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흥미로운 실험도 있는데요,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두 제품 중 하나를 고르게 했습니다. 하나는 8개 중 2등, 다른 하나는 20개 중 4등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상대적 순위가 다릅니다. 2/8은 상위 25%이고 4/20은 상위 20%이니까요. 논리적으로 판단하면 '20개 중 4등'인 제품이 더 우수하죠.
그런데도 참가자들 중 57.2%는 '8개 중 2등'인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2등’이라는 숫자가 ‘4등’보다 강하게 느껴졌던 것이죠.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통해 1등과의 차이로 판단하는 경향이 나쁜 선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문제는 이런 왜곡된 판단이 회사 안에서 똑같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10명짜리 팀의 2등과 40명짜리 조직의 6등을 놓고 승진자를 결정한다고 해보죠. ‘2등’이라는 숫자가 눈에 먼저 들어오면 관리자는 팀 규모라는 맥락을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2/10은 상위 20%, 6/40은 상위 15%입니다. 그래서 다른 크기의 집단에서 나온 절대순위를 그대로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연구진은 ‘8개 중 2등’이라고만 보여주는 대신 ‘다른 6개보다 높은 순위’라고 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1등과의 거리만 보게 하지 않고 그것보다 아래에 몇 개가 있는지도 보게 한 것이죠. 그러자 잘못된 선택을 하는 현상이 크게 약해졌다고 합니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백분위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에게 '8명 중 2등'과 '16명 중 4등'인 직원을 보여주고 보너스를 줄 사람을 고르게 했습니다. 두 사람을 모두 ‘상위 25%’라고 표시하자 판단 왜곡 현상이 사라졌습니다. 연구진은 순위를 어떤 형식으로 보여주느냐만 바꿔도 관리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숫자는 객관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판단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평가의 공정성은 평가자의 마음가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평가자에게 숫자를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를 세심히 설계하는 것에서 평가의 공정성이 시작됩니다. (끝)
*참고논문
Barnea, U., Moon, A., & Silverman, J. (2026). How rank position and list length shape people’s evaluation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94, 104492.
https://doi.org/10.1016/j.obhdp.2026.104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