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와사비 농장 탐험
요기요의 농장 탐험 

킹 와사비를 만나러

요기요 디스커버리 취재를 하며 신분증을 맡긴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었다. 철원 민통선 초소 앞, 미리 신고한 신분이 확인되자 초소의 군인이 차량 출입증을 건냈다. 우리는 지그재그로 놓인 바리케이트를 지나 민통선 내부로 진입했다.


여기가 대한민국의 종점이자 한반도의 자연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문명의 흔적은 포장도로 뿐. 포장도로 양 옆으로 포탄을 맞아 무너져 있는 일제 시대 건물이 세 채 있었다. 그를 지나자 건물마저 없어졌다. 한반도의 완만한 산기슭 능선 사이로 백로와 왜가리들이 천천히 날개를 접으며 논과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이게 한반도의 자연이구나, 강남 3구도 판교도 이랬겠구나 싶은 실감이 밀려왔다.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우리와 왜가리 뿐이었다.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 철원의 와사비 농장
일시 ㅣ 비가 개인 5월의 어느 토요일
장소 ㅣ 철원 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 샘통농장 
탐험 난이도 ㅣ 4.0/5.0  ➡ 출입을 위해 사전 등록이 필요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놀랍게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 시내 권역에서 철원 민통선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그 2시간 동안 도로 풍경은 시간을 역행하듯 달라졌다. 도시고속도로와 LED 전광판을 지나, 탱크가 지나다녀서 도로가 갈라져 있는 2차선 도로와 군부대 입간판들을 지나, 남한의 최북단에 가면 초소를 지나자 농경시대 한반도를 실감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한반도의 과거가 황당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영화 세트같은 풍경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현실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단층 건물 옆으로 현무암으로 짜둔 정원석이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비닐하우스가 줄줄이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무엇을 재배하는지도 알 수 없는 여기가 샘통농장, 한국 농업 현장 중에서도 컬트라 할 수 있는 한국산 와사비의 산실이 된 곳이다. 전화를 걸었더니 드디어 사람이 나왔다. 야전 군인처럼 까맣게 탄 얼굴에 평생 웃어온 사람 특유의 주름이 보이기 시작한 중년 남자. 샘통농장 대표 박상운이었다. 그로부터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었다.

꿈의 와사비

"처음에는 와사비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박상운 대표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원래 철원에서 송어 양식장을 하려 했다고 했다. 철원 물이 그만큼 깨끗해서다. 그러던 중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와사비 농가를 모집한다는 제안을 보게 됐다. 1997년 일이다. 그때 한국에서 와사비는 수요도 공급도 거의 없었고, 와사비를 한국에서 사업 수준으로 키워본 사람도 없었다. 박상운은 가벼운 마음으로 100주를 받아왔다고 회상했다. 철원은 와사비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었다고 봤다.


박상운의 결정은 결론적으로 맞았다. 와사비를 키우기 좋은 환경은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연간 생산량이 2천톤에 불과할 정도고, 세계에서 가장 재배하기 어려운 상용 작물로 꼽힐 정도다. 와사비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제한적이다. 와사비는 수경재배로 기르는 게 일반적이다. 와사비가 자라는 수온이 제한되어 있다. 9도에서 16도 사이. 이 온도의 물이 대량으로 흐르고 햇빛이 별로 없는 그늘진 곳에서 와사비가 자란다. 시원하고 깨끗하고 그늘진 곳은 세상에 많지 않다. 와사비 소비량이 가장 많은 일본을 포함해 대만 남부, 뉴질랜드, 미국 오리건 주 등에서 양산에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철원 민통선 지구가 와사비 농업 조건에 기막히게 부합하는 땅이었다. 남한 북부이니 여름에도 기온이 높지 않다. 철원은 제주와 더불어 한국에 몇 안 되는 현무암 지대다. '화산암반수' 제주 삼다수에서 알 수 있듯 현무암 지역 물이 맑다. 현무암에 난 미세 구멍들이 자연 필터 역할을 해서다. 시원하고 깨끗한 곳의 가장 큰 적은 사람이다. 여름에도 시원하고 깨끗하며 물이 콸콸 흐르는 곳을 우리는 계곡 관광지라 부른다. 민통선은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다. 애초에 민간인 진입이 차단된다. 허가 받은 일반인도 일몰 30분 전에 모두 떠나야 한다. 아직도 안전지역을 벗어나면 매설 지뢰를 걱정해야 한다. 깨끗할 수밖에. 역사의 비극이 역설적으로 천혜의 와사비 산지를 만들어준 것이다.

천혜의 와사비 산지에서도 박상운은 처음엔 실패했다. 관련 데이터가 없었으니 어떤 상태가 와사비가 자란 상태인지도 알 수 없었다. 첫 장애물은 물의 속도. 와사비는 얕은 개천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크는 식물이다. 우리가 와사비라 부르는 건 와사비의 뿌리를 간 것이다. 물이 천천히 흐르면 와사비가 썩는다. 너무 빠르게 흐르면 씨가 떠내려간다. 땅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17개월은 지나야 상품화가 가능할 만큼 큰다. 박상운은 물길을 넓혔다 줄였다 해 가면서 물의 빠르기를 조절했다.


물의 빠르기를 조절해서 와사비 재배에 성공하자 판매가 문제였다. 고급 일식집이 있는 호텔에 와사비를 가져갔더니 "한국에 와사비가 어디 있냐. 일제 갖고 와서 장난치지 마시라." 라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박상운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와사비를 키웠다. 호텔 납품을 시작으로 와사비 농업이 상업화가 가능해졌다. 듣는 내내 존경이나 감탄을 넘어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증명하는 풍경이 내 눈 앞에 있었다. 박상운이 만든 것을 보러 갈 시간이었다.

어른의 꿈

박상운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자꾸 우리에게 몇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따라다니다 보니 그럴 만 했다. 밖에서 보기엔 똑같아 보이는 비닐하우스에 하나하나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비닐하우스들은 영화 '아이언맨'의 수트같은 발전의 결과물이었다. 첫번째 타입은 유속을 제어할 수 있는 기본 타입. 박상운은 그 위로 식물 생장에 도움이 되는 '퀀텀닷 LED(왠지 이 이름도 아이언맨에 나오는 신기술 풍이다)'등을 달았다. 세 가지 조건(자연광, 일반 LED, 퀀텀닷 LED)에서의 생산 효율을 비교한 데이터도 있다고 했다. 그는 감성적으로 말하는 한편 끊임없이 현실에서의 증명을 강조했다. 근대인이었다.


박상운이 말하는 샘통농장 와사비 비닐하우스의 발전상은 크게 3단계다. 1단계가 와사비 농업이 가능한 비닐하우스였다면 2단계는 농생산 효율 증대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비닐하우스 농업인 만큼 여름이 되면 온도가 올라간다. 그는 온도를 낮추기 위해 비닐하우스 천장에 스프링쿨러를 설치했다. 여름에도 차가운 철원의 지하수를 흩뿌려 온도를 줄이는 개념이다. '퀀텀닷 LED'역시 농생산 효율을 늘리는 기법 중 하나다. 

3단계는 해당 절차의 자동화다. 이제 농업도 IOT 기술을 받아들여 컴퓨터를 통한 생산통제가 가능해진 시대다. 박상운은 외부 업체와 협업해 와사비 농업의 주요 설정값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바꿔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여기서의 걸림돌은 의외로 와이파이였다. 민통선 지역이라 인터넷 회선이 설치된 시점이 불과 5년 내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박상운은 하나씩 자신의 와사비 월드를 만들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었다.


최신형 와사비 농업 비닐하우스, 말하자면 샘통농장 4.0을 보여준 뒤 박상운은 마지막 비닐하우스로 이동했다. 청정 철원에서 와사비 농업 데이터를 쌓은 결과 박상운은 더 큰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흐르는 물이 아닌 곳에서도 와사비 재배가 가능한 실내 농업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요기요 디스커버리에 나왔던 인도어 팜 모델을 와사비 농업에서 구현한 개념이다. 양액과 수분, 온도 등의 데이터를 확보해 농촌진흥청 지원사업 심사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은 우수 모델이다. 이 이야기를 할 때 박상운은 기뻐 보였다. 단순히 성공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런 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걸 현실에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사람의 기쁨이었다. 


박상운이 처음 와사비 소식을 들은 게 1997년이다. 와사비 농업에 데이터가 쌓이고 표준화되어 타지 보급이 가능해지기까지 26년이 걸렸다. 

꿈을 이루고 나면

26년.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와사비가 박상운이 원래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원래 송어 양식을 하려 했다고 했다. 사기도 당하고, 수해도 오고, 물(생수)공장 제안도 받고("그랬으면 돈은 많이 벌었겠죠." 라고 박상운은 말했다), 사고도 났다가, 결국 와사비가 그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와사비 비닐하우스가 끝나는 곳에 송어 양식장이 있었다. "원래 이걸 하려고 했던 건데..." 박상운이 살짝 웃으며 송어 양식장으로 들어갔다. 송어들을 보며 박상운이 먹이를 뿌렸다. 송어들이 솟구쳐 어항 위로 파도가 생겼다. 송어 양식장을 마지막으로 박상운이 만들어낸 샘통 월드 견학이 끝났다. 뭔가 대단한 걸 봤을 때 특유의 기분이 있다. 대단한 스포츠 퍼포먼스를 봤을 때 스포츠 문외한이라도 감탄하는 것 같은 기분. 샘통농장을 다 봤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견학이 끝나고 박상운이 만들어 둔 상업시설에 들렀다. 그는 이제 주로 개인간 거래로 와사비를 판다. 그의 와사비는 인터넷에서 살 수 있고 상당히 비싸다. 이런 와사비를 사는 사람들은 상당한 미식가일 듯하다. 와사비 뿌리의 부산물로 만든 와사비 잎이나 줄기 장아찌도 있다. 박상운은 자신이 파는 것들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침 이 때만 나는 와사비 꽃 장아찌도 있다고 했다. 와사비 꽃 장아찌를 판다는 말에 나는 홀린 듯 카드를 꺼냈다. 분위기가 조금 더 화기애애해졌다. 


박상운은 직접 만들었다는 와사비 아이스크림을 뽑아 주었다. 맛있을 거라는 건 먹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마포구의 아이스크림 왕 녹기 전에 대표 박정수는 일찌기 이런 명언을 남겼다. 웬만한 건 얼리면 다 맛있다. 와사비 아이스크림 역시 박정수의 명언대로였다. 미쉐린 가이드의 기준을 인용하면, 이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박상운이 와사비 100주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온 26년 동안 민통선 바깥 세상에서도 여러 일이 있었다. 1998년에는 지네딘 지단의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2001년에는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다. 아이폰이 나오고 온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며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고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치렀다. 박상운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민통선 안에서 와사비를 키우고 공정을 고도화시킨 끝에 마침내 표준화시켰다. 이 역시 혁신이다. 


그러나 혁신이든 아니든 누가 뭐라 부르든 어떤가. 박상운은 자신이 한 일과 그 가치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임무가 있는 인간은 지치지 않고, 그는 자기 삶의 꿈과 임무를 계속 만들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취재가 끝나고 민통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 우리는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는 떠나는 우리를 바라보며 아무도 없는 샘통농장에서 손을 흔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한국 최초이자 최대의 와사비 농가가 된 곳에서 손을 흔들었다.

🌱 와사비인가 고추냉이인가 

박상운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때 계속 자신의 작물을 고추냉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이름을 전부 와사비로 고쳤다. 이유는 와사비와 고추냉이가 다른 작물이기 때문이다. 와사비와 고추냉이는 학명부터 다른 식물이나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상 혼용되고 있다. 혹시 박상운을 만난 뒤 박상운이 고추냉이라고 불러도 적당히 와사비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 와사비 잎과 꽃 장아찌의 맛은 어땠는가

와사비 잎과 꽃의 맛은 와사비 본연의 맛과 상관이 있다. 와사비의 맛은 쓴맛, 매운 맛, 단맛으로 구분된다. 상품 와사비일수록 복합적인 맛 안에서 단맛이 올라온다고 한다. 샘통농장의 와사비 잎과 꽃 장아찌 역시 그런 맛이었다. 와사비 잎 장아찌는 명이 장아찌와 비슷하고 조금 더 맛의 복잡도가 높았다. 맛의 채도와 해상도가 높았달까. 꽃 장아찌 역시 그랬다. 흔히 장아찌와 곁들이는 기름진 수육 등과 잘 어울리는 건 물론, 물기를 짜내고 잘게 썬 뒤 샐러드나 파스타에 허브처럼 뿌려도 좋을 것 같았다.

에디터 박찬용 @parcchanyong

잡지 에디터. 소비생활의 곳곳을 구경하며 정보를 채집하고 편집한다. 아레나 옴므 플러스의 피처 디렉터로 일하며 한층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구경하게 되었다. 이번 요기요 디스커버리 레터가 발송될 때에는 또 어딘가의 뭔가를 구경하러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을 것이다.

포토그래퍼 표기식 @pyokisik

한국에서 가장 이채로운 포트폴리오를 가진 사진가. 매일 강물의 표면과 나무의 껍질을 담는 틈틈이 기사, 화보, 광고 등 다양한 사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사진에 새기는 표기식만의 눈이 있다. 요기요 디스커버리는 그동안 그의 눈에 큰 신세를 졌다.

요기요 디스커버리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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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농장에 다녀왔습니다. 민통선 안에 들어가본 경험은 처음이라 디스커버리 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모두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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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피자 키친 탐험'으로 첫인사를 드렸던 요기요 디스커버리가 올 6월을 마지막으로 휴식 기간을 가집니다.  그동안 디스커버리를 보시며 궁금했던 점, 꼭 묻고 싶었던 점이 있으셨다면 무엇이든 물어봐 주세요.
6월 7일 수요일 발행될 레터에서 답변해 드릴게요. 

* 질문 작성 기간: ~6월 1일 목요일 
* 분량 관계상 몇 가지 질문을 선정해 답변드릴 예정입니다. 
   모든 질문에 답변드리기 어려울 수 있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 다음 호는 6월 7일에 발행됩니다. 2년간의 푸드 탐험을 돌아보는 레터를 준비하고 있어요. 
요기요   I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8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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