붓놀림과 진한 색으로 불에 타 폐허가 되고 있는 아마존을 그렸다(<불타는 아마존>). 그리고 무분별한 밀렵으로 희생된 동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동물들의 숲을 그린 <마지막 인사>는 처연한 분위기를 강렬한 색으로 잘 묘사하였다. 그림의 형식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입멸의 순간에 보살, 10대 제자, 그리고 수많은 동물들이 모여 애도하는 <열반도>의 장면과 유사하다. 동물에겐 생과 사의 문제일텐데 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전시에서 감상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11. 섹션3 <회복을 위한 준비>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제안하는 김유정 작가의 설치작품을 볼 수 있다. 뿌리가 없고 공기 중의 먼지에서 양분을 흡수하여 자란다는 ‘틸란드시아(Tillandsia)’가 주요 소재다. 수명을 다한 가구와 액자에 살아있는 틸란드시아로 뒤덮은 작품들은 기존의 종속관계가 아닌 공생관계를 제안하는 것 같다.

12. ⟪홀로세의 미래⟫는 작년 여름에 했던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전처럼 스케일이 크지는 아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표현하는 매체로 구성되어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전시 정보
- 장소 :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 기간 : 2021.12.30-2022.03.30(휴관일 : 월요일)
- 문의 : https://www.caci.or.kr/caci/exhibit/view.do?menuNo=200007&pblprfrId=1381

1년만에 그림값 34억 오른 '90년생 신데렐라' 탄생

1. 3월 런던 크리스티·소더비 경매에서 플로라 유크노비치(32)라는 신예작가가 주목받았다.

2. 3월 1일 크리스티 경매에선 2017년작 <Tu vas me faire rougir(넌 나를 붉어지게 만들어)>가 경합 끝에 약 190만파운드(31억원)에 낙찰되며 추정가를 6배 경신했고, 2일 소더비 경매에선 <Warm, Wet 'N' Wild>(2020)이 추정가 20만파운드를 14배나 경신한 약 280만파운드(44억원)에 팔렸다.

(왼쪽) <Tu vas me faire rougir>, 2017 / (오른쪽) <Warm, Wet 'N' Wild>, 2020

3. 두 작품 모두 18세기 로코코 화가 프랑수아 부셰와 장 앙투안 바토의 작품을 재해석한 것이다.

4. 플로라 유크노비치는 1990년생으로 영국 노리치에서 태어나 런던예술학교를 졸업하였다.

5. 그는 미디어아트와 조소 등에 주목하는 또래 작가들과 달리 초대형 회화에만 매진합니다. 사탕 같은 화려한 색채로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기법은 반추상 회화로 분류됩니다.

6. 작업실에는 숱한 과거의 명화와 최신 패션 잡지가 가득하다. 그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영감을 주는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걸 즐긴다.

7. 그가 시장에서 각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SNS 덕분이다. 파라핀 갤러리의 매트 왓킨스는 유크노비치의 작품을 인스타그램에서 소개하며 인기를 촉발시켰다.

8. 작가는 "나는 늘 박물관, 영화, 잡지, SNS에서 시각적 연결과 새로운 볼거리를 찾는 것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것들이 내 마음을 채우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응시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9. 회화 작가가 희귀해진 요즘, 벽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그의 회화는 역설적으로 더 미술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문 : https://m.mk.co.kr/news/culture/view/2022/03/226059/

📝 Curator’s Note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저는 시각적으로 즐거움, 슬픔, 그리움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의 생명력이 더 길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를 설득시키려 애쓰는 문장보다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는 문장이 더 울림이 있는 것처럼요. 로코코 미술은 여러 미술사조 중에서 수요자의 욕망이 가장 적나라하게 투영되고 이를 세속적인 주제와 화려한 색감으로 호응한 미술이라 당시에는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깊은 함의없이 너무 1차원적이라는 비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하고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매체가 활용되는 요즘은 색채가 가장 고전적이고 함축적인 매체로 작용하여 여러 감정과 상상력을 갖게 해주는 것 같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이 참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