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발전할수록, 아이의 생각은 얼마나 깊어지고 있을까요?
며칠 전, 연세대 수시 논술시험에서 스마트 안경을 쓴 수험생이 적발됐다는 기사를 봤어요.
시험 전에는 일반 안경으로 검사를 받고, 시험이 시작된 뒤 바꿔 썼다고 해요. 결국 시험 도중에 적발됐고요.

얼마 전 메타 행사에서 저도 스마트 안경을 써봤거든요.
솔직히 첫 느낌은 이랬어요. ‘왜 이렇게 느리지? 이걸로 뭘 하라는 거지?’
저는 써보고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벌써 시험장에 가져갈 생각을 한 거예요.

부정행위는 당연히 잘못이죠. 그런데 저는 그 기사를 보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생기겠구나’ 싶었어요.
이번에는 안경을 검사하고, 다음에는 또 뭘 검사해야 할까요. 기술은 계속 나오는데 우리는 뒤에서 막을 방법을 찾고 있는 거예요. 
막아야 할 건 막더라도, 그 이야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 촬영으로 만난 고려대 교수님과도 AI 이야기를 나눴어요.
대학원생들이 과제나 논문을 쓸 때 AI를 많이 사용하는데, 읽어보면 너무 AI가 쓴 티가 난다는 거예요. 책도 많이 쓰셨고, 오랫동안 글을 써오신 분이거든요.
저는 웃으면서 말씀드렸어요. 그 학생들도 ‘AI 티를 잔뜩 내서 제출해야지’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아마 본인들 눈에는 괜찮았을 거라고요.

오래 글을 써온 사람은 ‘뭔가 한 끗이 빠졌는데’ 하고 느끼는 부분을, 학생들은 못 봤을 수도 있잖아요.
문체로 AI 사용 여부를 정확히 알아낸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같은 글을 보고도 알아보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어요. 
무엇이 부족한지 안 보여서 못 고치는 거라면, AI가 더 좋은 글을 써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겠더라고요.

저도 AI를 많이 써요. 편하고, 도움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쓸수록 ‘이제 내가 덜 알아도 되겠구나’보다는 ‘내가 더 알아야겠는데?’ 싶습니다. 받아놓은 답을 알아볼 눈은 제 것이어야 하니까요.

요즘 제가 느끼는 변화는 그거예요. 평균이 높아지고 있어요.
사람들의 실력이 하루아침에 다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고요. AI의 도움으로 누구나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거죠.
자료를 정리하고, 형식을 갖추고, 매끄럽게 설명하는 일. 예전에는 그것만 잘해도 꽤 잘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앞으로는 옆 사람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사람에게도 AI가 있으니까요.

AI는 앞으로 더 잘할 테고요. 제가 안경을 써보고 느꼈던 그 답답함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이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도구를, 훨씬 많은 사람이 쓰고 있겠지요. 
그때는 ‘이만큼 잘 만들었어요’ 다음에 무엇이 더 있어야 할까요.
저는 결국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했는지가 보이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같은 자료를 보고도 남들이 지나친 부분에서 멈추는 사람. 설명은 그럴듯한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빠졌다는 걸 알아보는 사람이요.
그래서 더 높은 문해력이 필요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의 뜻을 이해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무엇을 근거로 한 말인지,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 누구의 입장은 빠져 있는지까지 읽어내는 힘이요.

그렇게 읽어낸 것을 내 글로 풀어내려면, 글쓰기에도 더 높은 수준이 필요하겠지요. 매끄러운 문장은 이제 AI도 써주니까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다른 입장에서 봐도 그 생각이 맞는지,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따져서 쓰는 힘이 더 중요해질 거예요.
AI가 써준 문장이 내 생각보다 훌륭해 보일 수는 있어요. 그렇다고 내 생각까지 그만큼 깊어진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 차이를 놓치면 안 되겠더라고요.

잘 읽고 잘 쓰는 것만으로 끝나지도 않아요. 무엇이든 빨리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제는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일이 중요해지니까요.
저는 여기서 가치관도 훨씬 더 섬세해져야 한다고 느껴요. 
사람들이 좋아할 말이라고 다 해도 되는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할 수는 있지만 하지 않기로 하는 것. 다들 괜찮다는데도 나는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런 판단에도 자기가 오래 생각해온 기준이 필요할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그런 데서 느껴져요.
이 사람은 여기까지 생각했구나.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저런 선택을 했구나. 글과 행동에서 그 사람이 보이는 거예요.
잘 만들어진 결과물이 흔해질수록, 저는 그 안에 담긴 생각과 기준을 더 궁금해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아이에게 하던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성적 올리고, 좋은 대학 가면 된다고요. 그렇게 말해주면 저도 편하겠어요. 적어도 어디로 가라고 해야 할지는 아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됐을 때도, 제가 아는 그 길이면 충분할까요. 저는 이제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성적과 대학이 의미 없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것을 준비하면 아이의 미래도 준비되는 건지, 이제는 정말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대학원에 들어간 뒤에도 자신이 제출하는 글에 무엇이 부족한지 모를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갔는지만큼 그동안 무엇을 쌓았는지도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힘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AI 시대니까 아이를 더 바쁘게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책을 한 권 더 읽었는지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읽어냈는지. 자기 의견을 말했는지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다른 이야기를 듣고 자기 생각을 고칠 줄도 아는지요.
반듯하게 완성된 글을 보고 흐뭇해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아이가 그 안에 담은 생각까지 궁금해하는 엄마이고 싶습니다.

저는 혜린이가 AI를 잘 썼으면 좋겠어요. 좋은 도구가 있는데 잘 써야죠.
재미있는 것도 많이 만들고, 엄마는 생각도 못 한 일도 해봤으면 해요. 다만 그 결과물을 보고 ‘AI가 참 잘했네’ 하고 끝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혜린이는 여기까지 생각했구나.’
그 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그냥 넘긴 걸 왜 다시 들여다봤는지, 무엇이 중요해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안에서 아이가 보였으면 해요.
아이가 손에 쥘 도구는 앞으로도 계속 좋아질 테니까요. 저는 그 도구를 쥔 아이의 생각이 얼마나 깊어지고 있는지, 거기에 더 마음을 쓰려고 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