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 around
Newsletter

No.308 세상의 모든 골목 | 변종모
 
 
 
 
 
 
 
 
 
 
 
 
 
곧 출간될 변종모 작가님의 『세상의 모든 골목』을 사전 연재합니다.

세상의 모든 골목 | 변종모


첫발을 내딛는 순간 생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포르투, 포르투갈 Porto, Portugal


“꼭 일주일만 여행해야 한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말은 시간은 많지 않으나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들렸다. 이 질문을 한 그녀는 모험심이 강한 사람도 아니고 욕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언제나 많은 일에 파묻혀 항상 피곤함을 달고 산다는 이유로 함부로 약속 잡기가 미안해지는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무턱대고 여행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는 일. 그런데 그녀가 먼저 내게 물었다. 긴 여행을 하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니 현실적인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였다. 유럽의 서쪽 끝에 있는 나라 포르투갈은 사실 거리상으로 따져 본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포르투의 골목을 걸어보라고 했다. 어느 골목을 걷더라도 자신이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의 삶을 잠시라도 살아보고 오라고 했다.


하나의 언덕에 하나의 골목 그리고 하나의 노을


2,000년의 역사가 걸음마다 오롯이 남아 있는 포르투는 언덕의 도시이며 골목의 도시다. 수많은 언덕과 언덕의 굴곡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어울린 이곳은 거리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하나의 언덕과 하나의 골목마다 각각 다른 색깔의 노을이 지는 곳. 도심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강은 마침내 도시 끝의 바다와 만나고 그곳에 항구를 번성시켰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그리고 가을이면 가을, 겨울은 겨울대로 또 좋은 곳. 그런 곳이 포르투다. 


포르투는 성격 급한 사람이거나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하루면 다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만약 그런 곳에서 일주일을 지낸다면, 그 누구라도 후회하지 않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이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느낌의 도시는 어느 위치에 숙소를 구하더라도 모자람 없는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든 상관이 없지만 포르투에서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단연 동루이스 1세 다리다. 도시를 크게 끼고 도는 도루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이 다리는 에펠탑을 연상케 한다.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보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가 설계했기 때문이다. 포르투에 도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오고야 만다. 여기서 바라보는 도루강가의 오래된 도시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아주 정교하지만 차갑지 않은, 복잡하지만 허술하지 않은 누군가의 그림 같다. 그 사이사이로 이어지는 아스라한 골목들을 살피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하다.


나는 포르투에 머무는 동안, 도루강 위에 걸쳐진 이 거대한 다리에 올랐다가 강가를 배회하는 일로 하루를 고스란히 보내곤 했다. 나 아닌 누구라도 그럴 것으로 믿는다. 다리의 남쪽 끝으로 내려오면 유명한 포트 와이너리가 밀집한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이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곳을 오래 거닐기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대부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평균 이상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지 않다. 달콤하면서도 싸한 포르투 와인 한 잔은 도루강가의 풍경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준다. 포트 와인 때문에 이곳에 오래 머물며 매일매일 와인 투어를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포르투는 언제든 와이너리 투어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밤이 내리면 도심의 불빛들이 모두 강가로 흘러 내려와 흔들린다. 별빛이 내려앉은 것만 같다. 혼자 온 여행자라도 이 광경 앞에서는 절대 외로움을 느낄 일이 없다. 도착한 첫날부터 이런 식으로 눈과 코와 입이 즐거워진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느 방향이어도 상관이 없다.


둘째 날부터는 그야말로 걷는 일이 전부여야 한다. 알고 걸어도 좋고 모르고 걸어도 상관없지만 시작은 상 벤투 중앙역이었으면 좋겠다. 원래는 수도원이었는데 기차역으로 변했다. 건물 내부는 포르투 역사를 아로새긴 화려한 아줄레주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타일에 정교하게 표현된 거대함에 압도된다. 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과한 장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세밀한 표현들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실제로 역 안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커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을 만큼 인기 있는 곳이다.


역을 빠져나와서 가장 큰 중심가인 도스 알리아도스 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를 만난다. 이 흔하디흔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는 포르투에서만큼은 각별하고 심지어 귀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곳에서 햄버거를 먹다 보니 지금까지 내가 같은 값을 내고 먹었던 햄버거 값이 어찌나 아깝게 느껴지든지. 아무것도 아닌 것들마저 이토록 특별하게 여겨지는 골목을 만난다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시청 앞 골목에 자리 잡은 볼량시장은 포르투의 싱싱함을 볼 수 있는 곳. 그 역사가 백 년이 넘은 곳이다. 우아한 아트리움 구조의 이층으로 구성된 건물들은 아기자기함과 독특함을 갖추고 있다. 이곳으로 포르투의 신선함이 모여들고, 현지인의 활기찬 일상이 더해지고 또 엉킨다. 그런데도 번잡하지 않고 오히려 소담하다. 화려하지 않아서 편하고, 복작거려서 살갑다. 시장 어귀 꽃집에서 꽃 한 송이라도 사서 숙소의 창가에 꽂아두는 날이면 당신은 이곳을 떠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오래된 골목으로 이어진 언덕들과 언덕들을 공룡처럼 덜거덕거리며 기어다니는 트램을 따라 걷다 보면 점점 더 살고 싶어지는 골목들이 등장한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아름다운 서점 렐루 앤 이르마우Livraria Lello & Irmao는 1906년에 문을 열었는데, 그 오랜 시간이 무색할 만큼 보존이 잘 되어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곳이 그냥 동네서점이라는 것. 빼곡하게 진열된 책들 사이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오색찬란한 햇빛이 영롱하게 떨어진다. 책을 구경하기보다는 고풍스럽게 디자인된 실내장식들을 살피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다.


포르투의 골목마다 평범한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곳이 숨어 있다. 이는 포르투만의 유구한 역사와 그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일 것이다. 포르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언덕에 세워진 대성당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과 동 루이스 다리 아래로 이어지는 강가의 카페들.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사람들까지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원히 잊지 못할 풍경이 된다. 나는 그 모든 풍경을 큰마음 먹고 하는 외출 또는 여행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이라는 점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화려한 장식의 기차역을 통해 출퇴근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천 년이 넘은 서점에서 오후를 즐기는 생활. 골목 골목마다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감정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 부러움이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오를 때쯤이면 떠나야 할 시간이 된 당신도 살아본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포르투는 그만큼 사랑스러운 도시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강이 있어서 강을 즐기고 언덕이 있어 언덕을 즐길 뿐이다. 그들이 어디에 앉든 그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리가 된다.

나만의 생에 몰두할 수 있는 곳


포르투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즐기며 산다. 그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여행이다. 산다는 것이 여행이라고 늘 말하고 다니지만 정작 나는 여행처럼 살지 못했다. 이유라면 곁의 것을 즐기지 못하고 가까운 이와 여유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가 그것을 느끼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녀에게는 마냥 아름답기만 한 휴양지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곳은 그녀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곳일지도 모르니까. 그녀의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이 작고 아름다운 도시 포르투였다. 그 도시 어디를 가더라도 그녀는 친근하고 다정한 친구가 사는 골목을 만날 수 있으리라. 잠시 동안이나마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스스로가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마음을 잠시만이라도 느꼈으면 했다.


사실 여행은 시간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면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고, 일상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여행일 것이다. 한 번쯤 그녀가 그런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그 골목에 있었으면 좋겠다. 숙소를 나와 골목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녀는 이미 생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 풍경에 취했다면 와인에 취할 차례

포르투에 도착한다면 꼭 한 번은 경험해 봐야 할 포트와인. 영국인들이 포도의 산미를 줄이고 브랜디를 첨가해 숙성시켜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그리고 진한 풍미의 독특한 와인을 만들었다. 이 맛 때문에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포트와인은 어느 카페에 가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아주 저렴한 와인부터 빈티지 100년을 훌쩍 넘긴 것까지 다양하다. 이 다양함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와인투어를 하는 것이다. 1880년에 오픈한 와인 박물관과 매장을 겸하는 하무스 핀투Ramos Pinto는 모후정원역에서 가깝다. 가장 오래된 와인 회사 크로프트Croft는 1588년에 설립됐다. 제너런 산토스역 근처다. 이 밖에도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와이너리 투어가 많은데 현지 카페나 숙소에 문의하면 된다. 포르투는 작은 도시라 걸어 다녀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지만 낡은 트램을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 해안을 즐겨보시라 권해드린다. 구시가에서 18번 트램을 타고 종점에 내려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레스토랑은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기대해도 되고, 해양 스포츠를 즐겨도 좋다.

변종모 | 오래도록 여행자

쓴 책으로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 등이 있다. 지금은 길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유튜브 ⟨모처럼, 여행⟩(https://www.youtube.com/@maldive9)에서 여행 중이다.

alone&around
alone_around@naver.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수신거부 Unsubscribe

   💬 카카오톡에 [얼론 앤 어라운드] 오픈 채팅방이 있습니다. 코드는 alon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