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골목 | 변종모
첫발을 내딛는 순간 생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포르투, 포르투갈 Porto, Portugal
“꼭 일주일만 여행해야 한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말은 시간은 많지 않으나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들렸다. 이 질문을 한 그녀는 모험심이 강한 사람도 아니고 욕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언제나 많은 일에 파묻혀 항상 피곤함을 달고 산다는 이유로 함부로 약속 잡기가 미안해지는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무턱대고 여행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는 일. 그런데 그녀가 먼저 내게 물었다. 긴 여행을 하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니 현실적인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였다. 유럽의 서쪽 끝에 있는 나라 포르투갈은 사실 거리상으로 따져 본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포르투의 골목을 걸어보라고 했다. 어느 골목을 걷더라도 자신이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의 삶을 잠시라도 살아보고 오라고 했다.
하나의 언덕에 하나의 골목 그리고 하나의 노을
2,000년의 역사가 걸음마다 오롯이 남아 있는 포르투는 언덕의 도시이며 골목의 도시다. 수많은 언덕과 언덕의 굴곡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어울린 이곳은 거리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하나의 언덕과 하나의 골목마다 각각 다른 색깔의 노을이 지는 곳. 도심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강은 마침내 도시 끝의 바다와 만나고 그곳에 항구를 번성시켰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그리고 가을이면 가을, 겨울은 겨울대로 또 좋은 곳. 그런 곳이 포르투다.
포르투는 성격 급한 사람이거나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하루면 다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만약 그런 곳에서 일주일을 지낸다면, 그 누구라도 후회하지 않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이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느낌의 도시는 어느 위치에 숙소를 구하더라도 모자람 없는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든 상관이 없지만 포르투에서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단연 동루이스 1세 다리다. 도시를 크게 끼고 도는 도루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이 다리는 에펠탑을 연상케 한다.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보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가 설계했기 때문이다. 포르투에 도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오고야 만다. 여기서 바라보는 도루강가의 오래된 도시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아주 정교하지만 차갑지 않은, 복잡하지만 허술하지 않은 누군가의 그림 같다. 그 사이사이로 이어지는 아스라한 골목들을 살피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하다.
나는 포르투에 머무는 동안, 도루강 위에 걸쳐진 이 거대한 다리에 올랐다가 강가를 배회하는 일로 하루를 고스란히 보내곤 했다. 나 아닌 누구라도 그럴 것으로 믿는다. 다리의 남쪽 끝으로 내려오면 유명한 포트 와이너리가 밀집한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이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곳을 오래 거닐기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대부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평균 이상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지 않다. 달콤하면서도 싸한 포르투 와인 한 잔은 도루강가의 풍경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준다. 포트 와인 때문에 이곳에 오래 머물며 매일매일 와인 투어를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포르투는 언제든 와이너리 투어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밤이 내리면 도심의 불빛들이 모두 강가로 흘러 내려와 흔들린다. 별빛이 내려앉은 것만 같다. 혼자 온 여행자라도 이 광경 앞에서는 절대 외로움을 느낄 일이 없다. 도착한 첫날부터 이런 식으로 눈과 코와 입이 즐거워진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느 방향이어도 상관이 없다.
둘째 날부터는 그야말로 걷는 일이 전부여야 한다. 알고 걸어도 좋고 모르고 걸어도 상관없지만 시작은 상 벤투 중앙역이었으면 좋겠다. 원래는 수도원이었는데 기차역으로 변했다. 건물 내부는 포르투 역사를 아로새긴 화려한 아줄레주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타일에 정교하게 표현된 거대함에 압도된다. 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과한 장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세밀한 표현들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실제로 역 안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커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을 만큼 인기 있는 곳이다.
역을 빠져나와서 가장 큰 중심가인 도스 알리아도스 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를 만난다. 이 흔하디흔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는 포르투에서만큼은 각별하고 심지어 귀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곳에서 햄버거를 먹다 보니 지금까지 내가 같은 값을 내고 먹었던 햄버거 값이 어찌나 아깝게 느껴지든지. 아무것도 아닌 것들마저 이토록 특별하게 여겨지는 골목을 만난다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시청 앞 골목에 자리 잡은 볼량시장은 포르투의 싱싱함을 볼 수 있는 곳. 그 역사가 백 년이 넘은 곳이다. 우아한 아트리움 구조의 이층으로 구성된 건물들은 아기자기함과 독특함을 갖추고 있다. 이곳으로 포르투의 신선함이 모여들고, 현지인의 활기찬 일상이 더해지고 또 엉킨다. 그런데도 번잡하지 않고 오히려 소담하다. 화려하지 않아서 편하고, 복작거려서 살갑다. 시장 어귀 꽃집에서 꽃 한 송이라도 사서 숙소의 창가에 꽂아두는 날이면 당신은 이곳을 떠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