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 며칠 넷플릭스 <피지컬: 100> 마지막회 스포일러를 열심히 피해 다니는 중입니다. 이번 주에 볼 시간이 없었거든요. <피지컬: 100>은 신체 능력에 자신 있는 사람들 100명을 모아서 진행한 서바이벌 예능입니다. 국가대표 등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부터 보디빌더, 유튜버, 자동차 딜러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출연자들이 신체 능력과 전략을 사용해 하나하나의 관문을 통과해 나가는 구성인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몰입하게 되어서 조금 놀랐어요. 저는 원래 스포츠, 게임, 서바이벌 예능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며 결국 재미라는 건 그 세계 안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어떤 서사를 구성해낼 수 있느냐에 달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청자가 자신과 조금도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고 응원하게 하는 것, <피지컬: 100>은 그 점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체격이 작은 사람의 강함을 보여준 양학선 선수, 어려운 상황에서도 담대한 리더십을 발휘한 장은실 선수, 패자부활전에서 멋지게 활약한 유튜버 심으뜸 씨를 보며 훌륭한 ‘피지컬’이란 단지 근육량만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새삼 느꼈답니다.

 

뛰어난 피지컬을 지닌 사람을 보면 왠지 고양감이 들기도 하죠. <피지컬: 100>을 재미있게 본 친구는 ‘매달리기 연습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어요.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퀘스트가 구조물에 오래 매달려 버티기였는데, 1위를 기록한 산악구조대원이자 아이스클라이밍 선수 김민철 씨의 기록은 무려 15분이 넘었거든요. 반면, 산책 중 가끔 매달리기 연습을 해보는 저의 최고 기록은 32초입니다. 어차피 서바이벌 예능에 출연할 일은 없겠지만 100미터 최고 기록 23초와 더불어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엔 영 어려워 보이는 피지컬이죠. 사실 전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그냥 맨 처음에 물려서 얼른 좀비가 되자’고 결심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좀비들의 소식은 없고 인간으로 살아야 할 날이 꽤 남아 있는 것 같기는 해서, 저는 최소한의 생존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걸 운동이라고 말해도 될지는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4년 넘게 요가를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가끔은 두 시간...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땐 정말 힘들었어요. 내 몸에 달린 팔다리를 뻗고 있을 뿐인데 이렇게 고통스럽고 숨을 쉴 수 없다니 충격이었습니다. 전혀 안 쓰던 근육을 한꺼번에 쓰고 나자 며칠 동안 움직일 때마다 곡소리가 났어요. 말로만 듣던 햄스트링이 여기 붙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죠. “복부에 힘!”, “두 개만 더!”, “지금부터 다섯 호흡만 하세요.” 어째서 요가 선생님들은 다섯-네엣-세엣-------(살려줘)------두울-하-나~ 같은 식으로 호흡을 세는 걸까 속으로 울부짖는 사람은 저뿐인가요? 빈야사라는 걸 만든 놈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가는 사람도 저뿐인가요?

 

게다가 저는 타고나길 운동 수행능력이 무척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함께 움직이라고 하면 혼란에 빠지고, 도구를 쥐는 일처럼 간단한 것도 대부분의 사람과 반대로 해서 동작이 어색해져요. 그럴 땐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포크 댄스를 출 때 오른쪽으로 돌아야 할 걸 혼자 왼쪽으로 돌아서 망신당했던 과거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죄책감 없이 요가를 빼먹을 수 있을지 매주 궁리하고, 어떻게 하면 아쉬탕가 요가처럼 힘든 클래스를 피해갈 수 있을지 신중하게 고려해 시간표를 짜면서도 저는 요가를 꽤 좋아합니다. 제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저와 강제로 분리하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호흡과 동작을 맞추어 움직이는 한 시간은 방만한 일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스스로를 콘트롤하는 시간이기 때문이에요. 잠시만 다른 생각을 해도 몸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는 게 최선임을 확인하는 데 운동은 무척 좋은 방법이더라고요. 

 

물론 이렇게 느슨한 마음으로, 딱히 자신과 싸워 이길 생각 없이 쉽게 싸움을 포기하는 사람이다 보니 저의 요가 실력은 근육만큼이나 늘지 않고 제자리에 있습니다. 저를 3년째 만나고 있는 요가 선생님은 오늘도 목을 똑바로 가누지 못하는 저 때문에 한숨을 쉬셨어요. 하지만 저는 그만두지 않고 4년이나 계속하고 있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 칭찬해주곤 합니다. 특히 샤워할 때 한쪽 다리로 서서 반대쪽 발에 비누칠할 때마다 마치 고수가 된 기분으로 생각해요. ‘음, 역시 꾸준히 독수리 자세를 연마한 보람이 있군.’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