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성우의 대화

☕️ 어색한 사이

어쩌면 조금 다른 사람들의
색깔있는 대화



<어색한 사이>는 모어데즈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가 협업해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페미니즘이 낯선 친구, 가족, 애인, 동료를 추천받아 페미니즘 활동가가 직접 만나러 갔어요. 어색한 사이, 차를 마시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요? <어색한 사이>는 어느 금요일 깜짝 레터로 찾아옵니다.


이번 레터에선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 한 활동가와 페미니즘에 대한 벽이 낮아진 성우님(가명)과의 대화를 전합니다.


“페미니즘은

애인과의 관계를 위해

마주해요”

☕️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



한   자기소개를 한번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성우   98년생이에요. 학교를 졸업하고 애니메이터를 공부하다 지금은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며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준비중이에요.

한   그렇군요. 어떻게 이 프로젝트에 신청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나요?

성우   여자친구가 소개해줬어요. 여자친구가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고 공부하려는 생각도 있어요. 그걸 저랑 나누고 싶어해요. 그런데 페미니즘에 대해 말을 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요. 제가 남자라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비판적일 수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호의적일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너는 어차피 남자니까’ 그러면 저는 그저 ‘네네’하는 편이었어요. 근데 그러면 또 여자친구 입장에서 어떻게 다 동의할 수 있는지, 의견이 없는지 고민하는게 느껴져요. 서로 조심하다보니 모험을 해보는 게 어떻냐 해서 이 프로젝트에 신청했어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여자친구와 계속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선 결국 언젠가는 마주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맞아요. 애인을 통해서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기는 경우가 친숙하죠. 사실 저도 그랬거든요. 갑자기 책을 읽다가 ‘어? 페미니즘 좋네!’ 이런 사람은 흔치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예전에 만났던 여성 애인이 페미니즘에 되게 관심이 많은 거예요. 뭔지 모르지만 좋아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페미니즘이 점점 그 친구의 삶에서 중요해지니까 저도 엉겹결에 듣게 되고 또 싸우기도 했어요. 성우님이 지금 겪는 걸 대부분의 남성 활동가들이 경험해요. 그걸 어떻게 하면 우리가 조금 더 부드럽게 겪을 수 있을지, 그게 저희의 고민이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마찰도 굉장히 많잖아요. 



“남성으로 느끼는

반발심이 있어요”

☕️ 지금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한   페미니즘에 대해 지금의 인식이 어떤지 궁금해요. 


성우   제가 고등학생 때는 페미니즘이 환경처럼 토론 주제로 쓰였어요. 그때는 그렇게 문제삼을 상활도 아니였고요.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끼겠구나 생각하면서도 또 성별 대 성별로 가다보니까 남성으로서 느끼는 반발심 같은게 있어요.

한   그럴 수 있죠. 저도 그게 가장 문제였거든요. ‘왜 나한테 그러는 거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애인이랑 이야기할 때도, 페미니즘 강의 들을 때도 많이 했었어요. 그럼 유난히 불편하게 다가온 것이 있었나요? 


성우   잘 모르지만, 뉴스 기사를 보면 어떤 성별이 조금 더 특권층이라거나 혹은 어떤 성별이 이 사회에서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볼 때 반발심이 생겨요.


한   그렇죠. 왜냐하면 내 삶이 그렇게 특권이 있거나 유리하다고 느끼기가 어렵잖아요. 남성이지만 인간이고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을 수 있는데, 내 삶이 제대로 조명되거나 이야기하는 거 같지 않다는 불편함이 있어요. 그럼 혹시 주변에 페미니즘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성우   청소년 시기 때는 민주당 지지자인 어머니와 비슷한 성향의 학부모들이 자녀를 보내는 독서 토론 학원을 다녔어요. 책으로 간접적으로 접했죠. 그리고 학교도 성공회대여서 진보적이거나 활동하는 친구들이 옆에 계속 있었어요.

한   독서 토론 학원이나 대학에서 조금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거군요. 그럼 지금은 애인 포함해서 페미니즘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나요?


성우   네. 사회적인 운동이나 활동을 직업으로 가진 친구들과 페미니즘 이야기 해요. 관련된 직업이나 분야가 아닌 친구들과는 아예 안하죠. 근데 페미니즘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작년 5월에 만나고 잘 안만나서 최근에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각자의 불안이

어쩔 수 없이 깊어지죠”

☕️ 고민하는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한   애인과 했던 페미니즘 이야기 중 기억나는게 있나요?

성우   여성들이 느끼는 치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나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한국은 안전한 곳이지 않나,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밤에 다들 잘 다니지 않나, 생각했어요. 근데 밤에 다닐 때 저도 누가 나오면 무섭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근데 그걸 여자 입장에서는 더 크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한국인으로서 K-치안에 대한 자부심이 있잖아요. 저도 해외 경험이 많진 않지만, 다른 나라 가보면 우리나라 정도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예전에 친구가 자취방 구할 때 했던 이야기들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어요. 저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보통 제일 싼 집을 구하잖아요. 저는 그냥 반지하에 살았거든요. 나쁘지 않았어요. 근데 여자 동기나 후배, 친구들은 그런 공간을 아예 대상이 되지 못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외부에 노출이 될 수 있고 위험하다고 느껴지니까요. 그러니까 집을 구하는 비용이 엄청 비싸지더라고요. 도어락이 현관문에 있어야하고 건물 1층에도 있어야 하고. 그걸 들으면서 더 불안하다고 느끼는데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말 돈의 문제가 될 수가 있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이와 비슷하게 저는 안전 이슈에 공감이 많이 갔어요. 사실 불법 촬영 이슈만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불법 촬영의 피해자가 될거란 생각이 잘 안 드는 거예요. 물론 누군가가 찍을 수 있겠죠. 근데 찍은 게 유포될까 생각했을 때, 썩 제 몸을 궁금해할 것 같지 않은 거예요. 그런 일이 흔치 않으니까요. 그에 반해서 여성들의 경우 훨씬 더 공포가 클 수 밖에 없죠. 단지 찍힘의 문제가 아니라 유포되는 게 장난이 아니잖아요. 그걸 보면서 불법 촬영 이슈를 페미니즘 운동에서 이야기할 때 진짜 심각한 문제라고 느꼈어요. 


성우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그럴 수 있다고 느껴져요. 그런데 예를 들어 비동의 강간죄의 경우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어떤 공간에서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성별에 따라 신체적인 구조가 다르기도 하고. 그렇다보니 첨예하게 다툴 수 밖에 없다고 느껴져요. 각자의 불안이 어쩔 수 없이 깊어지고요.

한   첨예한 이슈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희도 비동의 강간죄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 불안에 대해 우리가 간과할 건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했는데 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에 대한 불안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동의에 대해서 우리가 논의를 잘 해야하는데 그것 없이 법으로 이 문제를 빠르게 진행시키려 하다보니 여기에 따르는 오해가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성우   예를 들어 페미니즘이나 사회학은 ‘인간이 백지 상태다’라는 걸 깔고 가는 거잖아요. 인간이 교육받기 전에는 백지이고 교육받은 이후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문화에 따라서 사람이 길러지고 이후 차이가 나는거 잖아요. 근데 사실 연구 결과 같은 걸 보면, 인간은 호르몬에 영향을 많이 받고 성격이나 집중력 등도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요. 그렇다면 성별 간에, 사람 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한   저도 성차(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단적으로 경험하는 성차는 ‘키의 차이’잖아요.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10cm 정도 작아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잖아요. 그랬을 때 성차가 없다고 말하기엔 어려운데요. 근데 성차가 존재하지만,이 차이를 넘을 수 없을 만큼 큰 벽을 두고 있는가 라고 했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체로 인간은 정규분포표로 산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여성과 남성으로 또 나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차이점도 있고 공통점도 있는게 인간의 삶인거죠. 거기에 더해 이 성차가 정말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진 걸까,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걸까, 에 대한 의문이 있어요. 아까 성별 키 차이를 말했는데 그게 나라마다 진짜 달라요. 그것이 성평등 수준의 영향을 받아요. 무슨 소리냐면 성평등한 나라의 경우 키 차이도 줄어요. 성차별이 심한 나라는 키 차이도 커져요. 왜냐하면 성별에 따른 몸에 대한 기대가 있잖아요. 남자는 커야하고, 여자는 왜소해야하고, 이런 기대가 여전히 한국에서 미의 기준으로 있으니까 그러면 성장 과정에서 누군 더 먹고 누구는 덜 먹는 일이 발생해요. 그게 당연히 키 차이에도 영향을 주겠죠. 그래서 정말 성차가 자연적인 차이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전제가 흔들릴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일단 ‘자유롭게 두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이 역할을 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하게끔 두고, 제약을 두지 않는 것이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지점에서도 좋지 않나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게 사회의 필요성이라고 생각해요. 성차가 사회적일 수 있고 문화적일 수 있고, 여기까지 인정하고 거기서 멈추는게 아니라 그럼 어떻게 같이 살아가게 할지가 필요하죠. 


성우   저도 동의해요.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지향해야 한다는 것,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궁금했던 것인데요. 자유로 가자면 말하기가 금지된 영역이 있잖아요.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성매매를 한다거나 성상품화를 한다는 것은 가게에서 음식을 파는 신체적인 노동과 똑같이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것에 편견이 없거나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없다면, 예쁜 가구를 만들어 팔거나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처럼 서비스업의 일종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했는데요. 너무 금기시되는 주제이다 보니 다루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한   성매매 합법화와 불법화에 대한 것, 더불어 성매매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페미니즘에서도 하나의 목소리가 전혀 아니에요. 저도 고민하는 이야기에요. 저는 성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데, 반성매매주의자들은 노동자라고 하지 않아요. 뭐라고 하냐면 성착취 피해자라고 말해요. 이건 거래가 아니라 성착취이다. 근데 다른 진영에서는 이것도 똑같은 노동이라고 말하는거죠. 저도 성노동자들을 낙인하는 거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 놓여서 이 노동을 하는지 잘 모르면서 낙인 찍는게 개인의 삶에서 정당하지 않고, 또 사회적으로 이롭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성노동자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해야할지 저도 미지수이고 고민이 되기도 해요. 


다만 지금 성노동이 가지고 있는 기울어진 상황을 무시한 채로 냅두면 안돼요.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모두에게 자유로운 시장이 되어서 남자도 50% 성노동을 하고 여자도 50%하면 논의가 조금 더 발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살펴보자면 성노동자의 거의 90% 이상이 여성이란 말이죠. 왜 그러냐면 여전히 여성들이 자원을 갖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몸을 자원화하는 수밖에 없는 순간에 놓이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에서 남성인 제가 이걸 이야기하기 되게 어렵고, 특히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뭐랄까,. 몰인격과 폭력을 감히 말하기 어렵더라고요. 사실 성노동에 대해선 여전히 낙인 찍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합법화하자고 하기엔 어려운 입장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장기를 팔지 않는 이유랑도 연결돼요. 어느 지점에선 이건 인간의 존엄과 이어지기에 거래할 수 없고 멈춰야 한다는 걸 정해야한다고 믿거든요. 그 논의에 앞서서 전제되어야 할 건, ‘과연 섹스란 무엇인가, 우리의 섹슈얼리티란 무엇인가’. 이게 특히 남성들의 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남성들의 섹슈얼리티가 되게 빈약하기 때문이에요. 정말 좋은 섹스는 뭐지, 많은 여성들과 섹스하는게 정말 좋은건가, 정말 즐거운 섹슈얼리티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게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많은 폭력과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성우님은 섹슈얼리티에 대해 같이 고민하거나 이야기 나눠보셨던 적이 있나요?


성우   그 자체가 다 사회적인 금기와 연결된 것 같아요.


한    그게 비극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제가 몇년 전에 ‘남성 섹슈얼리티 탐구’ 인터뷰를 했었어요. 본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는지, 내가 남성을 좋아하는지 여성을 좋아하는지, 내가 여성을 좋아하고 섹스하는데 무엇이 좋거나 필요할 때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거절하고 싶을 땐 어떻게 말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걸 직접 탐구해 본 적이 있는지 등을 물었어요. 근데 다들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최근에 ‘포스트 포르노 세미나’를 열었어요. 지금 우리가 만드는 포르노가 폭력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데, 이걸 보지말라고 하면 안 볼까 하는 거예요. 제가 성교육을 하잖아요. 그럼 뭐가 있지? 대안이 별로 없는 거예요.  우리가 비판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싶어서 세미나를 열었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혹시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까운 사람이 있나요?


성우   얘기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한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도 잘 안하나요? 많이 그렇더라고요. 오히려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여자들은 잘하는 것 같아요. 제 주변 여자 친구들이나 페미니스트 동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야한다면 일부러 더 말해요. 근데 남성들은 말하면 큰일나고 혼나, 아니면 문제시 된다고 생각하죠. 물론 이상하게 말하면 안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었는데 고민이 있어도 이야기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내가 돌볼 수 있는 상대가

있는게 중요하죠”

☕️ 남자는 왜 돌보는 친구가 없는가


한   혹시 책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들어봤어요? 진짜 재밌어서 책모임도 했어요. 너무 공감했어요. 저는 30대 접어들면서부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없더라고요. 옛날에는 시덥지 않는 통화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결혼하는 친구, 아이가 생긴 친구도 있으니 전화를 잘 안해요. 전화가 오면 깜짝 놀라요. 누가 죽었나하고. 점점 친구와 소원해지는데 그게 아쉬우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근데 저의 여성 파트너는 친구들과 전화하거나 둘이서도 잘 만나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나는 왜 못하지, 왜 안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성우   남성들 사이엔 돌봄의 문화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죠. 제 여자인 친구들 봐도 서로 엄청 칭찬해주고 필요할 땐 애인처럼 간호해주고 편지도 자주 주고받더라고요. 근데 남성들은 애인이나 가족 정도는 되어야 할법한 일들인데, 그걸 친구들한테 하는 거예요. 굉장히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한   부럽진 않았어요? 저는 부러웠어요. 왜 저렇게 잘해주지? 사실 남자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하면 엄청 간지러워하거나 ‘미쳤냐?’라고 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요즘에 하는 저의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잖아요. 그럼 선물을 사가요. 너무 낯설죠. 별게 아니라 먹을거 같은 거예요. 여자인 친구들 모임 가면 꼭 먹을 게 있더라고요. 소소하게 귤을 사가는 것 말이죠.


성우   맞아요. 항상 입에 넣을게 있더라고요. 


한   저는 그게 당이 떨어져서 그런가 싶었는데, 누가 챙겨오고 먹이고 하는 걸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카페 같은 곳을 한번 들러서 빵을 산다거나, 그런 걸 좀 해요. 그리고 또 부러웠던 게 있는데, 여자친구들끼리 스킨십을 잘하는 거 같아요. 서로 돌봐주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스킨십 있잖아요. 남성친구들 사이에선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거든요. 닿으면 오히려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 내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것도 좀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게 남성들을 자꾸 외롭게 만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왜 더 많은 남성들이 연애에 집착을 할까 고민해보면, 애인이 없으면 스킨십을 할 수 없고 돌봐주지 않고 돌볼 수도 없어요. 물론 사랑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크겠지만 이것도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성우   맞아요. 돌봄 받는 것도 중요한데 내가 돌볼 수 있는 상대가 있는게 중요하죠.

한   저는 거기서 느껴지는 충만감도 분명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돌봄은 어떠세요? 자기 돌봄은 잘 하시는 편인가요?

성우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빼면 거의 안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기간에 해야하는 최우선 목표가 있잖아요. 그걸 우선시하고 나머지는 다 미루는거죠. 


한    모든 걸 다 남성성으로 해석할 수 없지만 그 영향도 큰거 같아요. 특히 일 중심으로 사고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전부 일과 효율, 내가 뭘 할 수 있나, 성공할 수 있나만 신경쓰다보니 돌봄이 뒷전일 때가 많죠. 빨래를 깔끔하게 했다고 일이 나아지는 건 아니니까. 근데 날 돌보는 건 되게 중요한데 그게 안되는 제 모습을 볼 때마다 현실이 엉망이라며 반성을 자주 합니다. 돌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남성들이 돌봄 대신 돈 버는 걸 많이 선택하는거 같거든요. 어쨌든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가 돈 벌고 여자가 돌보고 이런 관념들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여성들도 일을 많이 하죠. 그러면서 여성은 돌봄을 줄여나가고 남성들도 일하면서 돌봄을 같이 하고, 서로의 부담이 50대 50으로 책임질 수 있는게 필요하죠. 근데 남성들이 돌봄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으니까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기쁜 것도

잘 표현이 안돼요”

☕️ 감정 표현에 부정적인 남성성



한   혹시 남자다움, 남성성에 대해 평소 생각해본 게 있을까요?


성우    뭐라고 해야되지. 롤모델 같은 게 없다. 남성성은 안 된다고 하는데, 여성성도 사회에서 안 된다고 하고. 그래서 강화된 남성성이 더 튀어나온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다 안 된다고 하면서 전부 원죄가 있는 것처럼 대하니까. 사람들이 길을 잃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성성은 바꿔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자기 감정 표현에 무딘 것이에요. 쉽게는 잘 안 울잖아요. 슬픈 영화를 봐도 그렇고 애인이랑 헤어졌는데 안 울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엉엉 우는 거예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근데 일부러 그랬나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너무 오랫동안 안하니까 못하는 거죠. 감정 표현하는 게 진짜 어려운거 같아요. 혹시 그랬던 경험은 없으세요?


성우   감정 표현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거 같아요. 기쁜 것도 표현이 잘 안되고요. 들떠도 웃는 것 정도. 감정 표현을 아예, 거의 안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무표정 정도. 계속 이렇게 살아온 거 같아요. 


한   저도 그래요. 근데 그게 아닌 사람은 모르겠어요. 비교가 안 되니까. 그냥 모르는 거예요. 제가 막 페미니즘을 접했을 시기, 친구들과 길을 가고 있었거든요. 그때 여자친구들이 길 중간에서 꽃을 보면서 너무 예쁘다고 사진 찍고 그러는 거예요. 저는 그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우리는 여기부터 저기까지 가야하는데 왜 중간에 저런 사소한 이야기와 감정을 나누고 있지? 그게 저한테 되게 불필요하다고 느껴졌었어요. 근데 사실 인생에서 모든 걸 굳이 필요와 불필요를 나누지 않아도 되잖아요. 이제는 그렇게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들은 20대 때부터 잘 느끼고 나누는 걸 보며 부럽고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싶어요. 


저희 많은 이야기를 했네요. 어떠세요?


성우   페미니즘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막연하게 적대감이나 두려움이 있었어요. 나에 대해 적대적일 것이다 혹은 나를 가르치려 할 것이라는 인식들이 있었고, 성별로 판단되는 것에 약간 억울함도 있었어요. 근데 아무래도 같은 남성분이 이야기해주니까 벽이 낮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이렇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런 인식들이 줄어들 것 같아요. 


한   진짜 다행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한 번 만난다고 당연히 페미니즘에 대해서 갑자기 우호적으로 되거나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잖아요. 근데 제가 물꼬를 틀 수 있을거 같았어요. 이야기나누며 생각보다 우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저희 나눴던 이 대화를 잘 정리해 사람들한테 전하면 ‘그럼 나도 내 친구랑 혹은 애인이나 가족과 페미니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긴 시간 동안 고생하셨어요.


성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너무 재밌었어요. 




💬 한의 코멘트

이제 어색한 사이 대화를 나눴던 때와 시차가 꽤 나게 되면서 그 기억이 다소 흐릿해져 있었는데, 다시 나눴던 대화를 보니 그때의 표정과 말투 등 현장의 장면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참 좋네요~ 이 활동을 하면서 주변에서 ‘어떻게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할 결심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도 처음에는 많이 긴장하고 어려웠지만 성우님과의 대화처럼 우리는 마냥 낯설지만은 않고 분명 많은 접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되면서 대화가 더 즐겁고 편해졌던 것 같아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삶에 꼭 이런 과정이 한 번쯤 찾아오기를 바랄게요~



💬 무수의 코멘트

이번 대화 덕분에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생각을 조금은 더 살펴본 기분이에요. 읽는 동안은 성우님이 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삶이 녹록치 않다는 생각,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을 받고픈 마음, 느껴진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춤하고 멈춰지는 순간들. 나를 적대적으로 여길거 같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소중한 관계에 대한 진심과 이어져요. 저는 성우님에게 그런 소중한 관계가 다채로워지면 좋겠어요. 아끼는 애인, 사랑하는 친구, 애정하는 동료 등 지키고픈 관계를 위해, 페미니즘이 벽이 아니라 문이 되기를 바라요. 이 대화로 그 작은 시작이자 시도를 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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