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손해보는 기분🇹🇭

Dear

오늘 밤도 당신을 생각하며 편지를 써.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소중한 내 가방

에게

안녕, ! 벌써 2주 만이네. 내가 지난 주 편지에서 했던 말 기억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좋아~"라고 했던 말...내가 그 말을 편지에 쓰고 바로 다음 날, 코앞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어. 여행에서 벌어지는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멘탈이 부서지더라고...짐은 수화물에 이미 부쳤고 출국 수속까지 다 마쳤는데, 최종 게이트에 CLOSED 표시판을 발견한 기분...지금 생각해도 정말 소름이 돋네.

출국수속한 역순으로 쏘리 쏘리 하면서 내가 늦은 상황과 그 이유를 구차하게 설명하며 밖으로 나가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더라 ㅋㅋㅋ(비행기를 놓쳐서 안 사실이지만, 짐을 부쳤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안타면 짐이 도로 나와서 해당 항공사 사무실에 분실물로 보관돼...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려주지만 에게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좋다...? 그 때의 나를 찾아가 한 마디 하고 싶어지더라.

(아이유 찐팬 목소리로) 좋긴 뭐가 좋아!

▲장염에 걸려도 투어는 멈출 수 없다

심지어 가장 좋았던 푸켓 일정 중 마지막 날, 과일을 엄청 먹어서인지 장염에 걸리고 말았지 뭐야... 에게 지난 주 편지를 못 쓴 이유이기도 한데...조금이라도 뭘 먹으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니 배가 아픈 건 둘째치고 기운이 쭉쭉 빠지더라고. 평소에 식욕이 많지 않은 나지만, 여행에 와서 맛있는 음식들을 못 먹으니깐 너무 짜증나는거 있지. 괜히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기분, 뭔지 알아? 딱 그런 기분이었어.

만약 미리 한국에서 투어를 신청해두지 않았다면 분명 숙소 침대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을거야. 속은 부글부글 끓고...폭발 직전이었어.

힘든 일에 힘든 일이 겹치고, 여유보다는 퀘스트 깨듯 돌발상황들을 해결하다보니깐 여 지쳐갔어.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것에 하나하나 스트레스를 받았던거야. '아니, 에어아시x는 왜 안내도 없이 문을 닫는거야?', '이 호텔은 도대체 인셉션에 아무도 없어서 고생하게 만들어', '예약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라는거야?' 등등 셀 수 없는 불평을 하면서 말이지.

나중에는 '내가 원하던 여행이 이게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렇게 공항 어딘가에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을 무렵, 이제 막 비행기에서 내린 듯한 사람들이 해맑게 웃으며 내 옆을 지나갔어. 처음에는 아무 문제 없이 수월하게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얄밉게 까지 생각했는데, 문득 돌아보니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여행을 마무리하거나 준비하고 있더라고. 나만 짜증을 내고 있었던거야. 모든 일에 스트레스 받고 불평하면 손해보는 건 누구일까? 그건 바로 나 뿐이었어. 내가 화를 내면 나만 손해였던 거야.

나는 침착하게 심호흡하고 생각했어.

'그래, 어쩔 수 없지. 이미 내 손을 떠난거야. 아무리 후회하고 불평해도 되돌릴 수는 없어. 그래서. 그래서 지금 내가 이 시점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뭘까?'

이렇게 생각하니, 흥분됐던 마음은 한층 가라앉았고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거야.

그래, 우린 항상 최고일 수는 없어. 최선을 다할 뿐이지.

▲푸켓 빠통 비치 노을

다행히 지금은 한결 괜찮은 상태야. 오랜 만에 장염 때문에 못 마셨던 커피를 마셔볼까해서 브런치를 먹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파란만장했던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면서 편지를 쓰는 중인데...여기까지 잘 견뎌낸 내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네..ㅎㅎ

그래도 장염 전까지는, 아니 장염 중에 힘들게 다녔던 여행까지도 정말 좋았어. 특히 물이 진짜 맑아서 '파라다이스'라는 식상한 말조차도 찰떡같이 붙는 섬, 푸켓. 빠통 해변에서 붉게 물드는 노을을 마주했는데, 천국에 해변이 있다면 여기 빠통 해변도 한 자리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을만 바라봐도 '아, 여기오길 정말 잘했다'라는 마음이 드는 곳이었어.

이 외에도 푸켓 펍에서 가나 사람과 함께 월드컵 가나 전을 봤던 경험도 생각나네. 정말 한 골 한 골 치고 받을 때마다 서로를 스윽 쳐다봤는데...결국 지고 말았지 ㅜ대신 방콕 람부뜨리 거리 펍에서 모르는 한국인들이랑 포르투갈전을 봤는데 역전골 넣었을 때 누구할 것 없이 부둥켜 안고 방방 뛰었어 ㅋㅋ

아 정말, 하고 싶은말이 한 보따리인데...이 참에 여행 끝나면 블로그를 한 번 해볼까 고민중이야.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남겨둬야 겠어. 너무 구구절절이라 에게 쓰지 못했던 이야기도 블로그에 남겨보려고. 도 놀러와줄거야?

우당탕탕 동남아 일주를 통해 무엇보다 멘탈을 다스리는 힘이 강해진 것 같아. 숙소의 하수구가 막혀있으면 재빨리 증거사진(?)을 모아 호스트에게 항의하여 방을 바꾸고, 택시가 안 잡히면 '빔'을 타고 가고, 비행기를 놓치면 이 시간 이후로 가장 빠른 비행기 시간을 알아보고...여행 시작 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겪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야.

에게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방법이 있어? 혹은 멘탈을 관리하는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의 이야기도 궁금하네 ^^

나는 이제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어.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큰 탈 없이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무사히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어. , 응원해줄거지?

그럼 다음 주에 다시 편지할게. 안녕!

2022.12.09 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