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가 호루스 신에게 향을 바치는 모습(필자 직접 촬영).
이집트 에드푸 신전의 벽에 새겨진 부조(浮彫, Relief)로
두툼하고 넓은 발바닥 위로 곧게 뻗은 정강이와 허벅지, 랩스커트처럼 하체에 둘러진 옷 위로 묶여있는 끈, 그 위에 역삼각형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상체, 그 상체에서 뻗어져 나오는 유난히 길고 강인한 팔. 그리고 각진 팔꿈치를 지나 두꺼운 손목과 평평한 손바닥이 받치고 있는 기다란 막대, 그 끝에서 피어오르는 것. 그것은 향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말했는데, 요즘 우리는 도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에 묶여있는 것 같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향을 사용했을까” 여기서 시작된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도대체 인류는 언제부터 향을 사용했을까”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새해의 두 번째 태양을 보며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집트는 구약성서를 비롯해 고대 기록들에서 찾을 수 있는 향의 기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꼽히는 기자 피라미드(Giza Pyramid)를 비롯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세워진 계단식 모양의 사카라 피라미드(Saqqara Pyramid),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아부심벨(Abu Simbel) 신전, 룩소르(Luxor) 신전, 카르나크(Karnak) 신전, 에드푸(Edfu) 신전 등 모든 유적의 벽면에는 향을 피우는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현재는 채색이 많이 지워진 상태지만 도대체 몇 명이나 동원되었을지 가늠조차 안 되는 크기와 정교함을 보고 있자니 수 천 년 전의 돌 위에 새겨진 조각 위에 색을 입히면 마치 홀로그램처럼 역사 속 장면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향을 피우는 모습이 새겨진 부조에는 왕과 신이 함께 등장했다. 에드푸 신전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속 부조의 왼쪽에 있는 사람은 파라오, 즉 왕이고 오른쪽 사람의 몸과 매의 머리를 한 존재는 바로 하늘처럼 높은 왕권과 치유의 힘을 상징하는 신, 호루스(Horus)이다. 왕의 안쪽 팔이 들고 있는 것은 고대의 향로 ‘아르메스(armes)’이고 이 향로의 왼쪽 끝에는 매의 머리 모양을 한 장식이, 오른쪽 끝에는 작은 용기가 놓여 있다. 이 부분이 바로 향을 피우는 곳이다.
이 작은 용기 안에서 숯을 먼저 태운 뒤 그 위에 향이 나는 재료를 넣으면 연기가 나고 그 연기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신에게 바치고, 공간을 채웠던 것이다. 왕의 바깥쪽 손에는 향료로 보이는 작은 물체가 들려 있고 이것이 향로의 오른쪽 끝 용기에 넣어지는 것이다. 농구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에 들어가듯이 부조는 향료가 아르메스의 용기에 들어가는 모습을 돌 위에 작은 점선으로 새겨 넣었다. 당시에 향료로 쓰였던 것들은 주로 나무, 허브, 수지(樹脂, Resin) 같은 것들이었다. 수지는 나무가 상처를 보호하거나 해충을 막기 위해 분비하는 끈적거리는 진액이 굳어진 것을 말한다.
최초에 인류가 향을 사용한 방식은 훈향(燻香)이었다. 훈향이란 불로 나무나 식물을 태워서 연기를 통해 향을 내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인센스(Incense)이다. 말하자면, 향의 역사는 인류가 불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불이 타오르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을 텐데 이 불로 나무를 태우고, 연기를 피우며, 향까지 올라오게 할 수 있다니 최초에 이 향을 접한 인류는 얼마나 신기했을까.
인류가 만든 최초의 향 문화는 신을 위한 의식이었다. 고대 문명에서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나 왕조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인간의 힘을 벗어난 신의 영역으로 인식되었고 더 나은 삶과 더 오랜 집권을 신에게 빌며 인간은 향을 피웠다. 불로 향료를 태울 때 올라오는 연기와 향은 그 자체만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고,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신에게 좀 더 가까이 ‘올라가는’ 것을 의미했다. 향은 신에게 가는 길이었고 향료들을 신을 위한 제물이 되었다.
신을 위해 바쳤던 고귀한 향들이 이제는 도처에서 뿜어져 나온다. 어딜 가도 향이다. 한국인들이 이토록 향에 심취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가족 식사를 위해 호텔 뷔페에 가면 로비에서부터 고급스런 나무향이 올라오고, 유명 패션브랜드 매장에 가면 투명한 유리문을 열자마자 입구에서부터 세련된 머스크 향이 뿜어져 나온다. 공연을 보러 가면 티켓팅하는 곳부터 이동통로까지 천장에서 부드러운 꽃 향이 새어나온다. 심지어 요즘엔 동네 까페 화장실 안에서도 상큼한 과일향이 나고, 친구네 집들이를 가도 방마다 갈색 병의 디퓨저가 놓여있다. 백화점 1층은 이제 화장품 매장보다 향수 매장이 더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성수동 연무장길이나 연남동 경의선숲길은 다양한 향수 플래그십 스토어와 향수 공방들이 군집해있어 거리를 거닐 때마다 온갖 향이 스물스물 스며 나온다. 마치 전기밥솥에서 밥이 익어 가면 조그마한 틈새로 김이 새어나오는 것처럼.
지금의 향은 누굴 위한 것일까. 신을 위한 것일까, 타인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생로병사와 문명의 흥망성쇠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호모데우스(homo deus)’, 즉 신이 되려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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