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암 동굴은 외부로부터 물이 공급되는 한 꾸준히 성장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만일 특정 시기에 벽면에 그림이 그려졌고 그 위를 새로운 석회 생성물이 덮었다면, 안료 위 석회 생성물 연대를 측정해서 그림이 그려진 최소한의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우라늄 계열U-series 연대 측정법은 이런 환경에서 생성된 석회층의 연대 측정이 가능한 기술이다. 이를 통해 술라웨시 동굴에서 유럽의 동굴벽화보다 더 오래된 것들을 발견했고, 그 결과가 언론을 통해 자극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유럽에서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벽화는 스페인의 엘 카스티요El Castillo 동굴의 ‘손 프린팅’이다. 대략 4만 500년 전 무렵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술라웨시 레앙 테동게Leang Tedongnge 동굴에서 측정된 연대는 그보다 5000년가량 더 오래되었다(4만 5400년~4만 6400년 전). 아시아의 이 새로운 연대를 유럽 연구자들이 받아들이려면 좀 더 많은 자료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물론 유럽에도 6만 년이 넘었다고 추정되는 벽화들이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어디가 더 오래된 것이냐의 논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유럽의 동굴벽화를 보면서 들었던 의구심은 ‘지나치게’ 잘 그렸다는 것이다. 기술이든 문화든 대개는 출현기의 어수선하고 조악한 단계가 있고, 뒤이어 발전기를 거쳐 전성기의 화려하고 세련된 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잡한 쇠퇴기의 모습을 보여주게 마련이다. 이에 비해 유럽의 동굴벽화는 거두절미하고 갑자기 ‘전성기스러운’ 모습만 뚝 잘라서 보여주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유럽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출현기의 조악한 벽화들이 얼마든지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연대가 술라웨시보다 빠를 수도 있다. 즉 인도네시아에 있는 ‘유럽보다 이른 시기의 벽화’들도 그와 같은 관점에서 수용되고 상호보완적으로 연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술라웨시의 동굴벽화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레앙 테동게Leang Tedongnge 동굴에는 최소 4마리 이상의 야생 돼지와 엉덩이 가까이에 손 프린팅들이 남아있다. 야생 돼지는 지역 고유종인 술라웨시 워티피그의 유사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붉은색의 안료를 사용했고, 좀 더 밝은색으로 등줄기를 따라 긴 털을 강조하고 있다.(그림 1) 이 그림을 덮고 있는 얇은 석회층에서 4만 3000년∼4만 6000년 전이라는 연대가 측정되었다. 한편 이곳에서 가까운 레앙 발랑가지아Leang Balangajia 동굴 역시 야생 돼지와 손 프린팅이 남아있다. 그림으로 묘사된 야생 돼지의 크기는 몸길이 1.1미터에서부터 2미터에 이른다. 그림의 기법은 유럽의 벽화들과는 사뭇 다른데, 면을 칠하지 않고 길쭉한 선들을 촘촘하게 그어가며 입체감을 표현했다. 곧고 짧은 선들에서 야생 돼지의 빳빳한 털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상당히 인상적이다. 한편 마로스 팡켑Maros Pangkep 동굴에는 물소의 일종인 아노아Anoa와 다수의 손 프린팅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와 가까운 호주 대륙의 북동부에도 동굴벽화들이 남아있다. 아넘랜드Arnhem Land 지역의 동굴과 바위그늘에서는 대략 4만 년 전 무렵으로 추정되는 벽화들이 발견되고 있다. 지역 고유종인 캥거루와 일부 태즈메이니아 호랑이Thylacinus cynocephalus와 같은 멸종된 동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 지역의 그림들도 대부분 붉은 계열의 안료를 사용했고, 면을 칠하기보다는 많은 선들로만 묘사하고 있다. 그림 기법은 벽화 제작자들이 인도네시아 지역과 유사한 집단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