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저서는 한국 영화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신화화되었던 리얼리즘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1945년부터 1965년까지를 1차 연구 범위로 설정했으며, ‘리얼리즘 영화’로 정전화된 텍스트들과 그에 대한 당대 비평 담론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각 시기별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해방기의 경우, 이념 대립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영화계의 권력 구조가 급속도로 재편되었다. 이에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리얼리즘 개념 또한 선택적으로 수용되었다. 민족 영화 역사 수립을 갈망해 온 영화인들은 서둘러 왜곡된 리얼리즘 영화사를 서술해 나가기 시작했다. 좌파 계열의 영화인들이 남긴 발자취가 역사에서 지워진 반면 최인규와 같은 감독은 한국 (리얼리즘)영화사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추대되었다. 최인규가 남긴 영화들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는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국 전쟁기에는 <태양의 거리>, <악야>와 같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이 등장했다. 이들은 스타일적 측면에서는 네오리얼리즘과 일정 부분 유사성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간의 차이를 나타냈다. 당시 영화인들은 해외에서 유행하는 예술 사조에 뒤지지 않는, 참신하면서도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영화가 출현하기를 기대했다. 이러한 욕망은 곧 (네오)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통과하여 굴절된 형태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국가권력의 강력한 통제가 사회 전반에 가해졌다. 이에 추상적인 휴머니즘 개념을 앞세운 순수문학 진영이 문단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였고, 왜곡된 형태로 수용된 실존주의 사상이 문화·예술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이와 더불어 근대화 및 세계화라는 과제가 시대정신으로 대두되었다. 민족적이고도 독창적인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열망과 세계적인 조류에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전후 새롭게 형성된 영화 평론계에서는 ‘코리안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주조하기에 이른다.
코리안 리얼리즘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기반으로 창조된 개념이다. 표면상으로는 저항 정신, 작가 의식과 같은 가치가 부각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 사회를 지배한 근대화, 세계화 논리와 보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즉, 평론가들은 리얼리즘적 가치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라, 네오리얼리즘이라는 국가적 브랜드를 만들어 낸 이탈리아의 모범적 사례와 같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영화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적 특수성(‘코리안’)으로 상품의 희소성을 높이고, 세계적 보편성(‘리얼리즘’)을 기반으로 관객 다수의 공감을 사겠다는 목표가 반영된 결과물이 코리안 리얼리즘이었다고 요약해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 (코리안) 리얼리즘으로 호명된 작품 대다수는 휴머니즘, 실존주의, 네오리얼리즘 등의 개념을 절반만 소화한 채로 현실의 표면적인 모습을 재현해내는 데 그쳤다. 국가권력은 검열과 해외 영화제 출품이라는 통제 수단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영화가 재현하는 현실 이미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율해나갔다. 비평계는 리얼리즘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 채 혼란을 가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4·19 직후 문화·예술계는 중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잠시 동안이나마 표현의 자유가 확보되었고, 리얼리즘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영화비평계는 동시기의 세계적인 시류에 발맞추어 모더니즘적인 경향으로 좌표를 재설정했다. 결과적으로 여타 문화·예술계와 달리 영화계에서는 리얼리즘에 관한 논의가 점차 잦아들게 되었다.
1960년대 초·중반에는 가족 멜로드라마 장르가 형성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현실과의 접점을 강하게 형성하며 리얼리즘적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대다수가 행복한 결말 구조를 통해 현실을 이상화, 낭만화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한편, 아동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거나 네오리얼리즘, 휴머니즘, 실존주의적 경향을 표방하는 등 이전 시기의 리얼리즘적 창작 경향을 계승·발전하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론적 토대가 조야하였으며, 정치적 상황마저 경직되어 간 탓에 이들 역시 일정 부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한국 사회는 불완전한 혁명의 열기를 고스란히 군사 정권에게 이양한 채 오랜 기간 혼란을 마주하여야만 했다. 리얼리즘 개념을 둘러싼 한국 영화계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