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의 작가'를 발표합니다!
✨ 내일의 작가 ✨
어느덧 2022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다들 불쑥 지나간 한 해와 성큼 다가온 한 해에 어떻게 ‘안녕’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그럼, 마지막으로 수연이 선정한 ‘내일의 작가’를 발표합니다!
이목제이 어게떻 읽나히요
글. 수연
“뻘레 많코 온쓔는 나오다 말다 해여. 방음 전효 안댑니댜.”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후기라고 화제가 된 문구다. 해석하자면 ‘벌레가 많고 온수는 나오다가 말고, 방음은 전혀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굳이 해석할 필요도 없다. 이미 다들 이렇게 읽고 읽지 않았을까. 그럼 이 문구는 어떤가?
“이말거고 지처금럼 네자글씩 순바서꿔 써돼도요. 이하상게 한인국은 읽수을가 있든거요. 이역거시 번기역론 안와나요.”
정밀하게 따지자면 띄어쓰기부터 틀렸지만, 이상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 언어란 참 기묘하다. 어떤 단어 하나가 탑재되면 이후에 자음이나 모음을 틀리거나 음절이 뒤바뀌어도 맥락을 살피며 문장에 맞게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언어는 얼마나 지배적일까? 틀리게 적어도 원뜻을 다 알아채는 일은 우리에게 습관과도 같으며, 어쩌면 적당히 알아듣도록 훈련받은 것이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이 보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시각 체계에 안주하며 ‘보는’ 행위만큼은 대체로 왜곡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어는 화자의 의도를 감지하고 해석해야 하는 소통 방식이며,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과 맥락이 중요하므로 틀린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명제가 들어맞지 않는다.
노한솔은 텍스트가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인간이 선입견에 의해 단어를 왜곡하여(사실은 올바르게) 읽는 현상에 집중한다. 노한솔이 선택한 문구는 ‘둥근세상’, ‘주차금지’, ‘통행금지’, ‘입춘대길’ 등 단어의 뜻에 그치지 않고 이미지까지 연상될 정도로 우리 사회에 상징적으로 자리 잡은 단어다. 그는 이러한 단어의 음절 순서를 바꾸어서 이미지와 함께 제시한다.
노한솔, 〈둥근세상〉, 2022, 장지에 먹과 스프레이, 53×65.1cm.
(이미지 출처: http://www.arthub.co.kr/sub01/board05_view.htm?No=45352)
〈둥근세상〉(2022)은 ‘둥세근상’이라는 텍스트가 ‘둥근세상’으로 읽히는 단어 우월 효과를 보여준다. 단어 우월 효과란 사람이 단어를 인식할 때 개별 문자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단어의 총체적 이미지로 인식하는 효과를 뜻한다. 즉 어떤 단어를 구성하는 동일한 문자들이 단어 속에 비정상적인 순서로 배열되어 나타나도 가독성에서 이를 무리 없이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둥근세상〉은 ‘언어’라는 프레임이 우리 삶에 얼마나 지배적인지, 그리고 텍스트나 우리를 둘러싼 상황에 대하여 순간적으로 빠르게 내리는 판단이 과연 신뢰할 만한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노한솔, 〈손에 손잡고〉, 2022, 장지에 먹과 콜라주, 17.9×25.8cm.
(이미지 출처: http://www.arthub.co.kr/sub01/board05_view.htm?No=45352)
〈손에 손잡고〉(2022)는 영화 자막을 회화에 빌려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드러낸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뒤죽박죽 손을 잡고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손과 손이 뒤엉켜 서로를 찾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손을 잡고 싶어 하는 사람과 손을 빼려는 사람이 구분돼 있다. 여기서 우리는 ‘손에 손잡고’가 전 세계의 화합을 주제로 하는 ‘그’ 노래가 맞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해당 노래가 지닌 상징적 의미와 그럴듯한 이미지가 우리에게 인식되는 과정에서 둘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이것이 의도되었든 아니든, 우리는 ‘손에 손잡고’라는 노래 가사를 보고 상징적이고 유명한 한 노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노한솔은 언어가 가진 기호로서의 형태를 표현방식으로 삼는다. 예술가는 언어와 이미지를 결합해 연관성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의미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의외의 결합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노한솔이 택한 기호적 구성 방식의 표현은 언어의 다양한 기호적 작용들이 서로 겹치는 것으로, 언어, 텍스트를 표현방식으로써 사용하였다.
우리는 대개 이미지는 보이는 대로 해석하려 하고, 선입견을 꿈틀대게 하는 문구는 기존에 알던 대로 해석하려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어느 상황에나 들어맞을까? ‘틀림(혹은 다름)’을 의도한 것을 애써 자기 시각에서 고쳐보려고 한 것은 아닐까? 이제 ‘둥세근상’이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나’의 편견과 시각에서 조금 눈을 떼어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 수연
별관에서 진행한 《둥세근상》(2022)과 일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2022~2023)이라는 전시에서 노한솔 작가님의 작품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장지에 물감을 덧바르거나 글자를 콜라주하는 방식도 눈여겨보게 되었고요. 다들 2022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올해는 사건이 참 많았습니다.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은 채, 몇 시간 후 다가올 2023년에는 모두가 안전하길 바라봅니다.
19호
발행인: 땡땡 콜렉티브
발행일: 2022/12/31
문의: 00collective2021@gmail.com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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